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현민 기자] 대학 합격 발표가 이어지는 요즘, 많은 사람들은 식당에서 축하 자리를 갖는다. 고기집이나 파스타집, 뷔페 같은 외식 공간이 자연스럽게 축하의 무대가 된다. 한쪽에서는 조심스레 술잔이 오르고, 다른 쪽에서는 좋아하는 음료가 채워진다. 합격의 환호와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같은 테이블 위에서 나란히 놓인다.
조선시대 과거시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험은 글을 잘 쓰는 능력만을 겨루는 자리가 아니라, 길고 느린 준비와 여러 의례, 그리고 음식을 둘러싼 문화가 함께하는 과정이었다.
시험장에 며칠씩 머물러야 했던 응시생들은 먼저 ‘준비 음식’을 챙겼다. 오래 보관되는 밥과 포, 장, 말린 반찬, 김치와 짠지, 약과와 유과 같은 간식이 함께였다. 먼 길과 긴 대기를 견디게 해 주는 음식이었고, 동시에 마음을 다잡는 작은 의식이기도 했다.
오늘날 대입시험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이어진다. 시험날 도시락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부모들은 소화가 잘 되고,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은 반찬을 정성껏 준비한다. 달걀말이, 장조림, 멸치볶음, 김이 반복적으로 선택되는 이유는 단순한 영양 때문이 아니다. 평소 먹던 맛이 긴장을 완화시키고, 익숙한 리듬이 시험 중에도 흔들리지 않게 돕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도시락이 시험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고. 조선의 응시생이 가져갔던 준비 음식처럼, 오늘의 도시락도 몸을 지탱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시험이 끝나고 합격 소식이 전해지면 잔치의 성격은 바뀐다. 조선 시대에는 방방례라 불린 축하 자리가 열렸다. 떡과 전과, 과일과 술이 중심이 되었고, 형편에 따라 수육이나 탕이 더해졌다. 떡을 나누고 술을 돌리는 일은 개인의 성취를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방식이었다.
전시에 급제해 궁궐로 들어간 이들에게는 왕이 베푸는 진연이 기다렸다. 이곳에서 음식은 상징이 되었다. 떡과 유과, 전과와 과일이 정갈하게 차려지고, 왕이 내린 술이 잔에 채워졌다. 축배라기보다, 새로운 책임을 자각하게 하는 의식에 가까웠다. 음식과 술을 통해 신하의 역할이 강조되고, 나라를 위해 힘쓰라는 메시지가 조용히 전해졌다.
이러한 풍경은 여러 고조리서에서도 확인된다. 음식디미방에는 잔치상에 오른 떡과 약과의 조리법이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고, 산가요록에는 오래 보관 가능한 전과와 술 빚는 법이 등장한다. 수운잡방에는 탁주와 약주, 소주에 이르는 다양한 술이 소개된다. 조선의 잔치는 화려함보다 의미와 절차가 중심이었다.
오늘의 합격 문화 역시 그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식당의 한 상을 앞에 두고 축하를 나누거나, 때로는 위로를 건넨다. 과거의 방방례와 진연이 그러했듯, 음식과 술은 지금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언어다.
합격의 계절은 늘 대비를 만든다. 환호와 침묵, 기쁨과 아쉬움이 함께 찾아온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시험이라는 고비 앞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음식을 준비했고, 그 음식은 몸을 지키고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식탁 위의 떡 한 접시, 술 한 잔, 그리고 정성스러운 도시락 한 끼.
그 안에는 기다림의 시간, 서로를 향한 응원, 그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약속이 담겨 있다.
Cook&Chef /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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