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잠에서 눈뜨고 아궁이에 고운 불을 때워 기지개 펴게 만드는 나는.....
가슴속에 내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의 입에 사랑을 넣어주기 위해 피곤한 몸을 애써 다독이는 어머니의 마음도 간직하고 있는 가족을 사랑하는 나는…
writer _김준호(롯데호텔월드 중식당 도림 셰프) / photo _ W Media
Food Column
음식을 만드는 나는. . .
I am Chef
전국 방방곡곡 제철에 나는 산해진미를 받아 신선함을 눈으로, 입으로, 코로, 확인하고 손가락의 감촉으로 확인하여 어떤 음식으로 태어날지 결정하고 그의 건강을 매일 매일 물어, 어울리는 찬과 함께 백성들의 아픔도 생각하는 검소함도 잊지 않고 챙겨야 하며, 가끔씩은 궁중의 연회를 맞아 연회의 성격에 따라 화려한 음식문화를 보여주고 이 나라 조선의 임금님의 수라를 준비하는 나는…
추운 겨울 아프고 지친 몸과 마음을 의지할 데 없는 거리의 객들을 향한 측은지심을 가진 따뜻한 이들의 마음을 십시일반 모아 나의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쪼개어 그들의 마음으로 장을 보고 맛있는 연기를 피워 객들을 불러 모아 잠깐이나마 세상의 매섭고 따가운 바람으로부터 잠시 쉴 수 있게 하는 나는…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주고 그 사람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누구를 위해 음식을 직접 만들고 그릇에 담고 예쁜 장미꽃 한다발과 함께 이쁜 케잌,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보여 주기 위한 작은 반지 하나 가슴속에 웅크리게 하고서 들뜬 마음으로 오늘 하루 준비하는 나는…
새벽 늦은 잠을 뒤로하고 조금이라도 신선하고 값싼 재료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 빨리 시장에 나와 다양한 재료들을 살피고 갖은 양념을 준비하고 멸치와 다시마, 통 무를 쏭쏭 썰어 넣고 어묵국물을 끓이고, 애증의 고사리 손 닭발 발톱손질과 등 푸른 녀석은 굵은 소금으로 옷을 입히고, 매일 오후 5시 같은 시간 연탄아궁이에 번개탄으로 매운 연기 마셔가며, 불꽃놀이를 하고, 내 마음 닦아 내듯 깨끗하게 유리선반 투명하게 속 훤히 비치게 하고서 무거운 바퀴 네 개에 의지한 체 고추장통 의자에 스티로폼 깔고 앉아 석쇠 하나 올리고서는 님 기다리듯 하염없는 기다림을 시작하는 나는…
15kg, 20kg의 포대를 이는 것으로 시작해서 안개 자욱한 공간에서 수없이 많은 달걀을 깨우고 버터의 달콤함을 부르고 수없이 많은 반죽과 춤을 추고 뜨거운 사막 같은 화덕과 친구가 되어야 하는 나는…
사시사철 차가운 소금바다에 손을 담구어야 하고, 커다랗고 뎅그런 눈을 향해 서슬 퍼런 날을 세워 한땀 한땀 소중한 조각을 만들어 싱그럽게 담아내고, 빨간 초록색 완자지어 까만 작은 호수를 준비하는 나는…
고기를 자르고 다지고 녀석의 삶을 통째로 삶아내기도 하고, 소금을 듬뿍 넣은 채 야채를 자르고 냄새와 향기를 접시 위에 칠하고 바르고 얹고, 나는 하이얀 도화지 접시 위에 음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맛과 향기의 전도사이다.
나는 사람의 입에서 한 번 더 마음으로 행복을 확인하는 세상의 다양한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나는....
나는.... 조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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