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티켓 EATIQUETTE] 비어가르텐의 테이블에 앉으려면
정수연 기자
cnc02@hnf.or.kr | 2026-10-12 15:00:58
빈자리 묻는 법부터 슈탐티슈와 브로트차이트, 한 자리씩 나누는 법까지
[Cook&Chef = 정수연 기자] 독일 남부 바이에른의 여름 저녁, 커다란 밤나무 그늘 아래 긴 나무 테이블과 벤치가 줄지어 놓여 있다. 곳곳에서는 맥주잔과 저녁 식사가 오가고, 서로 다른 일행이 같은 테이블 양쪽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이곳이 ‘비어가르텐(Biergarten)’이다. 독일어 Bier는 맥주, Garten은 정원을 뜻한다. 특히 바이에른에서 발달한 야외 맥주·식사 공간으로, 큰 나무 아래 마련된 공동 테이블에 앉아 맥주와 음식을 즐기는 생활문화가 함께 이어져왔다. 바이에른의 행정·법률 자료에서도 전통적인 비어가르텐은 녹음이 있는 야외 공간과 손님이 직접 가져온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운영방식으로 설명된다.
마침 긴 테이블 끝에 두 사람이 앉을 만큼의 공간이 남아 있다. 맞은편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이미 저녁을 먹고 있다. 이럴 때는 “Ist hier noch frei?(이스트 히어 노흐 프라이?, 이 자리 비어 있나요?)”라고 먼저 묻는다. 뮌헨 관광청도 긴 비어가르텐 테이블에서 낯선 사람 옆에 자리를 잡는 관습을 자연스러운 일로 소개하며, 앉기 전에 정중하게 빈자리인지 확인하도록 안내한다. 허락을 받았다면 벤치 한쪽에 자리를 잡고 그날의 저녁에 합류하면 된다.
빈자리에는 먼저 한마디를 건넨다
비어가르텐의 긴 테이블에서는 한 일행이 필요한 만큼의 공간을 사용한다. 새 손님이 오면 벤치의 간격을 조금씩 조정하고, 가방이나 겉옷도 옮겨 한 사람 앉을 자리를 만든다. 뮌헨의 공식 비어가르텐 안내 역시 자리가 남아 있을 때 서로 조금씩 자리를 좁혀 낯선 사람을 맞는 행동을 대표적인 관습으로 소개한다.
여기에도 주인이 정해진 자리는 있다. 테이블 위에 ‘Stammtisch(슈탐티슈)’라는 표지가 놓여 있다면 정기적인 단골 모임을 위한 자리다. 독일어권에서 슈탐티슈는 같은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에 반복해서 모이는 단골 테이블과 그 모임을 함께 가리킨다. 뮌헨의 비어가르텐에서는 이 자리에 초대를 받은 사람이 함께 앉는 관습이 이어진다. 그래서 자리를 찾을 때는 먼저 표지를 살피고, 일반 공동 테이블의 빈자리에 앉으면 된다.
자리를 나눈 뒤에는 각자의 저녁이 계속된다. 자기 일행과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옆자리와 말이 섞이기도 한다. 한 테이블에 앉았다는 사실이 모두를 하나의 일행으로 만드는 것보다, 여러 일행이 같은 공간을 편안하게 공유하는 풍경에 가깝다. 실제 뮌헨 관광자료에서도 비어가르텐과 전통 맥줏집에서는 낯선 사람과 한 테이블에 앉고 그 자리에서 대화가 시작되는 모습을 일상적인 문화로 소개한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나면 옆 사람의 식탁이 눈에 들어온다. 빵과 치즈, 소시지와 무가 도시락통과 종이 위에 펼쳐져 있다. 메뉴판에서 주문한 음식처럼 보이지만, 집에서 준비해온 저녁이다.
집에서 가져온 음식도 식탁에 오른다
바이에른에서는 이런 가벼운 식사를 ‘브로트차이트(Brotzeit·브로트차이트)’라고 부른다. 빵과 치즈, 햄이나 소시지, 프레첼, 무 등을 함께 차려 먹는 간단한 한 끼를 뜻한다. 뮌헨의 전통적인 비어가르텐에서는 직접 준비한 브로트차이트를 가져와 먹는 풍경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는 이 장면이 꽤 인상적일 수 있다. 음식과 맥주를 파는 장소에 각자가 집 음식을 가져와 펼쳐놓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따라가면 비어가르텐이 생겨난 19세기 바이에른으로 이어진다.
