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베스트 푸드 아트’ 수상,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다
- "아름다움을 요리한다", 데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세계를 감동시킨 미식 철학
[Cook&Chef = 이정호 전문기자]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의 작은 해안 도시 데니아(Dénia). 이곳에 세계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키케 다코스타(Quique Dacosta)의 레스토랑이 있기 때문이다. 14세에 피자 가게 접시닦이로 시작해 현재 총 7개의 미슐랭 스타를 거느린 제국을 건설한 입지전적인 인물. 그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셰프가 아니라, 접시 위에 자연의 풍경과 감동을 담아내는 ‘푸드 아티스트’로 불린다.
2024년 그의 플래그십 레스토랑이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4위에 올랐고, 2025년에는 ‘베스트 셰프 어워드’에서 ‘베스트 푸드 아트’ 상을 수상하며 그의 예술적 비전은 다시 한번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
접시닦이 소년, 스페인 요리의 미래를 꿈꾸다
1972년 스페인 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키케 다코스타는 14세에 요리사의 꿈을 안고 지중해 연안의 데니아로 이주했다. 그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레스토랑 주방에서 접시를 닦고 허드렛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웠다. 그는 정규 요리 교육을 받지 않은,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한 셰프다. 1988년, 그의 인생을 바꾼 레스토랑 ‘엘 포블레트(El Poblet)’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스페인 전통 요리의 뿌리를 배우는 동시에, 당시 요리계를 휩쓸던 누벨 퀴진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은 곧 두각을 나타냈다. 2000년 스페인 최고 젊은 셰프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2002년에는 스페인 최고의 셰프 반열에 올랐다.
2003년, 그는 역사상 최초의 ‘먹을 수 있는 풍경(Edible Landscape)’이라 불리는 ‘마법의 숲(The Enchanted Forest)’을 선보이며 미식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같은 해, 그의 레스토랑은 첫 미슐랭 스타를 획득했고, 2009년에는 레스토랑을 완전히 인수하여 자신의 이름을 내건 ‘키케 다코스타 레스토랑’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마침내 2012년, 그는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하며 스페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셰프로 우뚝 섰다.
예술과 기술의 경계, 아방가르드 퀴진
키케 다코스타의 요리는 ‘아방가르드 퀴진’으로 정의된다. 그는 “요리는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이며, 레스토랑은 그 감정을 공유하는 무대”라고 말한다. 그의 시그니처 메뉴인 ‘구겐하임 굴(Guggenheim Oyster)’은 ‘광물화(Mineralization)’라는 독창적인 기법을 통해 굴에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금속 질감을 부여한 작품으로, 요리가 어떻게 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식용 종이(1997), 투명한 베일 등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요소들을 현실의 접시 위에 구현하며 그는 끊임없이 요리의 경계를 확장해왔다. 2008년에는 자신의 요리 철학을 집대성한 ‘요리 생태계(Culinary Ecosystem)’라는 개념을 발표했다. 이는 레스토랑 주변의 자연 환경과 시장에서 얻는 영감을 바탕으로 메뉴를 창조하는 그의 작업 방식을 정의하는 개념이다.
그의 예술적 영감은 그가 몸담고 있는 데니아의 자연과 지중해에서 나온다. 그는 매일 아침 시장을 돌며 그날 사용할 최상의 식재료를 직접 고르고, 이를 바탕으로 메뉴를 구상한다. 2025년 새롭게 선보인 시즌 ‘옥타보(OCTAVO)’는 요리를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 표현 형식으로 제시하며, 자연과 기술, 전통과 혁신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탐구한다. 그는 “아름다움을 요리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통해 손님들에게 단순한 식사가 아닌, 하나의 완성된 예술 작품을 경험하게 한다.
스페인을 넘어 세계로, 스타 제국의 수장
키케 다코스타의 영향력은 스페인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이름을 건 3스타 레스토랑 외에도 발렌시아의 ‘엘 포블레트’(2스타), 마드리드 만다린 오리엔탈 리츠 호텔의 ‘데에사(Deessa)’(2스타)를 통해 총 7개의 미슐랭 스타를 보유하고 있다.
그의 글로벌 프로젝트 역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2019년 런던에 문을 연 ‘아로스QD(ArrosQD)’는 스페인의 쌀 요리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큰 성공을 거두었고, 2024년에는 모로코의 최고급 호텔 로열 만수르와 손잡고 새로운 레스토랑을 선보였다. 그의 활동은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스페인 미식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 외교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 스페인 국왕과 왕비로부터 미술 분야 최고 영예인 ‘미술 금메달’을 수상하고, 2013년 미겔 에르난데스 대학에서 명예 미술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그의 요리가 이미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고 있음을 증명한다.
14세 접시닦이 소년에서 세계 요리의 정점에 오른 키케 다코스타. 그는 오늘도 데니아의 주방에서 자연과 예술, 기술을 융합하며 세상에 없던 새로운 맛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Cook&Chef / 이정호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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