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오요리 기자] 지난 10년간 한국 식품업계에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가장 먼 시장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 즉 ‘비관세 장벽’이 K-푸드의 혈관을 꽉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체결된 두 건의 양해각서(MOU)는 이 10년 묵은 규제의 둑을 터트리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
이번 합의는 단순한 외교적 성과를 넘어, 한국의 어민과 식품 중소기업, 그리고 중국 현지의 식탁 풍경까지 바꿀 핵심 변수다. 14억 인구의 거대 시장을 향한 K-푸드의 뱃길이 다시 열린 지금, 그 이면에 숨겨진 기회와 과제를 심층 분석한다.
'수출 이력'의 족쇄 풀렸다… 10년 만에 귀환한 K-수산물
이번 한·중 합의의 가장 상징적인 성과는 단연 ‘자연산 수산물’ 수출길 확보다. 해양수산부와 중국 해관총서(GACC)가 체결한 ‘자연산 수산물 수출입 위생에 관한 양해각서’는 지난 10년간 한국 수산업계의 목을 조르던 규제를 해소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문제의 발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은 자국 식품 안전을 이유로 ‘2011년 이전 수출 이력이 없는 품목’에 대해 복잡한 위험평가와 사전허가를 의무화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한국산 신규 수산물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는 강력한 비관세 장벽이었다.
이 규제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우리 어업 현장이었다. 남해안의 명물인 신선한 ‘냉장 병어’는 국내 미식가들에게는 최상급 식재료로 통하지만, 중국 세관 앞에서는 ‘수출 이력 없는 낯선 생선’일 뿐이었다. 고등어, 삼치 등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바이어들이 현금을 들고 와서 달라고 해도 팔 수 없는 기막힌 상황이 10년 넘게 지속된 것이다.
'냉장 병어'와 '제주 갈치'… 프리미엄 시장 정조준
전남 신안의 한 어민은 “중국 상인들이 병어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도 ‘통관이 안 돼서 못 산다’고 할 때마다 속이 타들어 갔다”며 “최고가를 받을 수 있는 시장을 눈앞에 두고도 포기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제주산 은갈치는 ‘냉장’ 상태로 항공 직송할 경우 중국 부유층을 겨냥한 최고의 프리미엄 상품이 될 잠재력이 충분했다. 하지만 ‘수출 이력 없음’이라는 장벽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 수산업계는 부가가치가 낮은 냉동·가공품 수출에만 의존해야 했고, 이는 어가 소득 정체의 주원인이 됐다.
이번 양해각서는 이 족쇄를 풀 열쇠다. ▲수출 생산시설 등록 ▲위생증명서 발급 등 합의된 요건만 갖추면, 과거 이력과 상관없이 자연산 수산물 수출이 가능하다. 이제 '냉동 컨테이너'가 아닌 '항공 화물'에 실린 신선한 병어와 갈치가 상하이와 베이징의 고급 레스토랑 식탁에 오르게 된다. 이는 한국 수산업의 체질을 '저가 물량 공세'에서 '고가 프리미엄 전략'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개별 각개전투' 끝… 식약처가 뚫어주는 '일괄 등록' 고속도로
수산물이 ‘품목’의 장벽을 낮췄다면, 식품 분야는 ‘절차’의 장벽을 허물었다. 식약처와 중국 해관총서가 맺은 협약은 K-푸드 수출의 90%를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에게 ‘행정 해방’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그동안 중국 수출을 원하는 기업은 중국어로 된 복잡한 서류를 직접 작성해 중국 당국에 등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사소한 오타 하나로 서류가 반려되거나, 심사가 수개월씩 지연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 중국 수출은 ‘넘을 수 없는 벽’이나 다름없었다.
경기도의 한 김치 제조업체 대표는 “맛에는 자신 있었지만, 중국 서류 작업에 질려서 수출을 포기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번 MOU로 식약처가 기업 명단을 취합해 중국 정부에 ‘일괄 등록’을 요청하게 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정부가 보증하는 ‘패스트트랙’이 열린 셈이다. 이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장류 업체들이 행정 부담 없이 중국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식탁 위의 변화… 중국 소비자와 K-푸드의 새로운 만남
규제 완화의 나비효과는 중국 현지 외식업계로도 번지고 있다. 상하이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교포 A 씨는 “이제 한국에서 아침에 잡은 생선을 저녁에 손님상에 낼 수 있게 됐다”며 반색했다. ‘한국 직송’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된다.
중국 소비자들, 특히 MZ세대와 신흥 중산층은 가격보다 ‘품질’과 ‘경험’을 중시한다. 이들에게 갓 도착한 한국산 제철 수산물과 명인의 프리미엄 장류는 새로운 미식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이는 K-푸드의 이미지를 ‘가성비 좋은 간식’에서 ‘신뢰할 수 있는 프리미엄 건강식’으로 격상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기회는 열렸지만… '품질'과 '차별화'가 생존 열쇠
10년 만에 빗장이 풀렸지만, 냉정한 현실 인식도 필요하다. 낮아진 문턱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 해당하며, 중국 시장은 이미 글로벌 식품 기업들의 격전지다.
기회를 성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 신선 식품 위주의 포트폴리오 재편 ▲중소기업의 독창적인 제품 개발 ▲철저한 위생 및 품질 관리가 필수적이다. 특히 오유경 식약처장이 강조했듯, 정부의 역할은 협약 체결에서 끝나선 안 된다. 우리 기업들이 바뀐 제도를 200% 활용할 수 있도록 디테일한 가이드라인과 마케팅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10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회다. 정부의 외교적 성과와 기업의 혁신이 맞물린다면, 14억 중국 시장은 다시 한번 K-푸드의 황금어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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