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민혜경 기자] 창원 미더덕, 의령 메추리, 포항 아귀, 공주 밤... 흑백요리사2의 1:1 흑백대전 조리대 위에는 한국의 '땅'과 '바다'가 날것 그대로 올랐다. 이 로컬 푸드들은 셰프들에게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이 재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셰프들은 두 갈래 길로 나뉘었다. 한쪽은 재료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본질을 파고드는 '직구'를 던졌고, 다른 한쪽은 화려한 테크닉으로 재료를 감추고 비싼 식재료로 둔갑시키는 '변화구'를 던졌다.
결과는 잔인하리만큼 명확했다. 미더덕을 갈아 성게알 흉내를 낸 송훈 셰프, 아귀 간으로 아귀 살을 덮어버린 정호영 셰프. 이들 '백수저(명장)'들의 잇따른 패배는 단순한 서바이벌의 탈락이 아니다. 이것은 현대 파인 다이닝이 오랫동안 빠져 있었던 '기술 만능주의'와 '재료 변장(Disguise) 놀이'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소비자는 이제 셰프의 현란한 '마술'이 아니라, 재료가 가진 정직한 '맨얼굴'을 원한다.
송훈의 패착: "굳이 미더덕을 숨겼어야 했나"
뉴욕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일레븐 매디슨 파크'의 부주방장 출신인 송훈 셰프는 '창원 미더덕'이라는 낯선 식재료 앞에서 자신의 기술적 우위를 증명하려 했다. 그는 미더덕이 가진 특유의 바다 향과 오독한 식감을 해체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목표는 미더덕을 최고급 식재료인 '성게알(우니)'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미더덕을 갈아 폼을 만들고, 색감을 조절해 성게알의 모양을 빚어냈다. 요리 이름조차 '미더덕으로 만든 성게알'이었다. 접시 위에는 화려한 꽃 장식과 함께 가짜 성게알이 놓였다. 시각적으로는 완벽한 파인 다이닝의 한 접시였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미각은 속일 수 없었다. 백종원 심사위원은 시식 직후 "굳이 미더덕을 숨겼어야 했나"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안성재 심사위원의 평가는 더 냉혹했다. 그는 "방향을 조금 아쉽게 잘못 선택한 것 같다"며 혹평했다. 이는 로컬 푸드를 다루는 현대 셰프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다. 저렴하거나 투박한 식재료를 고급스럽게 포장하기 위해 그 재료가 가진 고유의 생명력을 거세해 버린 것이다. 미더덕은 씹을 때 터지는 향과 오독한 식감이 생명인 재료다. 그것을 갈아서 성게알 흉내를 낸 것은, 재료에 대한 존중이라기보다 셰프의 테크닉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화'에 가까웠다.
반면 상대였던 흑수저 '요리 괴물'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는 "미더덕은 손을 대면 댈수록 맛과 향이 빠진다"며 미더덕을 단순한 회로 내놓았다. 기교를 뺀 직관적인 맛. 결과는 2:0, 요리 괴물의 완승이었다. "미더덕은 미더덕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는 단순한 진리가 뉴욕 파인다이닝의 기교를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정호영의 과욕: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일식의 대가 정호영 셰프 역시 비슷한 함정에 빠졌다. '포항 아귀' 대결에서 그는 아귀 살보다 값비싼 아귀 간(안키모)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귀 살로 만든 차완무시에 녹진한 아귀 간을 듬뿍 얹은 요리는 누가 봐도 풍성하고 맛있어 보였다. 정 셰프 스스로도 "아귀 살은 싸고 간이 비싸다. 이 귀한 아귀 간의 맛을 최대한 부각시키겠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심사 결과는 흑수저 '서울 엄마'의 승리였다. 심사위원들은 정호영의 요리에 대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입을 모았다. 안성재 심사위원은 "간을 이렇게 많이 썼는데 맛이 없으면 이상한 것"이라며, 이것은 '아귀 요리'가 아니라 '간 요리'라고 평가 절하했다. 반면 흑수저 '서울 엄마'는 투박한 매콤한 조림을 내놓았다. 그녀는 아귀 살의 식감을 그대로 살리고, 우리가 아는 그 '아귀 맛'을 정직하게 구현했다. 심사위원들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결국 "가장 아귀다운 맛"을 선택했다.
최강록의 해체: 변장이 아니라 '탐구'다
그렇다면 기술을 쓰지 말아야 하는가? 아니다. '진도 대파' 대결에서 승리한 최강록 셰프는 기술을 통해 재료를 '숭배'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그는 "이 세상에 대파밖에 없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요리를 시작했다. 그는 대파 하나로 육수를 내고, 굽고, 튀기고, 찌는 등 대파가 가진 모든 물성을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그의 요리 '대파 차완무시'는 대파를 다른 요리로 위장하지 않았다. 대신 대파가 가진 '단맛'과 '향'이라는 본질을 극한으로 쥐어짰다.
백종원 심사위원은 "파구나, 이것도 대파구나, 이것도 대파야... 혀를 가지고 우리를 농락시키는 거야"라며 극찬했다. 최강록의 기술은 대파를 가리기 위한 화장이 아니라, 대파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도구였다. 기술은 재료를 돕기 위해 존재해야지, 재료를 지우기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흑백요리사2의 1:1 대결은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소비자는 이제 '성게알이 된 미더덕'을 원하지 않는다. 셰프의 역할은 재료에 가면을 씌우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가진 민낯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미더덕이 굳이 성게알이 되지 않아도, 아귀 살이 아귀 간 뒤에 숨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위대할 수 있다. 흑백요리사2는 파인 다이닝 업계에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당신은 재료를 요리하는가, 아니면 당신의 기술을 요리하는가."
Cook&Chef / 민혜경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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