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셰프 뉴스] 야니크 알레노, 소스의 마법사에서 미식의 제왕으로
이준민 기자
cnc02@hnf.or.kr | 2025-11-26 21:41:27
- 디올과의 만남, 패션과 미식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도전
- "모던 퀴진"의 창시자, 추출과 발효로 완성한 맛의 정수
[Cook&Chef = 이정호 전문기자] 2025년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17개)를 보유한 셰프. 야니크 알레노(Yannick Alléno)는 단순히 스타 셰프를 넘어 현대 프랑스 요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혁명가로 불린다. 그의 손끝에서 소스는 동사가 되고, 요리는 하나의 완벽한 문장이 된다.
최근에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디올(Dior)의 심장부인 30 몽테뉴 플래그십 스토어의 레스토랑을 총괄하며 패션과 미식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파리, 런던, 두바이, 서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19개 레스토랑을 지휘하는 거대한 미식 제국을 건설한 그의 요리 세계는 전통에 대한 깊은 존중과 미래를 향한 끊임없는 탐구 정신이 공존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다.
비스트로 소년, 요리의 거장이 되다
야니크 알레노의 요리 인생은 그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파리 근교의 작은 비스트로에서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주방의 활기와 손님들의 즐거운 대화 속에서 성장한 그는 자연스럽게 요리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15세에 본격적으로 요리계에 입문한 그는 가브리엘 비스케이, 롤랑 뒤랑 등 당대 최고의 장인들(Meilleur Ouvrier de France) 밑에서 혹독한 수련을 거치며 프랑스 요리의 기본기와 장인정신을 체득했다.
그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호텔 스크리브(Scribe)에서 첫 미슐랭 스타를 획득하면서부터다. 이후 2003년 파리의 전설적인 호텔 르 뫼리스(Le Meurice)의 총괄 셰프로 부임하여 2007년 미슐랭 3스타를 거머쥐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영광에 안주하지 않았다. 2008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야니크 알레노 그룹’을 설립하며 독립적인 미식 제국 건설에 나섰고, 2014년에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위치한 파빌리옹 르두아앵(Pavillon Ledoyen)을 인수, 단 7개월 만에 ‘알레노 파리’에 또다시 미슐랭 3스타를 안기는 기염을 토했다.
'모던 퀴진'과 소스 혁명
야니크 알레노의 요리 철학의 핵심은 ‘모던 퀴진(Modern Cuisine)’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 이는 프랑스 요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유산을 존중하되, 현대적인 기술과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차원의 미식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의 혁신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바로 ‘소스’다. 그는 소스를 “요리의 동사”라고 정의하며, 재료의 맛을 연결하고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알레노는 전통적인 소스 제조법에서 벗어나 ‘추출(Extraction)’, ‘발효(Fermentation)’, ‘냉동농축(Cryoconcentration)’과 같은 과학적 기법을 도입했다. 특히 추출 기법은 수비드를 이용해 정확한 온도와 시간으로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손실 없이 그대로 뽑아내는 기술이다. 그는 열을 가하지 않고 채소나 버섯의 즙을 짜내고, 이를 다시 여러 번 농축하여 맛의 정수만을 남긴다.
이러한 혁신적인 접근은 프랑스 요리계에 ‘소스 혁명’을 일으켰고, 그는 명실상부 ‘소스의 마법사’로 불리게 되었다. 그의 저서 『소스, 한 요리사의 성찰(Sauces, réflexions d’un cuisinier)』은 이러한 그의 철학과 기술을 집대성한 결과물로, 현대 요리사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패션과 미식을 아우르는 글로벌 제국
야니크 알레노의 영향력은 파리를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그의 그룹은 파리의 심장부인 파빌리옹 르두아앵에만 3개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알레노 파리, 라비스, 파빌리옹)을 운영하는 것을 비롯해, 모나코, 런던, 두바이, 서울, 오사카 등 세계 주요 도시에 그의 철학이 담긴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특히 서울 롯데호텔의 ‘스테이(STAY)’는 그의 모던 퀴진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하여 국내 미식가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25년 9월, 그는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LVMH 그룹의 핵심 브랜드인 디올의 파리 30 몽테뉴 플래그십 스토어에 위치한 ‘무슈 디올(Monsieur Dior)’ 레스토랑과 ‘르 자르뎅(Le Jardin)’ 파티세리의 총괄 셰프로 임명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유명 셰프와 럭셔리 브랜드의 만남을 넘어, 오트 쿠튀르와 오트 퀴진(Haute Cuisine)의 철학이 완벽하게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예술적 경험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알레노는 “만약 크리스챤 디올이 오늘날 레스토랑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서 영감을 얻어 메뉴를 구상했다. 디올의 아카이브, 오트 쿠튀르 드레스의 형태와 질감, 그리고 디올이 사랑했던 자연과 꽃의 요소들이 그의 요리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크리스챤 디올의 달걀’과 같이 브랜드의 상징을 담은 메뉴부터, 드레스의 주름을 연상시키는 플레이팅까지, 그의 요리는 마치 입으로 즐기는 디올의 컬렉션과 같다. 최근에는 전설적인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기차와 세계 최대의 요트 코린시안의 총괄 셰프로 임명되는 등, 그의 활동 영역은 육지를 넘어 바다와 철도까지 넓어지고 있다.
야니크 알레노의 여정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오늘도 주방에서 전통의 깊이와 혁신의 날카로움을 오가며 프랑스 요리의 미래를 써 내려가고 있다. 17개의 별은 그의 과거를 증명하는 훈장이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다음 시대의 미식을 향하고 있다. 그는 요리사이자 과학자이며, 이제는 패션과 미식을 잇는 예술가가 되었다.
Cook&Chef / 이정호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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