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현민 기자] 경상남도 남해안에 위치한 통영은 오늘날 조용한 항구도시로 보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핵심 군사 도시였다.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왜군의 남해 진출을 막기 위해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했고, 이곳이 현재의 ‘통영’이라는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
통영은 단순한 군사 거점이 아니라 국가 식량 공급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조선의 주요 곡창지대였던 호남평야의 쌀이 왜군에게 넘어갈 경우 국가 전체가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에, 통영은 전라·경상의 군수 물자와 인력이 집중되는 해상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전국에서 장인, 기술자, 장수들이 모여 도시의 생활 기반이 자연스럽게 풍요로워졌다.
전쟁 중이었지만 통영의 식탁은 단출함 속에서도 다양한 재료가 수급되는 구조였다. 호남에서 올라온 쌀, 남해의 풍부한 해산물, 인근 섬에서 채취한 나물과 건어물 등이 통영으로 모이며 도시 전반의 식문화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이 때문에 통영 음식은 경상도 지역의 강한 간과 자극적 양념과는 달리,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식이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통영 음식은 자극적인 맛보다 담백함과 자연스러운 감칠맛을 중시한다. 강한 단맛이나 매운맛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실제 통영 현지 가정식은 해산물의 신선함과 나물의 향이 중심이 되는 구조다. 이는 장기간 군수물자와 식재료가 안정적으로 흐르던 지역적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작년 TV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를 통해 다시 관심을 받은 통영의 ‘너물밥’ 역시 지역 음식의 대표적 예다. 너물밥은 계절에 따라 구성 재료가 달라지는 음식으로, 봄에는 해초와 산나물이 함께 오르고, 여름에는 수온이 오른 바다에서 나온 미역줄기와 어린 감태가 사용된다. 가을에는 들기름의 향이 더해져 고소함이 깊어지고, 겨울에는 차가운 물살을 견딘 해조류가 풍미를 더한다. 여기에 기본 육수로 사용하는 조갯살 국물이 더해지며 전체 맛의 균형을 잡는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너물밥은 해조류의 질감, 나물의 향, 조개 육수의 감칠맛이 함께 어우러지는 통영 고유의 식문화적 특징을 보여주는 음식으로 평가된다. 과하게 양념을 더하지 않아도 제철 재료의 맛만으로 완성되는 점은 통영 음식 전반의 조리 방식과도 일치한다.
통영의 식재료는 계절별 차이가 뚜렷하다. 특히 겨울철 통영 바다는 굴, 대구, 방어 등 지방 함량이 높아지는 어종이 풍부해지며, 청각·매생이 같은 해조류의 품질도 가장 좋다. 이는 수온과 조류 흐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만들어지는 지역적 특성이다. 같은 해산물이라도 통영에서 맛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광객이 흔히 찾는 유명 식당도 있지만, 실제 통영의 맛은 지역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가정식과 장터 음식에 더 가까운 형태로 남아 있다. 시장에서 갓 까낸 굴, 아침에 잡아 맑게 끓여낸 생선국, 직접 채취한 나물로 만든 반찬 등이 그 예다. 화려하진 않지만 재료 중심의 조리 방식과 담백한 맛의 구조는 통영 음식 문화의 핵심으로 자리한다.
통영의 음식은 지역의 역사, 지리적 환경, 계절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이어지며 형성된 결과물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의 설치 이후 군사·물자 중심지로 발전한 도시의 특성이 식문화에도 스며들었고, 지금도 통영은 자극적인 맛보다 지역 재료의 성질을 살리는 조리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통영의 맛은 단순한 지역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통영의 음식은 화려하진 않지만, 지역의 역사성과 지리적 조건에서 비롯된 합리적인 맛 구조를 지니고 있다. 너물밥은 그중 대표적인 예로, 계절별 재료 변화와 조갯살 육수를 기반으로 하는 조리법이 통영의 미식 정체성을 보여준다. 통영의 식탁은 강한 간과 양념이 아닌, 재료의 신선도와 감칠맛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이는 오랜 기간 이어진 지역 생활 방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Cook&Chef /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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