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전 세계 식품 담론에서 ‘Food as Medicine’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는 음식을 약처럼 과장하는 개념이 아니다. 식생활과 관련된 만성질환을 예방·관리하기 위해 건강한 식품을 의료, 영양, 복지의 체계 안에서 제공하려는 흐름에 가깝다. 미국심장협회는 Food is Medicine을 농산물 처방, 의학적으로 맞춤 설계된 식료품, 의학적으로 맞춤 설계된 식사 등을 통해 식생활 관련 건강 문제를 예방·관리·치료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이 과정에는 의료인, 의료기관, 보험 시스템이 함께 연결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의학적으로 맞춤 설계된 식사’와 ‘농산물 처방’이다. 의학적으로 맞춤 설계된 식사는 질환과 영양 상태를 고려해 구성된 식사를 환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농산물 처방은 식생활 관련 위험이나 질환을 가진 사람에게 신선한 농산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Food is Medicine Coalition은 농산물 처방을 식생활 관련 건강 위험이나 질환이 있는 사람을 위한 의료적 처치 또는 예방 서비스로 설명한다.
따라서 Food as Medicine은 특정 건강식의 유행으로만 볼 수 없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콩, 견과류, 통곡물 등을 활용한 식사는 중요한 실천 방식이 될 수 있지만, 핵심은 특정 음식의 형태가 아니다. 개인의 건강 상태와 영양 필요에 맞춰 식사를 어떻게 설계하고, 건강한 식재료에 지속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있다.
이 흐름은 현대적 제도와 연구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한식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낯선 질문은 아니다. 한식에는 오래전부터 음식과 몸의 관계를 함께 바라보는 관점이 있었다. 약식동원, 곧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는 생각이다. 다만 약식동원을 “음식이 곧 약이다”라는 말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한식에서 약식동원은 특정 음식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주장이 아니라, 몸의 상태와 계절의 변화, 식재료의 성질과 조리 방식을 함께 살피는 식문화적 태도에 가깝다.
한식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한식은 성분 하나를 강조하는 방식보다 식사의 구성과 흐름을 중시해 왔다. 밥과 국, 장과 김치, 나물과 찬, 죽과 미음, 음청류와 보양 음식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몸의 상태와 생활의 리듬에 대응해 왔다. 이것은 오늘날 기능성 식품처럼 특정 성분을 분리해 제품화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한식은 일상의 식탁 안에서 몸의 부담을 덜고, 계절에 맞춰 식사를 조절해 온 문화에 가깝다.
고조리서와 전통 기록은 이러한 감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주방문』, 『규합총서』,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임원십육지』 등에는 조리법만이 아니라 저장, 발효, 술과 식초, 장과 김치, 죽과 음청류 등 생활 속 음식 지식이 담겨 있다. 이 기록들은 한국 음식이 단순한 조리 기술이 아니라, 계절과 재료, 보존과 섭생의 문제를 함께 다루어 왔음을 보여준다.
약식동원의 관점에서 죽과 미음은 특히 중요하게 읽힌다. 죽은 곡물을 물에 오래 끓여 만든 음식으로, 우리 음식문화에서 오래전부터 회복식, 보양식, 주식 대용의 성격을 함께 지녀 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우리나라 죽 요리가 40여 종에 이르며, 보양이나 별미식으로도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조선시대 우유는 지금처럼 흔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한식문화사전은 타락죽 제조를 사복시가 맡았고, 때로 봉상시와의 관계 속에서 타락장을 차출한 기록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타락죽이 단순한 가정식 죽이라기보다 궁중과 관청 체계 안에서 다루어진 음식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 요리책에서도 타락죽 조리법이 확인되며, 『부인필지』에는 불린 쌀을 갈아 우유와 물을 넣고 끓이다가 다시 우유를 넣어 끓이는 방식이 기록되어 있다.
미음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미음은 죽과 비슷한 방식으로 조리되는 곡물 음식으로, 문헌상으로는 1800년경부터 나타난다. 『군학회등』에는 좁쌀, 멥쌀, 찹쌀, 생동쌀, 기장쌀, 녹두, 메밀, 대추 등을 이용한 미음이 기록되어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미음상에는 대추미음, 백미음, 생동쌀미음, 가을보리미음, 삼합미음, 메조미음 등이 등장한다. 이는 미음이 단순한 묽은 음식이 아니라, 재료와 상황에 따라 세분화되어 활용된 음식이었음을 보여준다.
요즘처럼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고 몸의 리듬이 흔들리기 쉬운 시기에는 이러한 음
식관이 다시 의미를 갖는다. 선조들은 컨디션이 떨어질 때 몸을 무리하게 채우기보다, 소화가 편한 음식과 따뜻한 음식으로 부담을 줄였다. 죽과 미음은 그런 방식의 대표적 음식이었다. 여기에 타락죽처럼 곡물과 우유를 결합한 음식은 부드러운 질감과 영양 보충의 측면에서 회복과 보양의 의미를 함께 지닌다.
다만 전통 문헌 속 음식 기록을 현대 의학적 효능으로 바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고조리서에 어떤 음식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곧 임상적 기능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기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효능의 단정이 아니라 관점이다. 한국 음식은 오래전부터 음식과 몸의 관계를 의식해 왔고, 그 감각은 죽과 미음, 장과 김치, 제철 식재료, 저장 음식, 음청류와 보양 음식 속에 남아 있다.
기능성 식품의 시대에 약식동원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음식이 몸을 단번에 바꾼다는 믿음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매일의 식탁에서 내 몸의 상태를 살피고, 계절에 맞는 식재료를 고르며, 무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몸을 돌보는 태도를 되찾기 위해서다.
한식은 오래전부터 제철 식재료와 발효, 죽과 미음, 따뜻한 국물과 보양 음식을 통해 몸의 리듬을 살펴 왔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고 컨디션이 쉽게 흔들리는 시기에는 소화가 편한 음식을 택하고, 기운이 떨어질 때는 부드럽고 따뜻한 음식으로 몸의 부담을 덜었다. 이는 특별한 처방이라기보다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쌓아온 식사의 지혜였다.
결국 약식동원은 한식을 건강식으로 포장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오늘의 몸에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계절이 건네는 식재료를 어떻게 먹을지 살피는 태도다. 기능성 식품이 넘쳐나는 지금, 한식이 다시 말할 수 있는 가치는 여기에 있다. 몸을 억지로 바꾸는 음식이 아니라, 몸의 흐름을 살피며 천천히 다루는 음식. 그것이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볼 약식동원의 의미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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