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제조리 기자] 뉴욕 맨해튼의 밤, 주방의 뜨거운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다이닝 공간에선 섬세한 칵테일 셰이커의 흔들림이 경쾌한 리듬을 만든다. 얼음과 술이 부딪히며 내는 청량한 소리 뒤로, 낯설지만 매혹적인 향이 피어오른다. 배꽃 향을 닮은 증류주의 아로마와 허브의 싱그러움이 뒤섞인 이 향기는, 바로 K-Liquor, 한국 전통주가 세계 미식의 심장부에서 펼치는 새로운 서사의 서막이다.
같은 시간,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가 숨죽여 지켜보는 넷플릭스 화면 속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한창이다. 치열한 요리 경연, 셰프의 손길이 다급하게 향하는 곳은 거대한 ‘비비고(bibigo)’ 로고가 선명한 팬트리다. 고추장, 된장에서부터 만두와 햇반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에 들린 K-푸드 식재료는 단순한 제품을 넘어 승리의 무기가 된다.
언뜻 별개로 보이는 이 두 장면은 K-푸드 세계화를 이끄는 CJ제일제당의 정교하게 설계된 ‘투 트랙(Two-Track)’ 전략을 명확히 보여준다. 하나는 미식의 최전선에서 소수의 오피니언 리더를 공략하는 ‘하이엔드 문화 침투’이며, 다른 하나는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다수의 대중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매스 마켓 파급력 확대’다. 화려한 플레이팅과 스크린 뒤에 숨겨진 이들의 치열한 전략을 조리 현장의 시각으로 깊이 파고들어 본다.
뉴욕의 미식 지도를 흔든 K-Liquor, '자리(jari)'의 야심찬 첫걸음
CJ제일제당의 칼끝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증류주 시장이자 문화적 용광로인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이다. 이곳에서 내년 하반기 론칭 예정인 프리미엄 증류주 브랜드 ‘자리(jari)’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사전 포석이 깔렸다. 그들의 선택은 단순한 광고나 시음회가 아니었다. ‘The Korean Table-Sip&pair by jari’라는 이름 아래, 현지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식 다이닝 ‘호족반’과 ‘나리’의 주방과 바를 직접 무대로 삼았다.
이것은 매우 영리한 접근이다. 새로운 주류 카테고리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해석해 줄 전문가, 즉 셰프와 바텐더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CJ제일제당은 월드클래스 코리아 우승 경력에 빛나는 ‘파인앤코’의 홍두의 오너 바텐더를 브랜드 앰버서더로 기용했다. 이는 단순히 유명인의 얼굴을 빌리는 차원을 넘어, K-Liquor의 잠재력을 최고 수준의 크리에이터를 통해 증명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홍두의 바텐더는 국내 중소 양조장에서 빚은 문배술과 백련 막걸리를 기주(Base)로 6종의 칵테일을 창조했다. 문배술은 배 향이 나는 독특한 아로마로 유명한 전통 증류주이며, 백련 막걸리는 은은한 단맛과 부드러운 텍스처가 특징이다. 이 두 가지 술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뉴욕의 트렌디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밸런스를 찾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현장에서 선보인 칵테일 ‘그린 하모니(Green Harmony)’는 문배술의 화사한 과실 향에 허브의 청량감을 더해, 익숙한 듯 새로운 맛의 조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호족반을 방문한 고객 토리 케이(Tory.K)가 “트러플 감자전과의 조화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언급한 지점은 이번 행사의 핵심을 관통한다. 기름에 부쳐낸 전의 고소함과 트러플의 짙은 향, 녹진한 텍스처가 문배술 칵테일의 산뜻한 산미와 알코올의 깔끔함과 만나 입안의 유분을 씻어내고 다음 한 입을 위한 미각을 재정비하는 완벽한 페어링의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CJ제일제당이 추구하는 ‘한국식 마리아주’ 문화의 구체적인 제시다. ‘치즈나 파스타에 와인을 곁들이듯, 한식을 즐길 때는 자연스레 우리 술을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는 바로 이런 섬세한 미각적 경험의 축적을 통해 실현된다. 육회 타르타르, 감자전 등 페어링 메뉴 역시 K-푸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터치를 가미해 K-Liquor의 동반자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설계됐다.
한식 다이닝 ‘나리’의 이준모 대표가 “전통주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K-푸드가 이미 세계적 위상을 확보한 지금, 그와 함께할 ‘술’의 부재는 늘 아쉬운 지점이었다. CJ제일제당의 이번 행보는 그 빈자리를 자사의 브랜드 ‘자리’로 채우겠다는 강력한 선언이자, 한식의 경험을 음식에서 주류 문화로 확장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경연의 심장부를 장악하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와 비비고의 만남
뉴욕의 다이닝 바에서 섬세한 미각을 공략하는 동안, CJ제일제당의 또 다른 전략은 전 세계 안방극장을 목표로 광범위한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그 무대는 넷플릭스 한국 예능 최초로 3주 연속 글로벌 톱10 1위를 차지했던 인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다. 재야의 고수와 스타 셰프가 맞붙는 이 서바이벌은 단순한 예능을 넘어 K-셰프와 K-푸드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을 폭발시킨 기폭제였다.
CJ제일제당은 이 치열한 전쟁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 바로 ‘팬트리(Pantry)’를 자사의 브랜드 ‘비비고’로 가득 채웠다. 조리사에게 팬트리는 단순한 식료품 저장고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무기고이자, 창의력의 원천이다. 경연에 참가한 셰프들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기 위해 손을 뻗는 모든 순간, 그들의 손에는 비비고의 고추장, 된장, 쌈장, 만두, 햇반이 들려있게 된다.
