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열의 '음식잡설(雜說)'] (15) 소머리국밥

신상열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10-12 15:01:10

값싼 재료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특수부위
맛내기는 쉽지 않지만 오래된 것들과 맞춤 음식
삼청동 진성옛날소머리국밥집  사진 = 신상열 칼럼니스트

[Cook&Chef = 신상열 칼럼니스트] 삼청동의 진성옛날소머리국밥집을 찾았다.

삼청동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곳이다. 본래는 휴일 아침 일찍 길상사에 들렀다가 삼청공원을 걷고, 부영도가니탕을 찾는 코스를 좋아한다.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마음에 새기고 삼청공원을 걷다 보면 슬슬 허기가 진다. 이렇게 한가로이 휴일 아침을 보내고 나면 한 주가 편안하다.

마침 부영도가니탕이 문을 닫은 바람에 발걸음을 조금 더 옮겨 소머리국밥집을 찾았다. 노포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다. 

주인 할머니가 어디를 가셨는지 할아버지가 손님을 맞는다.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대개 옛날 남자들은 마지못해 가게를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할머니가 빨리 돌아오셔야 가게가 정상 궤도를 찾을 것인지, 손님을 맞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영 어색하다.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능숙한 친절은 없지만 오래된 식당에 어울리는 투박함이 있다. 할머니가 계셨다면 조금 더 살갑게 손님을 맞았을 것이다. 대개 생계에 더 부지런한 쪽은 할머니들이었던 것 같다. 이것도 편견일지 모르지만 살아오면서 그런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소머리국밥을 주문했다.

15년쯤 전 정육식당을 운영하면서 소나 돼지의 특수부위에 관심이 많았다. 버려지거나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의 값어치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지만, 실상은 특수부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높은 부가가치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겹살이나 꽃등심은 가격이 대부분 일반화되어 있었다. 손님들도 대략적인 가격을 알고 있으니 돈 벌어 먹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특수부위는 달랐다. 어떻게 구하고 손질하느냐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졌다.

1년에 한두 번 소머리를 통째로 주문해 분해해서 팔았다.

소머리는 생각보다 크고 무겁다. 볼살과 턱 주변의 살, 혀까지 먹을 수 있는 부위가 제법 많다. 부위마다 식감도 다르다.

하지만 손질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뼈와 고기를 분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무게에 비해 실제 판매할 수 있는 고기의 양도 많지 않다.

당시에는 소머리 한 개를 얼마에 사서 고기가 몇 킬로그램 나오고, 얼마에 팔면 얼마나 남을지만 계산했다.

소머리국밥의 정확한 유래는 알기 어렵다. 다만 소가 귀했던 시절, 소를 잡으면 머리와 내장, 뼈까지 버리지 않고 활용하던 식문화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농사를 짓던 시절 소는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귀한 소를 잡았으니 머리까지 먹어야 했을 것이다. 머리에 붙은 고기를 발라내고 뼈를 오래 고아 국물을 만들었을 것이다.

소머리국밥은 만드는 방법만 보면 단순하다. 고기를 오래 삶아 국물을 내고, 머릿고기를 썰어 넣으면 된다.

하지만 쉬운 음식은 아니다.

특유의 잡내를 잡고 진한 육수를 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첨단 제조에 버금가는 고급 기술이다. 센 불에 잠깐 끓인다고 제맛이 나는 음식이 아니다. 오래 삶아야 고기가 부드러워지고 국물에도 맛이 배어난다.

그렇다고 무조건 오래 끓인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고기는 적당히 삶아야 하고 국물도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인지 소머리국밥은 새로 지은 건물에 세련된 인테리어를 한 식당보다 낡은 식탁과 오래된 주방이 있는 곳이 더 잘 어울린다.

삼청동의 이 식당도 그렇다.

손님을 맞이하는 할아버지의 어색한 모습도, 잠시 자리를 비우신 할머니도 소머리국밥과 잘 어울린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노부부와 오랫동안 끓여야 제맛이 나는 소머리국밥.

둘 다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다.

젊은 시절에는 몰랐던 서로의 성격을 이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고, 때로는 다투면서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하루를 보낼 것이다.

할머니가 안 계신 사이 어색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할아버지를 보니 두 분이 함께 가게를 지켜온 세월이 궁금해진다.

할머니가 돌아오시면 할아버지는 다시 평소의 자리로 돌아가실까.

역시나 할머니가 돌아오시자 할아버지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신다.

그 모습이 왠지 정겹다.

할아버지는 할 일을 다 하셨다.

15년 전에는 소머리를 보면 부가가치부터 계산했다. 지금도 음식점에 가면 재료비가 얼마나 들었을까, 손님이 얼마나 와야 남을까 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다만 이제는 그런 계산을 AI에게 맡길 수 있으니 굳이 머리를 싸매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오래된 것에서 느껴지는 정겨움이다.

소머리국밥이 그렇고, 삼청동의 오래된 골목이 그렇다. 어색하게 손님을 맞이하다 할머니가 돌아오자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시던 할아버지의 모습도 그렇다.

오래되었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만 생기는 맛과 정이 있는 것 같다.

소머리국밥은 오래 끓여야 제맛이 나고, 사람 사이의 정도 오랜 시간을 함께해야 깊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소머리국밥과 노부부가 참 잘 어울린다.

휴일 아침, 삼청동의 오래된 식당에서 소머리국밥 한 그릇을 먹었다.

국물은 오래 끓여야 깊어지고, 사람 사이의 정은 오래 함께해야 깊어진다.

한 주를 시작하기에 제법 괜찮은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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