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추출의 과정은 용해(Dissolution)와 확산(Diffusion)으로부터 시작한다. 용해(Dissolution)는 용질에 해당되는 분쇄된 커피원두와 용매에 해당하는 물, 이 두 물질이 고르게 섞여 원두의 수용성 고형물질 분자들이 물분자 사이사이로 골고루 퍼져 안정적으로 섞이게 되는 현상이다. 이 때 단순히 물리적으로 섞이는 것이 아니라 분자구조 하나하나가 균일하게 섞이는 것을 말한다. 물리적으로 섞이기만 하면 시간이 흐르면 용질과 용매는 다시 분리가 되나, 용해 현상이 일어난 물질은 자연적으로는 다시 분리가 되지 않는다.
확산(Diffusion)은 밀도나 농도차이에 의하여 물질속의 특정 분자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여나가는 일종의 삼투 현상이다. 주로 액체나 기체에서 일어나며, 커피 추출시에는 밀도와 농도가 높아 고형물질이 가득한 분쇄 커피원두에 접한 부분에서 밀도와 농도가 낮은 새로 투입되는 물분자 사이로 퍼져나가게 된다. 확산은 밀도나 농도차이가 커야 잘 일어난다. 물이나 공기는 밀도나 농도가 낮아 물리적인 힘이 없어도 분자 스스로 확산이 잘 일어난다.
생두를 로스팅하면 원두로 변화하면서 부피가 두배 가까이 늘어나고 무게는 15-20% 줄어든다. 또한 온갖 휘발성 물질들이 연소되어 빠져나가면서 원두의 조직은 밀도가 떨어지고 성기게 된다. 또한 가스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통로를 형성하며 일정부분 연결된 통로패턴을 가진다. 이 때 원두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 보면 마치 벌집처럼 성긴 조직으로 변화되어 허니콤(Honeycomb)구조라 부른다.
추출을 하는 과정에서 커피와 물이 접촉하는 물의 온도는 맛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된다. 우선 기본적으로 이해를 해야만 하는 부분이 커피원두의 맛을 나타내는 분자구조들의 활동성이다. 신맛을 나타내는 구성분자들은 원래 분자활동이 빠르다. 따라서 고온이라 해서 특별히 더 빨라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추출 초기시점에도 분자활동이 빠른 신맛을 가진 구성분자들이 먼저 물에 녹아나온다.
반면 쓴맛을 가진 구성분자들은 분자활동이 매우 느리다. 분쇄된 커피가루의 중심부에서 물과 접한 표면부로 나오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물의 온도가 높다면 평소보다 활동량이 늘어 좀 더 활발히 물에 용해되며 쓴맛이 강조될 것이다. 따라서 추출을 할 시에는 처음에는 신맛이 강조되며 점차로 단맛이 강조되고 마지막으로 쓴맛이 강조되는 커피가 추출된다.
커피를 마시고 느끼며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위에서 언급하는 맛을 형성하는 고형물질 이외에도 향기성분의 영향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커피에는 1,000개에 이르는 향미를 발현하는 다양한 존재의 휘발성 화학분자물질들이 존재하여 커피의 맛과 향을 구성한다. 이 물질들의 평균 분자량은 150개 정도로 분자량의 수와 휘발성의 정도에 따라 향미의 정도는 달라진다. 또한 이 물질들의 다양한 조합은 전체적인 풍미를 달리한다. 이렇게 조합과 강도로 달라질 수 있는 향미에 대한 경우의 수를 고려한다면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르는 향미의 다양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향미형성 물질들은 마치 음식물을 섭취하듯 분자성분이 인간의 감각수용체를 투과하여 체내 축적되며 뇌에서 느껴자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향미에 해당하는 전기신호와 상응하는 감각수용체와 결합반응하여 그 진동을 전기신호로 인간의 뇌가 감지하여 향미를 느끼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
드라이 아로마는 주로 에스테르(Ester) 화합물들로서 유기산 또는 무기산들이 물을 잃고 생기는 구조의 화합물들이다. 커피가 물에 용해되었을 때의 향기는 물이 분쇄된 커피 내부에 있는 유기물질들을 기화시켜 만들어지는 에스테르(Ester), 케톤(Ketone)이나 알데하이드(Aldehyde)등 주로 분자구조가 큰 휘발성 가스 물질들이다. 이 분자구조가 큰 향미물질들은 온도가 높을수록 활발한 분자활동을 하며 우리 인간의 감각수용체를 더 크게 자극하게 된다.
