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고, 1989년 슬로푸드 선언문을 계기로 국제적인 운동이 되었다. 현재 160개 이상의 국가에서 10만 명이 넘는 회원과 100만명이 넘는 후원자들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슬로푸드운동이 2000년에 소개되어, 2007년경부터 (사)슬로푸드문화원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고, 2014년 5월에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Slow Food Korea)가 출범했다.
writer _김종덕(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 회장) / photo _W Media
Food Column
슬로푸드운동과 조리사의 중요성
많은 사람들이 슬로푸드운동은 패스트푸드를 반대해 슬로푸드를 먹자는 운동으로 알고 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슬로푸드운동은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대를 넘어선다. 슬로푸드운동은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생겨난 다양성 감소, 지속가능성 저하에 대응하는 운동이다. 슬로푸드운동에서는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지역농업과 지역먹거리를 중시하고 있다. 슬로푸드운동에서 말하는 슬로푸드는 좋고(good), 깨끗하고(clean), 공정한(fair) 음식이다. 좋은 음식은 지역과 연계된 맛을 가지고 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이다. 깨끗한 음식은 그것의 생산이 환경을 해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음식이다. 공정한 음식은 먹을거리를 생산한 생산자들의 수고와 노고를 인정하고, 그것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한 음식이다.
슬로푸드운동은 주로 농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농업 없이 먹을거리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슬로푸드운동에서는 현대 산업형 농업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본다. 공장수준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산업형 농업이 땅을 망가뜨리고, 물을 오염시키고, 종자를 사라지게 하며, 농민들의 설자리를 잃게 해 지역농업 기반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본다. 슬로푸드운동은 지역농업을 살리기 위해 먹을거리 공동체의 복원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전에 모든 지역에 있던 먹을거리 공동체가 오늘날 해체되었는데, 이러한 먹을거리 공동체의 재건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러한 재건에 앞장서고 있다.
먹을거리 공동체는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성되는데, 여기에 조리사는 핵심 구성원이다. 조리사는 식재료를 음식으로 만들어 음식과 음식문화를 풍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지역농업을 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조리는 농업의 시작이라고 할 정도로 조리는 농업에 영향을 끼친다. 지역농민들이 생산한 신선한 농산물이 제 가치를 발휘하는 것은 그것이 조리되어 지역의 향과 맛을 지닌 음식이 되었을 때이다. 슬로푸드운동의 음식교육에는 조리실습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에 의존하면서 조리할 줄 모르는데. 조리기술이야 말로 좋은 음식을 먹는데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슬로푸드운동에서는 조리사들이 운동을 이끄는 핵심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현재 국제슬로푸드협회 부회장인 앨리스 워터스(Alice Waters)다. 이 분은 조리사이며 작가, 그리고 쉐 파니스 레스토랑(Chez Panisse) 설립자다. 미국의 영부인 미셀 오바마를 설득해 미국 백악관에 텃밭을 조성한 분이다. 미국 조리철학의 선구자 또 미국음식의 엄마라고 불리는 그녀는 요리는 반드시 가장 좋고 신선하며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지역의 제철 식재료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신선하고 지속가능한 음식, 그리고 지난 40여년간 유기농업을 옹호해온 엘리스 워터스(Alice Waters)는 유기농이야 말로 맛뿐만 아니라 환경과 지역사회의 건강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바로 슬로푸드의 철학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먹을거리’와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레스토랑 쉐 파니스(Chez Panisse)를 운영하면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영농을 하는 농부와 목장주들을 도와 지역음식공동체를 만들고, 신선하고 깨끗한 식재료를 식당에 공급하는데 노력해왔다.
엘리스 워터스(Alice Waters)는 미국의 학교 급식혁명을 이끈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1996년 쉐파니스 재단을 만들고, 버클리의 마틴루터킹(Martin Luther King) 중학교에서 시작한 ‘먹을 수 있는 학교 텃밭 (The Edible Schoolyard)’이라는 음식교육 프로젝트를 후원하였다. 학교 텃밭 프로젝트는 학교 텃밭 만들기, 조리수업, 학교 점심급식을 정규교과 프로그램에 연계시켜 미국의 보건교육프로그램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음식에 대한 지식, 음식에 대한 전통을 전달할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았다.
미국에서 ‘먹을 수 있는 학교 텃밭(edible school garden)’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음식교육과 이와 관련된 유사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국가 어젠다로서 학교 급식혁명(School Lunch Initiative)으로 이어졌다. 그 후 영양이 풍부한 점심과 텃밭가꾸기 체험이 미국의 공립학교 정규 커리큘럼으로 통합되게 된다. 미국의 학교 텃밭 프로젝트의 성공은 그 후 이탈리아를 포함한 다른 나라의 음식교육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2003년 슬로푸드 국제협회가 슬로푸드의 음식교육 프로그램에 학교 텃밭 만들기를 포함시키도록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엘리스 워터스(Alice Waters)는 2002년 슬로푸드 국제협회의 부회장으로 임명되었고, 현재도 슬로푸드 국제협회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슬로푸드운동에서 조리사분들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조리사분들의 참여가 미흡하다. 필자는 2012년 조리 기능장 총회에 참석해 슬로푸드운동을 소개하고, 조리사 분들의 참여를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몇몇 분이 호응해 슬로푸드운동의 회원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슬로푸드운동에 조리사분들의 참여는 아직은 소극적이다. 이러한 결과에 한국 슬로푸드운동의 책임이 크다. 조리사 분들과 적극적으로 만나지 못했고, 함께 하자는 제안을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슬로푸드운동이 잘 되려면, 조리사분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음식에 관심이 없거나 음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음식에 대한 관심을 이끄는데 조리사분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 우리나라에서도 앨리스 워터(Alice Waters) 같은 멋진 조리사분이 있어 슬로푸드 운동의 확산에 큰 힘이 되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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