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안정미 기자] 재료들이 갖고 있는 맛과 향을 지켜야만 음식을 먹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차해리 셰프를 만났다. 음식은 배려와 기다림이라 생각한다는 그녀는 음식을 함께 하는 모든 이가 ‘행복’할 수 있는 요리를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늘 그렇게 애쓰고 있다. 너무도 상업적이거나 인기나 트렌드에 휩쓸린다거나 하지 않는 뚝심 있는 그녀의 요리 인생이, 이제 그녀를 K-푸드의 대표주자로 이끌고 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행복한 음식’에 모든 정성을 가득 담아 글로벌한 성공가도를 이어가게 되는 그녀의 셰프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차해리 셰프의 삶은 늘 ‘조금 일찍’ 시작됐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일찍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집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결혼을 21살 어린 나이에 선택했다. 그랬기에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됐고, 남들보다 조금 일찍 책임감의 무게를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앞날이 창창한 어린 딸의 시간이 아까웠던 부모님은 차셰프를 설득해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그 덕분에 지금의 남도음식 연구자 차해리 셰프가 있을 수 있었다.
셰프의 삶 시작
그녀가 처음 사회에 다시 나왔을 때는 주부로서의 역할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 시절 그녀를 진짜 요리의 길로 밀어붙인 건 좋아하는 일에 대한 ‘멈출 수 없는 마음’이었다고. 집안의 반대에도 식당으로 들어가 홀과 카운터에서부터 시작해 주방으로 향했고, 그것이 차해리 셰프의 첫 번째 시작이 됐다. 하지만 삶은 늘 변곡점을 만들어준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돌봄, 여수로의 이사, 그리고 또다시 육아와 일 사이에서의 선택. 그냥 주부로 살겠다고 결심도 했었지만 마음은 늘 ‘요리’로 가득했다. 하고자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은 그 어떤 것과도 바꾸기에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어린이날조차 손님들의 음식을 만들고 있던 자신을 돌아보며 가족을 떠올렸다. 어린이날 남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 나의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은 커녕 시간조차 함께 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이제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조금은 늦은 후회와 결심을 하게 됐다. 그렇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을 다니는 시간이 시작됐다. 실기교사 자격증, 직업전문학교 교사로의 활동, 그 모든 과정은 차해리 셰프의 두 번째 인생이었다.
음식은 행복을 나누는 도구
유년기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과 함께 해 먹던 작은 밥상들은 차해리 셰프 요리의 뿌리가 됐다. 그녀에게 음식이란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닌 모두가 함께 즐거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요리는 늘 재료 본연의 맛을 지키는 데 집중하기로 한다. 제철 재료, 최소한의 양념, 간단하지만 깊은 맛, 그리고 많은 이들이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조리법 공유는 차 셰프의 오랜 신념이 됐다. 그런 그녀에게 전문 분야를 묻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자연을 담은 남도 음식, 그리고 산의 재료를 담은 치유 음식”
셰프로서의 시간들이 흘러 꿈꾸던 그녀가 지어 올린 그녀의 연구소는 곧 차셰프의 실험실이자 강의실이 됐다. 그곳에서는 남도의 장 담그기부터 전통 레시피 연구까지 그녀의 손끝에서 새로운 음식의 길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차해리 셰프는 남도음식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돼 더 큰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지역 식품 개발의 중심에 서서
현재 그녀의 이름 앞에는 ‘셰프’뿐 아니라 ‘개발자’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그 이유는 제품 개발 및 지자체 식품 개발 분야에서의 왕성한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포항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제주,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의 다양한 농산물을 활용한 제품 개발이 이어졌다. 처음 시작은 작은 기술의 나눔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앞서 언급된 지역 및 지자체의 요청에 의한 농민들을 위한 음식개발이 본격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인삼을 이용한 인삼제품, 제주의 톳을 이용한 여러 제품들, 파프리카를 이용한 제품 등 제주와 충청도, 전라도의 식재료를 이용한 제품을 개발하고 상품화하는 데 힘썼다. 특히 즉석밥 개발은 그녀의 대표적인 성과다. 단순히 밥의 의미를 넘어 시대의 흐름에 맞춘 제품으로써 세 가지 특허, 수십 건의 상표 등록 등 지역 농산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결과였다. 정말 많이 힘겨웠지만 그 경험은 그녀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켰다.
“그 때 힘들었던 시간이 기술로 남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제가 더 성장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억울하고 이해가 안 될 때도 시간이 지난 후 그 때의 사진을 다시 보니 부족했던 부분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미국에서도 빛나기 시작하는 K-푸드의 샛별
톳 사업단으로의 관계로 시작해 10년을 함께한 제주 기업과의 협업으로 이뤄진 이번 미국 출장은 K-푸드가 세계 시장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톳 즉석밥과 뿔소라즉석밥, 전복즉석밥 등 상온 제품을 생산하면서 수출로 이어졌고, 2026년 수출제품의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미국행을 결정하게 된 것.
그녀의 많은 일정 중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본 K-푸드의 인기를 실감한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을 수없이 마주하게 됐다. 외국인들이 ‘떡’을 찾아 구매하는 사소한 모습부터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뿐만 아니라 즉석 김밥이 하루 천 줄씩 팔리고, 잡채는 없어서 못 팔정도, 말차 한 잔이 200~300잔씩 나가며, 15달러짜리 갓 만든 인절미가 냉동 떡을 제치고 판매 1위를 차지하는 모습에 그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녀 역시 현지에서 업체의 제안으로 K-푸드를 알리기 위한 판매에 나섰다. 제주 해초비빔밥과 나물을 이용한 한라산 비빔밥, 생미역을 이용한 미역국을 끓여 판매했는데, 외국인들의 반응은 정말 폭발적이었다. 그녀는 “이래서 K-푸드, K-푸드 하는구나.”라고 느끼며 K-푸드의 인기를 몸소 체험했다고 전한다. 또한 소비자의 반응을 본 현지 업체 반응은 뜨거웠고, 그 자리에서 바로 메뉴 정식 판매 제안과 2026년 미국 행사까지 연결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녀에게 이번 미국 출장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늘 즐거움이며, 두려움이 아닌 행복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 가장 소중한 경험이 됐다. 그저 요리가 좋았던 시절도 있었고, 식당 일이라며 주변인들의 만류가 있던 시절도 있었으며, 가족과 주변인들이 행복할 수 있는 음식을 요리하던 때를 지나 지역의 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점점 커져가던 하나하나 귀한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차해리 셰프가 됐다.
새로운 도전에 행복해 하며 즐기는 그녀. 이제는 글로벌한 K-푸드의 대표주자가 된 그녀. 앞으로의 시간들이 더욱 궁금해지면서 그녀의 열정과 연구와 노력에 무한한 응원을 실어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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