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용 의원 “협상 내용 즉각 공개해야”

[Cook&Chef = 이경엽 기자] 한미 간 관세 협상 타결이 공식 발표된 7월 31일, 쌀과 소고기는 추가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대통령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시장은 미국 농산물에 완전히 개방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농업계를 중심으로 혼란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민감 품목 방어라는 정부 발표에 신뢰를 보내면서도, “믿음이 깨질 경우 강경 투쟁으로 나서겠다”는 농민단체의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관세는 낮췄지만… 농산물은 누구 말이 맞나?
7월 31일 오전, 대통령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미국이 8월 1일부터 한국에 부과하기로 예고한 상호 관세 25%는 15%로 낮춰졌다”며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역시 동일하게 15% 관세가 적용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그는 “미국 측으로부터 농축산물 시장 개방 요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며 “정부 내부적으로도 협상 전략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고성이 오갈 정도로 치열한 논의가 있었지만,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 대통령실 차원에서 최종적으로 ‘농축산물 방어’에 방점을 찍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같은 날 오전(현지시간 30일 저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X(구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완전히 개방할 것이며, 자동차와 트럭,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정치 지도자의 표현 방식일 뿐이며, 공식 협상 내용과는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보도 직후 일부 미국 언론들이 이를 근거로 ‘한국 농산물 시장 완전 개방’이라는 속보를 내보내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김용범 실장 “유보 품목 외 개방 없다”… 99.7% 개방 주장
정부는 김 실장의 추가 브리핑을 통해 “현재 한국은 전체 농업 분야의 99.7%를 이미 개방한 상태이며, 유보 품목은 약 10개 내외로 제한돼 있다”며 “쌀과 쇠고기 등 유보 품목은 이번 협상에서도 개방하지 않기로 합의됐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미국 측이 해당 분야에 대해 강하게 요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농축산물의 정치적 민감성과 국민 정서를 고려해 정부가 방어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 협상을 책임진 실무 각료들과의 대화에서 쌀과 소고기 개방은 협의하거나 합의한 바 없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표현은 정치적 수사일 뿐이며, 내용상 정정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완전 개방’이라는 표현이 워낙 강하게 전파된 데다, 정부 해명이 다소 복잡하고 모호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농민단체 “믿고 지켜보겠다… 그러나 신뢰 깨지면 투쟁”
이에 대해 농업계는 “정부 발표를 믿고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내면서도, ‘먹거리 방어’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과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
한국농축산연합회 이승호 회장은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쌀과 쇠고기 방어는 당연히 환영하지만, 사과·감자·LMO(유전자변형농산물) 같은 비핵심 품목에 대한 개방 여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며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농축산물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산품은 유연할 수 있지만, 먹거리는 유연할 수 없다”며 “FTA 때도 공산품 시장을 열어주는 대신 농축산물을 내줬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같은 방식의 희생이 되풀이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협상에서 농민단체와의 사전 협의나 의견 수렴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부처 간 고성이 오갔다고는 하지만, 현장 농민들의 입장은 정부 안에서 반영되지 않았다”며 “믿음과 신뢰가 깨질 경우 강경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정치권에서도 문제 제기… “정부는 즉각 해명하라”
이번 한미 협상 결과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도 입장 차이에 대한 정부 해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정희용 의원은 이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에는 농산물 언급이 없고, 정책실장은 ‘논의 없었다’고 밝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포함이라고 주장했다”며 “국민 혼선을 줄이기 위해 해석의 차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일부 언론이 ‘농산물 완전 개방’이라는 속보를 내자 현장의 농민들은 깊은 불안에 빠졌다”며 “정부는 농업 분야 협상 내용을 조속히 국민 앞에 공개하고,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과 농민단체가 함께 지적하는 부분은, 정부의 대외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투명성 부족이다. 농산물 시장은 단순한 무역 품목이 아니라 정치적·정서적 민감성이 큰 분야인 만큼, 사전 소통과 사후 설명이 더 철저했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의 전략적 승리”… 출혈 합의라는 시각도
한편, 미국 언론은 이번 협상 결과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박 외교 승리 사례로 보도하며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고, 에너지 수입 확대와 농산물 시장 개방을 수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Fox News는 “한국도 결국 일본, EU처럼 ‘15% 동맹 관세’를 받아내는 대신 경제적 양보를 택했다”며 “이 역시 미국 우선주의를 고수하면서 실리를 챙긴 사례”라고 평했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일부 미국 산업계는 “정부 간 빅딜이 과연 지속 가능할지, 동맹 신뢰를 훼손하지는 않을지” 우려를 표하며, 트럼프식 협상의 한계와 파장을 지적하기도 했다.
‘막았다’는 정부와 ‘열렸다’는 미국… 진실은 어디에?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은 관세율 인하, 대규모 투자 약속, 자동차와 에너지 부문 협력 강화 등 경제적 실익이 분명한 동시에, 농업 분야에서는 ‘말의 온도차’로 인한 불신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정부는 쌀과 소고기를 중심으로 민감 품목을 방어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미국 측은 “완전 개방”이라는 표현을 통해 정치적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협상 테이블 위의 ‘정확한 문구’와 정치인들의 ‘공식 발언’ 사이에 생긴 간극은, 결국 국민의 신뢰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당장 농민단체는 “정부 발표를 믿겠다”는 입장이지만, 향후 개방이 확인되거나 입장이 뒤집어질 경우 집단 반발은 불가피하다. 정치권 역시 대응 수위를 조율 중이다.
한미 자유무역 협정 이후 10년 넘게 이어진 ‘농업 희생-산업 이득’의 구조적 문제, 그리고 이번 협상을 둘러싼 소통 부족은, 단순한 협상 결과를 넘어 농정 전반의 투명성과 정당성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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