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 이야기] 현지인들의 소울푸드 ‘파미레스’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 2026-09-02 15:16:03

사이제리야 ‘커피 젤리’부터 로얄 호스트 ‘어니언 수프’까지
현지인이 열광하는 파미레스 ‘오시(推し)’ 메뉴 총망라

[Cook&Chef = 이승우 기자] 여행객들의 가이드북은 늘 100년 된 노포(老舗)나 미슐랭 별을 받은 식당으로 향하지만, 막상 일본 현지에 거주하다 보면 그런 거창한 식당보다는 동네 구석구석 자리 잡은 ‘파미레스(ファミレス, 패밀리 레스토랑의 일본식 줄임말)’의 문턱을 넘을 일이 훨씬 많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가벼웠던 유학 시절, 파미레스는 완벽한 안식처이자 아지트였다. 요리 하나를 시켜두고 300엔 남짓한 가스토(ガスト)의 ‘드링크 바(Drink Bar)’만 추가하면 메론 소다부터 따뜻한 커피까지 음료를 무제한으로 가져다 마실 수 있었다. 푹신한 소파 의자에 기대어 학우들과 밤새 수다를 떨거나 과제를 하던 시간들.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음식과 눈치 보지 않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파미레스는 단순한 식당을 넘어 일본인들의 일상에 스며든 ‘공간 소비’ 문화 그 자체였다.

마이카 붐에서 심야의 오아시스까지, 파미레스가 만든 거대한 인프라

파미레스가 이토록 일본 사회의 필수 인프라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대적 변화와 외식업계의 혁신이 맞물려 있다.

1970년 도쿄도 후추시에 문을 연 최초의 현대적 패밀리 레스토랑 ‘스카이락(すかいらーく)’은 당시 마이카(My Car) 붐을 타고 교외 간선도로변을 공략해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점포가 급증하자 업계는 ‘센트럴 키친(Central Kitchen)’을 도입했다. 중앙 공장에서 식재료를 반조리 상태로 가공해 각 매장으로 배송함으로써 전문 셰프 없이도 일관된 맛을 내고 함박스테이크의 가격을 대중적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여기에 파미레스를 단순한 식당에서 ‘불야성’ 일본 사회의 베이스캠프로 만든 결정적 무기가 바로 ‘24시간 영업’과 ‘드링크 바’였다. 1970년대 후반 데니스(デニーズ) 등이 선도입한 24시간 영업 모델은 버블 경제 시기 밤낮없이 활동하던 도시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막차를 놓친 샐러리맨, 밤새워 공부하는 대학생에게 파미레스는 심야의 오아시스였다. 비록 최근에는 극심한 인력난과 팬데믹 이후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대다수 브랜드가 24시간 영업을 축소했지만, 밤을 새우며 메론 소다를 들이켜던 그 시절의 낭만은 일본 외식업계의 가장 찬란했던 황금기로 여전히 회자된다.

최신 웹 랭킹으로 본 파미레스 삼국지, 각 브랜드의 절대적 ‘오시(推し)’ 메뉴

시대의 흐름에 맞춰 심야 영업은 줄었지만, 현재 일본의 파미레스들은 확실한 킬러 메뉴를 앞세워 여전히 외식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2025~2026년 일본 현지의 최신 메뉴 랭킹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부동의 톱 3 브랜드와 팬들이 가장 열광하는 ‘오시(推し, 가장 추천하는 최애 메뉴)’를 꼽아보았다.

사이제리야(サイゼリヤ): 가성비 비즈니스의 끝판왕. 식사류에서는 300엔(약 2,700원)을 유지 중인 ‘밀라노풍 도리아’나 단새우가 듬뿍 올라간 ‘소에비 샐러드’가 영원한 1, 2위를 다투지만, 진짜 매니아들의 마음속 1위 오시 메뉴는 바로 ‘커피 젤리(コーヒーゼリー)’다. 쌉싸름한 특제 젤리 위에 달콤한 밀크 젤라토를 얹어 먹는 이 조합은 수십 년간 파미레스 디저트계의 상징으로 군림하고 있다.


가스토(ガスト): 스카이락 그룹의 대표 주자이자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 최근 인기 메뉴 랭킹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는 가스토의 영원한 오시 메뉴는 단연 ‘치즈 IN 함박스테이크(チーズINハンバーグ)’다. 2025년 기준 12가지로 업그레이드된 치즈가 블렌딩되어 있어, 나이프를 대면 치즈가 용암처럼 쏟아져 내리는 완벽한 퍼포먼스와 맛을 자랑한다.


빗쿠리 동키(びっくりドンキー): 오직 함박스테이크 하나에 집중해 전문성을 끌어올린 브랜드. 최근 메뉴 랭킹에서 절대적 1위를 차지한 이들의 오시 메뉴는 ‘치즈버그 디시(チーズバーグディッシュ)’다. 거대한 나무 문짝 형태의 메뉴판과 나무 접시 위에 육즙 가득한 햄버그스테이크, 독자 개발한 특제 블렌드 치즈, 밥, 샐러드를 한 번에 담아내는 플레이팅으로 일본인의 입맛을 완벽히 저격했다.


가을바람이 불 때, 이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보자

다가오는 올가을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가성비 삼국지를 넘어 조금 더 특별한 미식의 변주를 즐길 수 있는 프리미엄 파미레스 ‘로얄 호스트(ロイヤルホスト)’를 강력히 추천한다. 로얄 호스트는 고품질 식재료와 정통 서양식 조리법을 고수하며, 최근 일본 생산성본부가 발표하는 ‘고객만족도조사(JCSI)’ 외식 부문에서 매년 최상위권을 다투는 저력 있는 브랜드다.

매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그니처 애피타이저인 ‘어니언 그라탕 수프’를 주문하자. 1950년대부터 수십 년간 누적 판매량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 수프는, 오랜 시간 볶아낸 양파의 진한 단맛과 눅진하게 녹아내린 치즈가 차가워진 속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메인으로는 흑우와 흑돼지를 황금비율로 섞어 육즙이 폭발하는 ‘쿠로미트(흑우x흑돼지) 함박스테이크’로 포만감을 채운 뒤, 가을 시즌 한정으로 출시되는 밤(栗)을 듬뿍 올린 ‘마론 파르페’로 코스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전문 다이닝 부럽지 않은 이 정교한 코스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과 안락한 분위기 속에서 즐기는 순간, 왜 수많은 일본 현지인들이 기꺼이 파미레스를 일상의 미식 공간으로 선택하는지 납득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과거 일본 식당 문을 열면 종업원이 으레 건네던 "흡연석과 금연석 중 어디로 하시겠습니까?"라는 익숙한 질문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2020년 일본 건강증진법 개정으로 파미레스 전면 금연이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매장 한편에서 배어 나오던 담배 냄새마저 완전히 사라졌으니, 혹여나 실내 흡연이 걱정되었던 분들이라면 마음 푹 놓고 한결 쾌적해진 파미레스의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겨보길 바란다.

Cook&Chef /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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