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열의 '음식잡설(雜說)'] (12) 추석엔 돼지갈비찜
신상열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09-21 15:00:53
한 냄비 만들어 두면 온 가족 “아, 배부르다”
[Cook&Chef = 신상열 칼럼니스트] 명절이 다가오면 몇몇 음식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전, 잡채, 나물, 갈비찜.
명절이라는 이유로 평소에는 잘 만들지 않는 음식들을 한꺼번에 준비한다. 문제는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전 하나 부치려 해도 재료를 사고, 다듬고, 밀가루와 계란물을 묻혀 하나씩 부쳐야 한다. 잡채도 당면만 삶는다고 끝나는 음식이 아니다.
명절이면 돼지갈비를 한다. 손도 덜 가고, 푸짐하고 명절 분위기도 난다. 다만 구이보다는 찜으로 먹는다. 구이는 평소 갈빗집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으니 명절에는 커다란 냄비에 푹 끓여 찜으로 먹는 게 좋다.
소갈비는 거추장스럽다. 가격부터 생각하게 된다. 돼지갈비는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하다. 조금 넉넉하게 사서 큰 냄비 가득 만들어 놓으면 식구들이 한두 점 더 집어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돼지갈비는 부족하게 먹는 것보다 배부르게 먹어야 제맛이다.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한번 데친다. 간장과 설탕이나 올리고당, 다진 마늘과 양파로 양념을 만들고 여기에 갈아먹는 배를 붓는다. 나만의 레시피라고 자부하지만 이미 소문이 많이 난 듯하다. 설탕만 넣었을 때보다 단맛이 부드럽고 고기도 한결 연해진다.
양념에 재운 갈비를 냄비에 넣고 감자와 당근을 큼직하게 썰어 함께 끓인다. 국물이 졸면서 갈비에 윤기가 돌고, 젓가락으로 집었을 때 살이 뼈에서 슬쩍 떨어지면 다 된 것이다.
갈비 한 점에 밥 한 숟가락.
양념이 푹 밴 감자 하나.
다른 반찬이 없어도 된다.
결국 이런 말이 나온다.
“아, 배부르다.”
돼지갈비는 배부름과 잘 어울린다. 함포고복이다.
정재민의 『혼밥 판사』에도 돼지갈비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복잡한 사건과 사람들의 사연을 마주하며 하루를 보낸 사람이 길을 걷다가 갈빗집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결국 혼자 들어가 돼지갈비를 뜯고 소주 한잔을 곁들인다. 그에게 한 끼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지친 하루를 달래는 시간이 된다.
고단한 하루 끝에 소주 한잔과 먹기도 하고, 월급날 가족과 배부르게 먹기도 했다. 소갈비처럼 특별한 날 큰마음 먹고 먹는 음식이라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비교적 부담 없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에 가깝다.
돼지고기는 옛날 명절 풍경에도 빠지지 않았다.
지금처럼 정육점이나 마트에서 필요한 만큼 사 먹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명절이나 잔치를 앞두고 집에서 키우던 돼지를 잡기도 했다. 돼지 한 마리를 잡는 날이면 집안만의 일이 아니었다. 친척과 이웃이 모였고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돼지 한 마리가 여러 사람의 배를 채웠다.
그래서 예전의 ‘돼지를 잡는다’는 말에는 단순히 고기를 마련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명절이 왔다는 것,
사람이 모인다는 것,
그리고 오랜만에 고기를 배부르게 먹는다는 것.
지금은 명절이라고 돼지를 잡을 필요도 없고, 며칠 전부터 온 가족이 음식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명절이면 평소보다 음식을 조금 넉넉하게 하게 된다.
이번 명절에도 돼지갈비를 한 냄비 할 생각이다.
갈아먹는 배를 넣고 달짝지근하게 양념해서 푹 끓인다. 식구들이 먹고 나서 “배부르다”고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돼지갈비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해놓고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사실 양념이 진한 돼지갈비보다 얇은 고기를 불판에 올려 금방금방 구워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복잡한 양념도 필요 없다. 소금장 조금, 마늘 하나면 된다. 그래서인지 대패삼겹살이 더 맛나다.
명절이 되니 생각이 바뀐다.
돼지갈비가 먹고 싶다.
그래도 명절이라고, 그리운 것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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