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의서와 현대 연구가 동시에 주목한 갓의 힘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쌀밥 한 숟가락에 갓김치 한 줄만 있어도 밥상이 갑자기 풍성해지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호불호가 갈리는 별미쯤으로 취급됐지만, 요즘은 “한 번 빠지면 못 끊는 김치”라며 일부러 갓김치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수 돌산갓김치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마트 진열대에 갓피클, 갓김밥, 갓샌드위치까지 등장하면서 갓은 어느새 ‘마니아 채소’에서 건강 식재료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갓이 그저 입맛을 돋우는 채소를 넘어, 전통 의학과 현대 영양학이 모두 주목하는 ‘기능성 채소’라는 사실이다. 기침·가래를 줄이고, 신장의 독을 풀어주며, 고혈압과 암 예방에까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따뜻하고 매운 기운, 폐와 신장을 깨우다
갓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중국 원산의 십자화과 채소인 갓은 배추와 같은 속에 속하지만, 기운과 맛은 사뭇 다르다. 옛 의서에서는 “모양은 배추를 닮았으나 털이 있고 맛은 매우면서 알싸하다”고 표현했다. 오늘날에는 품종 개량으로 잎의 털이 거의 사라졌지만, 특유의 톡 쏘는 매운맛은 여전히 갓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은 갓을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하며, 독이 없고 기를 잘 통하게 한다”고 기록한다. 눈과 귀를 밝게 하고, 아홉 개의 구멍(눈, 귀, 코, 입, 항문, 요도)의 소통을 도와주며, 신장의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고도 했다. 특히 폐와 관련된 효능이 반복해서 언급된다.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삭이며, 막힌 폐기를 풀어 가슴과 위의 답답함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전통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갓의 매운맛은 코에서 먼저 아린 느낌을 준다. 코는 폐로 통하는 문이기 때문에, 갓의 자극이 곧 폐기관지에 작용한다는 해석이 붙는다. 그래서 몸이 차고 기침·가래가 잦은 사람, 손발이 쉽게 차고 냉증이 심한 사람에게 갓김치 한 접시는 그저 밥도둑이 아니라, 기운을 끌어올리고 막힌 순환을 풀어주는 일종의 ‘식약(食藥)’에 가깝다.
갓의 씨앗 역시 오래전부터 약으로 쓰였다. 갓의 씨는 ‘개자(芥子)’라고 불리며, 특히 흰 갓의 씨인 ‘백개자(白芥子)’는 처방에 자주 등장한다. 갓보다 열성이 더 강하고 매운맛이 뚜렷해, 기침·가래를 줄이고 냉기를 몰아내는 용도로 사용됐다. 갓씨, 차조기씨, 무씨를 함께 쓰는 ‘삼자양친탕’은 노인성 폐질환으로 인한 기침·숨참을 다스리는 대표 처방으로 알려져 있다. “세 아들이 부모를 봉양한다”는 이름 그대로, 나이 든 부모의 숨을 편안하게 해주는 처방이라는 의미다.
시니그린·글루코시놀레이트… 갓이 가진 ‘알싸한 과학’
갓 특유의 알싸한 향과 톡 쏘는 매운맛은 단순한 감각적 특성이 아니다. 갓과 브로콜리·배추·케일 등 십자화과 채소에 공통적으로 풍부한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가 열쇠다. 그중에서도 갓씨에 특히 많이 들어 있는 시니그린(sinigrin)은 잘게 썰거나 으깨는 과정에서 효소 작용을 받아 겨자유 계열 물질로 바뀌며, 강한 매운맛과 함께 항균·항암 활성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니그린은 모세혈관을 확장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해 몸을 따뜻하게 만들고, 노폐물을 흘려보내는 데 도움을 준다. 이 과정에서 체액 순환이 원활해지며 부종이 줄고, 지방 연소와 대사 촉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보고가 있다. “갓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말의 배경에는 바로 이 성분의 역할이 자리하고 있다.
갓의 기능성을 정면으로 다룬 국내 연구도 적지 않다. 전남대학교 연구팀은 ‘유산균을 첨가한 돌산갓김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돌산갓이 암세포 증식 억제, 항산화, 고혈압 억제에 일정한 효과를 보인다는 결과를 잇달아 내놓았다. 돌산갓 추출물을 활용한 기능성 음료, 갓차, 갓 조미료, 돌산갓에서 분리한 발효종균 등 다양한 응용 식품 개발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연구 결과에 기반한 움직임이다.
여기에 더해, 갓은 일반 채소에서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과 무기질, 비타민이 풍부하다. 특히 100g당 엽산 함량이 약 370㎍에 달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엽산은 DNA 합성과 세포 분열에 필수적인 영양소로, 성장기 어린이·임산부·수유부, 그리고 술을 자주 마시거나 특정 약물을 복용하는 성인에게도 꼭 필요한 성분이다. 충분한 엽산 섭취는 빈혈 예방은 물론, 뇌졸중·대장암·직장암 위험을 낮추는 것과도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갓은 주로 김치 형태로 섭취되기 때문에 일반 조리 과정에서 엽산이 쉽게 파괴되는 다른 채소와 달리 영양소 손실이 비교적 적다는 장점도 있다. 갓에 풍부한 칼륨은 나트륨 배출을 도와 고혈압 예방에 기여하고, 발효 과정에서 칼슘이 젖산과 결합해 뼈 형성에 도움을 주는 젖산칼슘으로 바뀌는 점 역시 돌산갓김치가 ‘골다공증 세대’의 기능성 김치로 거론되는 이유 중 하나다.
식욕 떨어지는 날, 갓김치 한 조각의 힘
갓의 진가는 결국 식탁에서 완성된다. 톡 쏘는 매운맛이 침샘을 자극해 식욕을 돋우고, 위장 운동을 활성화해 소화와 배변을 돕는다.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차가운 성질의 돼지고기·해산물과 잘 어울려, 돼지고기 김치찌개나 보쌈, 생굴과 함께 곁들이면 속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된장과의 궁합도 좋다. 단백질·미네랄이 풍부한 콩 발효식품인 된장과 엽산·칼륨·비타민이 풍부한 갓이 만나면, 맛·영양·소화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한 끼가 된다. 갓 된장무침, 갓 된장비빔밥은 예부터 입맛이 없을 때 찾던 ‘봄밥상 메뉴’이자, 요즘 말로 하면 완성도 높은 건강식이다.
김장철이 되면 갓은 말 그대로 ‘약방의 감초’처럼 김장에 꼭 들어가는 야채가 된다. 배추김치 속에 적갓을 조금 넣어 풍미를 살리고, 별도로 담근 갓김치는 늦겨울까지 입맛과 장 건강을 책임지는 장기전 전략 식품의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돌산갓을 이용한 갓피클과 갓물을 활용한 갓차 등, 매운 기운을 조금 누그러뜨린 가공식품들도 등장해 “갓은 매워서 못 먹는다”던 이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갓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채소다. 삼국시대부터 우리의 밥상 위에 올라왔고,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은 그 효능을 거듭 기록했다. 현대 연구는 그 기록이 단순한 민간의 믿음이 아니라, 글루코시놀레이트·시니그린·엽산·무기질 등의 과학적 기반 위에 놓여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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