커피에 들어있는 지질 성분들이 추출시에 나와 마우스필(Mouth Feel)로 표출되는데, 이는 혀를 구강에 댔을때 미끈거리는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지질 성분들 이외에도 물에 녹지않는 고분자 단백질이나 섬유질등이 바디감을 느끼게 하는 주요 요소들이다. 바디감은 식었을때는 감지가 어려우며 뜨거울때 가장 감지가 용이하다. 모두 활발한 분자활동 덕분인 것이다. 단 산미의 경우는 조금 상황을 달리한다.
커피의 비휘발성인 유기산 성분이 당분과 결합하며 나오는 기분 좋은 맛으로 산미는 온도의 영향을 받지 않아 뜨겁거나 식었거나 기본적으로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단지 강도에 있어서만은 뜨거울때 느끼지 못했던 강도를 식었을때 느낄수는 있다. 이 때의 산미는 식초나 저급한 레몬처럼 자극적이며 쓴맛이 함께 올라오는 산미는 Sour로 표현하기도 한다. 커피를 흡입하고 난 후에 휘발성 기체가 목위로 넘어오며 입안 혀 뒤쪽 등에서 느껴지는 향미를 애프터테이스트(After taste)라 말한다.
세계적인 바리스타이자 라떼아트 세계챔피온인 애넌(Arnon Thitiprasert)은 그가 직접운영하는 매장인 리스트레또(Restr8to)에서 대형 입간판을 통해 다음과 같이 소비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찬음료 주문은 바리스타를 죽이는 행위입니다.”
“ICED COFFEE KILLS BARISTA"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손님들에게 너무 자주 아이스커피를 주문하지 말아 로스터나 바리스타들의 맛에 대한 열정을 지켜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간과하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분명 차가운 아이스커피로는 커피 본연의 향미를 느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커피를 단순한 음료 상품으로 보는 견해는 많은 오류를 범할 소지가 있다. 이는 하나의 음료상품이라기 보다는 문화상품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커피에 함축되어진 문화와 커피가 이야기하는 문화는 모두 커피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떠한 브랜드의 커피음료가 선호도가 높다고 하면 단지 음료로서 맛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로서의 스토리도 그 커피음료의 구성항목에 포함되는 것이다. 커피를 같이 마시는 앞자리의 파트너도 커피 맛에 일조할 것이며 커피숍의 인테리어 또한 커피 맛에 일조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커피라 할지라도 금색의 베리타스가 둘러진 어느 유럽 귀부인의 고풍스런 거실의 찻잔속에서 흐르는 커피의 향미는 오늘날 바쁜 현대인의 손에 잡혀 있는 테이크아웃잔에서 풍겨 나오는 커피의 향미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결국 커피를 공급하는 그 모든 구성인자들이 한 잔의 음료로서의 커피 맛을 완성하는, 커피는 문화산품인 것이다.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는 세계와는 별개로, 더운 여름철 입안을 무겁게 누르며 감도는 스모키한 한잔의 커피는 온몸의 세포를 하나하나 일깨우며 활력을 주고, 다시 또 그 활력은 기분좋은 향미로 입과 코의 감각세포로 전달되는 선순환의 구조속에 가장 향그러운 커피도 될 수 있는 것이다.
- 커피전문회사 (주)블루빅센 기술대표
- 커피산지(TL) R&D위원 / 팔당커피농장 기술고문
- 국제커피감정사(Q-grader) / 바리스타 1급
- (사)한국식음료교육협회 기술자문위원
- 바리스타를 위한 커피교과서 / 커피헌터 / 커피플렉스 저자
[저작권자ⓒ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