이는 단순한 PPL(간접광고)을 뛰어넘는 고도의 전략이다. 시청자들은 셰프들이 비비고 제품을 사용해 경이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지켜보게 된다. 이를 통해 ‘비비고 = 전문가도 사용하는 K-푸드의 핵심 재료’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각인된다. CJ제일제당은 장류와 같은 기본 식재료부터 만두, 김치, 햇반 같은 대표 HMR 제품까지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제공함으로써, 한식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비비고의 브랜드 파워를 과시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CJ제일제당이 ‘퀴진케이(Cuisine.K)’ 프로젝트를 통해 한식 영셰프를 발굴하고 육성해왔다는 사실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가 “‘퀴진케이’를 통해 한식 영셰프 발굴·육성에도 힘써 온 만큼 <흑백요리사2> 지원의 의미가 크다”고 밝힌 대목은, 이번 협업이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한식 생태계 전체를 키우려는 그들의 장기적인 비전과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 프로 셰프들의 경연을 지원하는 것은 미래의 한식 스타들에게 비비고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경험과 신뢰를 심어주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이러한 미디어 협업은 과거 <오징어게임> 시즌2와의 콜라보 제품 출시 경험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다. 글로벌 콘텐츠가 지닌 막강한 파급력을 활용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K-푸드의 매력을 새롭고 친숙하게 전달하는 방식은 이제 CJ제일제당의 핵심적인 글로벌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향후 <흑백요리사2>와 연계한 콜라보 제품 출시 계획은 스크린 속 경험을 소비자의 식탁 위 현실로 이어주는 결정적인 한 수가 될 것이다.
투 트랙 전략의 정교함: 미식 경험과 미디어 파급력의 시너지
뉴욕의 K-Liquor 행사와 넷플릭스의 비비고 팬트리. 이 두 전략은 분리된 듯 보이지만, 실은 K-푸드라는 거대한 목표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된 톱니바퀴처럼 움직인다. ‘자리’를 통한 하이엔드 전략은 K-푸드 문화의 ‘깊이’를 더하는 작업이다. 미식가, 셰프, 바텐더 등 업계 전문가와 트렌드세터들에게 한국의 주류 문화가 얼마나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K-푸드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이러한 깊이는 브랜드에 강력한 스토리와 정통성을 부여한다. 뉴욕의 한식 다이닝에서 ‘자리’ 칵테일을 경험한 소비자는 K-푸드를 단순한 ‘음식’이 아닌, 즐길 줄 아는 ‘문화’로 인식하게 된다. 이 경험은 입소문을 타고 점차 확산하며, 브랜드에 대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는 단단한 기반이 된다.
반면, ‘비비고’를 통한 매스 미디어 전략은 K-푸드 문화의 ‘넓이’를 확장하는 작업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수억 명의 잠재 고객에게 비비고 브랜드를 노출시키고, K-푸드에 대한 호기심과 친밀도를 극대화한다. <흑백요리사>를 보고 K-푸드에 흥미를 느낀 소비자가 마트에서 가장 먼저 찾게 될 브랜드는 단연 ‘비비고’일 것이다. 이는 K-푸드 입문자들에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낳는다.
이 두 전략은 서로를 보완하며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한다. 넷플릭스로 K-푸드에 입문한 대중이 점차 더 깊이 있는 미식 경험을 원하게 될 때, 뉴욕의 한식 다이닝에서 선보인 ‘자리’와 같은 프리미엄 K-Liquor가 그들의 다음 목적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하이엔드 다이닝을 통해 K-푸드의 정수를 맛본 미식가들이 집에서도 그 맛을 재현하고 싶을 때, 비비고의 제품들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솔루션이 된다. 깊이와 넓이, 프리미엄과 대중성을 동시에 공략하는 이 영리한 이중 포격은 K-푸드 세계화의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높일 수 있는 강력한 엔진이다.
K-푸드 세계화의 다음 장, 문화적 깊이를 더하다
CJ제일제당의 행보는 K-푸드의 세계화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만두, 불고기 등 단품 메뉴의 인기를 넘어, 이제는 한식을 중심으로 한 ‘식문화(Food Culture)’ 전체를 수출하려는 야심 찬 시도가 본격화된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음식과 술의 페어링, 즉 ‘한국식 마리아주’라는 새로운 화두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과제는 남아있다. ‘자리’가 뉴욕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한식당을 넘어 현지의 주류 전문 바(BAR)와 리쿼샵(Liquor Shop)의 까다로운 문턱을 넘어야 한다. 이는 전통주 고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칵테일의 기주로 활용될 수 있는 범용성과 품질 안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비비고 역시 글로벌 콘텐츠와의 협업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브랜딩 전략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과 소비자 트렌드에 발맞춰 K-푸드의 매력을 전달할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을 계속해서 찾아내야 한다.
주방의 뜨거운 불 앞에서 셰프가 완벽한 한 접시를 위해 수백 번의 담금질을 하듯, K-푸드의 세계화 역시 단 한 번의 성공에 안주할 수 없다. CJ제일제당이 보여준 뉴욕 다이닝과 넷플릭스 스크린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전략은, 이제 K-푸드가 세계인의 식탁을 넘어 그들의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들의 다음 행보가 K-푸드 역사의 어떤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지, 전 세계 미식계가 주목하고 있다.
Cook&Chef / 제조리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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