당시 양조업자들은 여름에도 맥주를 시원하게 보관하기 위해 땅속에 큰 저장고를 만들었다. 저장고 위에는 햇빛을 막아줄 나무를 심었는데, 특히 넓은 그늘을 만들고 뿌리가 얕게 퍼지는 밤나무가 이 환경과 잘 맞았다. 사람들은 시원한 저장고에서 막 꺼낸 맥주를 그 자리에서 마시기 시작했고, 나무 아래에는 테이블과 벤치가 놓였다. 오늘날 비어가르텐을 떠올릴 때 밤나무 그늘과 긴 테이블이 함께 그려지는 배경이다.
1812년 바이에른 국왕 막시밀리안 1세는 양조업자가 이곳에서 맥주를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주변 음식점과의 영업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음식 판매에는 제약이 생겼고, 사람들은 맥주와 함께 먹을 음식을 직접 준비해 가져왔다. 비어가르텐에서 브로트차이트를 펼치는 오늘의 풍경에는 당시의 운영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이 관습은 지금도 비어가르텐의 성격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쓰인다. 바이에른 법원은 전통적 비어가르텐의 특징을 판단할 때 정원 같은 야외환경과 함께 손님이 자기 브로트차이트를 무료로 가져와 먹을 수 있는 운영형태를 중요하게 본다. 오래된 식사 관습이 현재의 제도 속에서도 공간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뮌헨의 전통적인 비어가르텐에서는 셀프서비스 구역에 브로트차이트를 가져오고 음료는 현장에서 구입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음식이 준비되지 않은 날에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오바츠다, 프레첼, 구운 닭 같은 바이에른 음식을 고를 수도 있다. 같은 테이블 위에 집에서 싸온 치즈와 현장에서 산 음식이 나란히 놓이는 풍경도 이곳에서는 자연스럽다.
같은 테이블에서는 어디까지 함께할까
자리를 나누고 각자의 음식을 펼치고 나면 비어가르텐 합석의 성격도 조금씩 보인다. 사람들은 같은 벤치를 사용하면서 각자의 일행과 식사를 이어간다. 대화가 생기면 함께 말을 섞고, 조용히 자기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필요한 만큼의 공간을 사용하고 다음 손님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두는 행동이 긴 공동 테이블을 계속 움직이게 한다.
바이에른의 공식 설명은 비어가르텐이 중요한 ‘사회적·소통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표현한다. 실제 뮌헨 관광청도 낯선 사람을 위해 자리를 좁혀주는 행동을 비어가르텐의 대표적인 관습으로 꼽는다. 같은 직장이나 가족, 친구 관계로 묶인 사람들이 각자의 일행을 유지하면서도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점이 이 공간의 사회성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
바이에른 사람들이 이 공간에 부여해온 무게를 보여주는 사건도 있다. 1995년 뮌헨 근교의 한 비어가르텐 영업시간을 둘러싼 법원 결정이 나오자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비어가르텐 문화를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참가 규모는 약 1만5000명에서 3만 명으로 추산됐고, 관련 서명은 20만 건에 이르렀다. 이후 논쟁은 1999년 바이에른 비어가르텐 조례로 이어졌다. 여름 저녁의 맥주 한 잔과 긴 테이블이 현지에서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여져왔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긴 테이블이 이어주는 바이에른의 여름
저녁이 깊어지면서 처음부터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테이블 위의 접시가 정리되고 벤치에는 다시 빈자리가 생긴다. 조금 전까지 손님이었던 사람도 어느새 이 테이블의 먼저 온 사람이 되어 있다.
그때 새로운 두 사람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벤치 끝에서 걸음을 멈춘다.
“Ist hier noch frei?”
처음 비어가르텐에 들어왔을 때 자신이 건넸던 것과 같은 질문이다. 이번에는 몸을 조금 옮기고 옆의 소지품을 정리해 한 사람이 앉을 만큼 공간을 만든다. 짧게 인사를 나눈 새 손님은 자리에 앉고, 테이블 위에는 또 다른 저녁이 시작된다.
비어가르텐의 긴 테이블에서 자리를 나눈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 먼저 온 사람에게 한 자리를 부탁하고, 식사가 끝날 즈음에는 다음 사람에게 다시 한 칸을 내어준다. 밤나무 아래의 긴 벤치는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의 저녁을 한 자리씩 이어 붙이며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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