
[Cook&Chef = 정수연 기자]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거장의 초콜릿을 이제 강릉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다.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가 지난 4일 강원 강릉 테라로사 본점에 국내 첫 공식 매장인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 매뉴팩처 강릉’을 열고 한국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번 진출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유명 셰프의 이름을 내건 초콜릿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파리에서 쌓아온 원재료의 기준과 장인의 기술을 한국의 생산 공간에 옮기고, 소비자가 제조 과정과 완성된 맛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알랭 뒤카스는 재료가 지닌 본래의 맛과 조리 과정의 정밀함을 중시해온 프랑스 요리계의 거장이다. 그가 2013년 파리에 첫 초콜릿 매뉴팩처를 연 것도 초콜릿을 달콤한 간식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카카오 산지의 개성과 장인의 시간이 담긴 미식으로 풀어내기 위해서였다.
뒤카스 셰프는 강릉 매뉴팩처 오프닝 행사에서 “초콜릿은 재료와 정밀함, 감동이 담긴 하나의 스토리”라며 “카카오빈의 순수함과 원산지에서 출발한 재료를 미각의 경험으로 완성하는 인내의 과정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철학은 초콜릿의 첫 향부터 드러난다. 입에 넣기 전부터 짙은 카카오 향이 먼저 퍼지고, 한 조각을 깨물면 강한 설탕 맛보다 원료가 지닌 쌉싸래함과 산뜻한 향이 차례로 올라온다. 은은한 단맛은 카카오의 풍미를 뒤따르며, 초콜릿이 녹은 뒤에도 묵직한 여운이 입안에 남는다.
국내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도 여기에 있다. 프랑스 현지를 방문하거나 완제품을 장거리 배송받는 대신, 파리 본사의 기준으로 준비한 원료를 강릉에서 가공해 완성한 초콜릿을 보다 신선한 상태로 접할 수 있다. 한국인 초콜릿 셰프들은 파리 매뉴팩처에서 교육받았으며, 프랑스 본사 셰프들도 강릉 현장을 찾아 제조 공정과 품질 기준을 공유했다.
프랑스 본사에서 준비한 커버처는 강릉 매뉴팩처에서 엔로빙과 몰딩 등 주요 공정을 거쳐 제품으로 완성된다. 생산시설은 해썹 인증을 갖췄으며, 1층 공간은 방문객이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직접 바라볼 수 있도록 꾸몄다. 초콜릿을 고르고 맛볼 수 있는 2층에는 앤티크한 가구와 브랜드를 상징하는 금고형 진열장이 배치돼 파리 매뉴팩처의 분위기를 이어간다.
매뉴팩처를 둘러본 뒤 초콜릿을 맛보면 경험은 한층 선명해진다. 매끈한 한 조각 뒤에 재료를 고르고 온도를 맞추며 형태를 완성하는 과정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가 완성품만 판매하는 매장보다 생산과 판매가 연결된 공간을 주요 도시에 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릉이라는 장소도 두 브랜드의 철학을 잇는다. 강릉은 바다와 커피 문화가 함께 자리 잡은 도시이며, 테라로사는 지난 20여 년간 산지에서 원두를 고르고 직접 로스팅해 한 잔의 커피로 완성해왔다. 카카오 산지의 풍미를 장인의 공정으로 표현하는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와 출발점부터 닮아 있는 셈이다.
테라로사를 운영하는 학산의 김의열 대표는 “두 브랜드 모두 좋은 원재료를 직접 고르고 가공해 고객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이번 협업은 철학을 공유한 브랜드의 만남”이라고 설명했다.
커피와 초콜릿의 페어링은 강릉 매뉴팩처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에스프레소의 짙은 향과 카카오의 쌉싸래한 풍미가 만나면 초콜릿의 단맛과 원산지별 향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초콜릿을 급하게 삼키기보다 향을 먼저 맡고, 입안에서 천천히 녹인 뒤 커피를 한 모금 곁들이면 두 원재료가 지닌 볶은 향과 긴 여운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매장에서는 에스프레소와 초콜릿을 함께 구성한 메뉴도 선보일 예정이다.
강릉의 지역성을 담은 초콜릿도 마련했다. 바닷가 도시의 이미지를 반영해 가재와 게 형태로 빚은 제품으로, 본사의 원료와 제조 기준을 유지하면서 외형에 지역의 이야기를 담았다. 파리의 기술을 그대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강릉이라는 도시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다.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는 강릉 매뉴팩처를 시작으로 국내 소비자와 만나는 지점을 넓혀간다. 다음 달 말에는 서울 성수동에 테라로사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 존과 로스터리, 커피 아카데미, 베이커리 키친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이후 전국의 대형 테라로사 매장을 중심으로 판매 공간을 확대하고, 온라인 판매와 럭셔리 브랜드 협업도 추진한다.
세계적인 미식 브랜드의 한국 진출은 해외의 유명 제품을 국내 진열장에 옮겨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현지에서 이어온 원재료의 기준과 제조 기술, 맛을 대하는 태도까지 경험할 기회가 함께 들어온다는 뜻이다.
강릉 매뉴팩처에서 초콜릿 한 조각을 천천히 맛보는 동안 소비자는 파리의 카카오 철학과 강릉의 커피 문화가 만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가 한국에 가져온 것은 달콤한 디저트 한 상자보다 넓다. 카카오가 장인의 손을 거쳐 하나의 맛과 이야기로 완성되는 시간을, 이제 국내에서도 온전히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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