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전체에 작용하는 ‘바다의 예방의학’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겨울철 밑반찬으로 익숙한 파래는 오랫동안 “값싸고 가벼운 해조류” 정도로 취급돼 왔다. 떠오르는 조리법도 파래무침, 파래김, 파래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여러 연구를 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파래는 같은 해조류 안에서도 항산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축에 속하고, 폐·혈관·뼈·피부 등 전신 건강에 관여하는 기능성 식품에 가깝기 때문이다. 단순한 밑반찬으로 보기엔 아까운 이유다.
해조류 중 항산화 효과 ‘톱’… 세포를 지키는 폴리페놀
파래가 주목받게 된 데는 항산화 실험 결과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러 해조류를 비교한 연구에서 파래는 단위 무게당 폴리페놀 함량이 가장 높았고, 지질이 산화돼 단백질과 엉겨붙는 유해 반응을 가장 잘 억제한 것으로 보고됐다.
폴리페놀은 활성산소를 제거해 세포의 산화 속도를 늦추는 물질이다. 쉽게 말해 세포가 “녹슬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활성산소가 많아지면 세포막이 손상되고 만성염증이 반복돼 노화가 가속화되는데, 파래를 꾸준히 섭취하면 이런 과정을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파래 속 폴리페놀은 구강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 입 안의 세균을 줄이고, 잇몸 염증·치주질환의 진행을 억제한다는 분석이 있어 “파래가 잇몸에 좋다”는 말이 단순한 민간신앙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폐·혈액·갑상선까지 두루 돌보는 영양소
파래의 또 다른 강점은 베타카로틴 함량이다. 특히 창자파래는 100g당 1만7000µg이 넘는 베타카로틴을 함유해, 베타카로틴의 대표 식품인 당근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한다.
베타카로틴은 체내에서 필요한 만큼 비타민A로 전환된다. 비타민A는 눈·피부·점막을 보호하고 면역 기능을 끌어올리는 데 관여한다. 특히 폐와 기관지 점막을 보호하는 역할이 커, 미세먼지와 흡연 노출이 많은 현대인에게 중요하다.
파래에는 니코틴 독성을 줄이고 체외 배출을 돕는 메틸메티오닌 성분도 풍부하다. 비타민A와 함께 작용하면 흡연으로 약해진 폐 점막의 회복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파래가 ‘흡연자가 꼭 챙겨 먹어야 할 해조류’로 불리는 이유가 된다.
파래는 ‘바다의 약초’라고 불릴 만큼 미네랄 구성이 뛰어나다. 특히 칼슘과 철분 함량이 눈에 띈다. 일부 파래는 우유보다 많은 칼슘을 갖고 있어 뼈 성장이 필요한 어린이와 골다공증 위험이 큰 중·장년층 모두에게 유익하다.
철분 역시 풍부한데, 철 흡수를 돕는 비타민C도 함께 들어 있어 체내 이용률이 높다. 채식 위주의 식단을 가진 사람, 식사가 불규칙한 이들에게 섭취가 특히 도움이 된다.
또한 파래에는 요오드와 칼륨도 많이 들어 있다. 요오드는 갑상선 호르몬 생성에 필수적인 원소로 체온·신진대사·집중력 유지에 관여한다. 칼륨은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압을 낮추고 부종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짠 음식을 자주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을 고려하면 파래는 매우 적합한 보완 식품이다.
간 해독·혈액순환·뇌 기능까지… 파래의 보이지 않는 역할
파래는 겉으로 보이는 뼈·피부뿐만 아니라 내부 장기와 신경계에도 관여한다. 파래에 풍부한 알긴산과 특정 다당류는 중금속·아질산염·환경독소를 흡착해 배출하는 역할을 해, 가공식품을 많이 먹는 현대인에게 의미 있는 해독 기능을 제공한다.
혈액순환과 관련된 연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파래는 혈액이 끈적해지는 것을 막고, 혈관 속 노폐물 제거를 도와 동맥경화·심혈관 질환 위험을 낮추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
신경계에 대한 가능성도 주목받는다. 일부 실험에서 파래 추출물이 기억력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아세틸콜린)의 분해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치매 예방과 집중력 유지와도 연결된다. 아세틸콜린은 장 운동과 자율신경 안정에도 관여하므로 스트레스·소화불량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비린내 줄이는 조리법… “식초물 2~3분, 세게 짜지 말 것”
집에서 파래무침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실패하는 이유는 ‘비린내’와 ‘질척거림’이다. 전문가들은 파래 손질의 핵심을 ‘짧은 식초물 담그기’로 본다. 깨끗이 헹군 뒤 식초물에 2~3분 담가두면 비린내는 잡히고 특유의 감칠맛은 유지된다. 너무 오래 담가두면 식감이 무르고 향도 사라진다. 물기를 제거할 때는 손으로 꽉 짜면 섬유질이 쉽게 뭉개지므로, 체에 밭쳐 10분 정도 자연 배수하는 방식이 가장 좋다. 겉이 살짝 촉촉해야 양념이 잘 스며든다.
파래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가장 맛있는 시기다. 찬 바다에서 자란 어린 파래는 색이 선명하고 윤기가 돌며 손에 쥐었을 때 부드럽게 풀린다.
한 접시의 파래무침이나 한 장의 파래김이 밥상을 크게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는 활성산소를 잡는 항산화 성분, 폐와 간을 보호하는 해독 물질, 뼈와 혈액을 지탱하는 미네랄이 촘촘히 들어 있다. 겨울철 건강 관리가 중요해지는 요즘, 장 한쪽을 파래에 비워주어 보는 것은 어떨까. 바다의 작은 채소 한 줌이 몸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제 역할을 해줄지 모른다.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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