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연의 맞춤 양념] (8) 설탕⓵

신혜연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10-15 15:59:15

한때 꿀이나 조청보다 귀한 재료였지만
김치찌개에도 넣는 과도한 사랑은 조심

김치찌개에 설탕을 넣어 신맛을 중화시키는 식당들이 많다.  사진 = AI 이미지

[Cook&Chef = 신혜연 칼럼니스트] 예전에 한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다 주방 안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라 젓가락을 내려놓은 적이 있다. 커다란 대야에 고추장, 조미료, 설탕을 듬뿍 부어 양념을 만들고 있었다. 거의 1:1:1에 가까운 조미료 양도 놀라웠지만 더 충격적인 건 설탕이었다. 떡볶이 양념은 고추장과 고춧가루가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탕이 1/3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저녁 찬을 준비하면서 불고기, 멸치볶음, 깻잎조림, 무생채를 만들다가 나 역시 모든 음식에 설탕을 한 숟가락씩 넣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커피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음료도 ‘제로’만 찾으며 나름대로 설탕을 자제한다고 생각했는데, 반찬에는 설탕을 꾸준히 넣고 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양념장 맨 앞줄에서 설탕통을 치웠다. 꼭 필요할 때만 구석에 박아놓은 설탕을 꺼내 쓴다. 

사실 설탕은 매력적인 양념이다. 요리하다 맛이 겉돈다 싶을 때 설탕을 조금 넣으면 여러 맛이 어우러지며 전체적으로 부드러워진다. 특히 신 김치를 씻어 김치찌개를 만들 때 설탕 반 스푼을 넣으면 강한 신맛이 훅 줄어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멸치볶음에는 설탕이나 물엿이 들어가야 잡내가 잡히고, 표면에 자르르 윤기가 돌아 더 먹음직스러워진다. 설탕의 진가는 간장 요리에서 확실하게 발휘된다. 갈비찜, 깻잎조림, 제육볶음, 간장찜닭 등 간장이 들어가는 음식에는 짝꿍처럼 설탕이 함께 한다. 

김치찌개에 설탕을 넣어 신맛을 중화시키는 식당들이 많다.  사진 = wei khang chong-unsplash

설탕의 과도한 사용이 건강의 적이라는데 우리는 언제부터 거의 모든 음식에 설탕을 넣게 된 걸까?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설탕의 초기 기록을 찾아보았다. 우리가 아는 결정체 상태의 ‘설탕’은 이미 기원전에 인도에서 사탕수수즙을 결정(알갱이)으로 만드는 기술을 발명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고, 16세기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설탕이 보급되기 이전에 인류는 꿀, 과일, 곡물 등 자연에서 단맛을 얻었다. 꿀은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에 채취 기록이 남아있을 만큼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자연 속 과일 역시 대부분 단맛을 품고 있다. 탄수화물의 보고인 쌀도 불과 물을 만나 익은 후(호화), 입안에서 씹힐 때 효소작용(당화)을 거치며 단맛을 낸다. 사탕수수 역시 ‘벌 없이 꿀을 생산하는 갈대’라 불릴 만큼 꺾어 씹기만 해도 단물이 나오는 식물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이렇게 꿀과 과일, 곡물 등 자연이 주는 은은한 단맛을 즐겨왔다. 

우리 조상들도 마찬가지였다. 삼국시대부터 양봉으로 얻은 꿀이나 곡물을 엿기름으로 삭혀 졸인 조청造淸 등에서 단맛을 얻었다. 고려시대 이규보의<동국이상국집>(1241년)에 ‘행당맥락杏餳麥酪‘의 ‘당餳’은 단단한 엿이고, ‘낙酪’은 동물의 젖이나 보리로 만든 음료의 일종’이라 소개하고 있고, 조선시대 김유의<수운잡방>(1540년)에도 ‘이당飴餹’ 즉 ‘엿’ 만드는 법과 함께 녹말을 당화할 때 엿기름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꿀과 조청, 엿은 자연 재료에 정성을 더해 만들어지기에 특유의 풍미와 은은한 단맛을 지녀 조림요리를 만들 때, 약과나 강정 같은 한과를 만들 때 주로 쓰였다. 하지만 재료도 흔하지 않고, 만드는 과정도 번거로워서 꼭 필요할 때만 아껴가며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결정체 상태라서 쓰기 편한 설탕은 고려시대에 송나라에서 후추 등의 귀한 향신료들과 함께 들어왔으나, 왕실과 일부 상류층에서만 약재나 기호식품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최초의 식이서인 전순의의<식료찬요>(1460년)에도 ‘사탕沙糖’이 병증과 재료에 따라 가감할 양념 목록에 들어 있다. 근대 이후까지 꿀, 조청도 귀했지만 ‘사탕’은 더 귀해서<조선왕조실록>이나 여러 궁중잔치 의궤에도 중국 사신 접대용이나 잔치 음식에 사용했던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귀했던 ‘사탕’의 대중화는 일제강점기 이후다. 식민지 대만의 사탕수수를 기반으로 일본 제당산업이 성장했고, 1920년대 평양에 대규모 근대식 제당공장이 들어서면서 공급량이 대폭 증가했다. 모래알 같다고 ‘사탕沙糖’이라 부르던 이름도, 깨끗하게 정제되어 눈처럼 희고 부드럽다는 의미의 ‘설탕雪糖’으로 바뀌었다. 신문과 잡지에는 “설탕은 문명인의 기호품이자 영양원”이라는 내용의 요리 기사와 조리법이 실렸고, 조림과 볶음 양념에 설탕을 넣는 조리법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1백 년 전, 일상의 양념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설탕은 이제 우리 식탁의 필수 양념이 되었다. 김치, 장조림, 나물무침에 이르기까지 짜고, 시고, 맵고, 쓴맛을 다듬고 조화롭게 하는 데 설탕은 꽤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입맛이 점점 더 과도한 단맛에 익숙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요즘 새로운 음식을 할 때 유튜브나 인터넷으로 조리법을 찾아 요리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 따라 할 때는 재료와 분량을 거의 똑같이 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요리를 해놓고 보면 내 입에 짜기도 하고, 달기도 하다. 다음번에는 양념을 이렇게 저렇게 조절하자고 생각하지만 다른 맛에 비해 단맛은 의외로 줄이기 어렵다. 또한 외식 횟수가 늘어나면서 달고 짠 음식에 노출되는 기회도 늘어 자연스럽게 우리 입맛은 점점 더 자극적인 단맛에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탕이 한식의 맛을 완성하는 데 기여한 바는 크지만, 건강상의 부담과 함께 원래 한식이 가졌던 재료 자체의 은은한 단맛을 잊게 만드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설탕의 분량을 조금씩 줄여보면 어떨까? 불고기에 키위를 갈아 넣거나, 김치찌개에 양파를 넉넉하게 넣는 것 같은 방식이다. 어쩌면 100년 전, 우리 식탁이 지녔던 자연스럽고 담백한 ‘단맛’의 풍미를 되찾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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