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이 일본] 양갱은 일본선 ‘명품 다과’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 2026-09-19 15:00:02

한국선 ‘국민 간식' ... 재료는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미식

[Cook&Chef = 이승우 기자] 해태제과의 ‘연양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 달콤한 막대형 과자는 등산객들의 배낭 속 필수품이자, 동네 마트 계산대 앞에서 동전 몇 개로 가볍게 집어 들 수 있는 친숙한 서민 간식이다. 우리에게 양갱은 그저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달달하고 저렴한 옛날 과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가면 양갱의 위상은 180도 달라진다. 일본에서 양갱은 화과자(和菓子)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대우받는 귀한 명품 다과다. 유서 깊은 노포(老舗)의 장인이 쑨 양갱은 고급스러운 오동나무 상자에 담겨 명절이나 중요한 비즈니스 자리의 품격 있는 선물로 오가며, 격식을 갖춘 다도(茶道) 자리에서도 쌉싸름한 말차에 곁들이는 최고의 페어링 파트너로 꼽힌다.

승려들의 ‘가짜 고기 수프’에서 시작된 반전 역사

어떻게 똑같은 양갱이 일본에서는 이토록 고급스러운 대접을 받게 된 것일까. 그 기원은 역설적이게도 양갱(羊羹)이라는 이름에 숨어 있다. 본래 양갱은 고대 중국 유목민들이 먹던 ‘양고기로 끓인 맑은 장국(수프)’이었다. 이것이 차가운 날씨에 식어 젤라틴 성분 때문에 묵처럼 굳어진 것이 양갱의 시초다.

가마쿠라 시대, 선종 승려들이 이 음식을 일본에 들여왔지만 불교의 율법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붉은 팥을 삶아 칡가루와 섞어 찌는 방식으로 고기 수프가 굳은 모양을 흉내 냈다. 승려들의 짭짤한 모방 요리로 시작된 이 ‘가짜 양고기 수프’는 시대가 흘러 설탕과 우뭇가사리(한천)를 만나면서 오늘날의 단단하고 달콤한 팥 디저트 ‘네리요칸(연양갱)’으로 화려하게 진화했다.

“굳이 비싼 돈 주고 양갱을?”… 이름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장르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나라의 양갱은 이름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장르의 음식이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한국의 양갱이 획일화된 강한 단맛과 부드러운 식감에 집중한다면, 일본의 수제 양갱은 미각과 시각을 모두 충족시키는 ‘종합 예술’에 가깝다.

우선 ‘맛의 해상도’가 다르다. 일본 장인들은 팥 본연의 은은한 단맛과 묵직한 구수함을 끌어내는 데 집중한다. 지나치게 달지 않아 입안에 텁텁함이 남지 않고, 팥 알갱이의 질감이 기분 좋게 씹힌다.

계절의 정취를 고스란히 살려내는 시각적인 연출 역시 압도적이다. 투명한 한천 속에 흩날리는 벚꽃을 가두거나, 가을밤의 달을 형상화한 노란 밤(栗)을 띄워 작은 사각형 젤리 안에 사계절의 풍경을 담아낸다. 특히 무더운 여름철에 즐겨 찾는 ‘물양갱(미즈요칸)’은 일본 수제 양갱의 섬세한 미학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청량한 푸른 대나무 통 안에 수분감 가득한 맑은 양갱을 채워 넣고, 싱그러운 댓잎으로 입구를 감싸 얼음 위에 얹어 내는 비주얼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시원한 풍경화다. 대나무 통을 가볍게 두드려 탱글탱글한 양갱을 쏙 빼먹는 재미까지 더해져, 단순한 간식 섭취를 넘어 계절감을 오감으로 만끽하는 특별한 미식의 경험을 선사한다.

‘겉바속촉’ 양갱의 진수, 사가현 ‘오기 양갱’을 아시나요

수백 년의 명맥을 이어온 수많은 양갱 명가들 중에서도, 일본 전통 양갱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규슈 사가현(佐賀県)의 작은 소도시 ‘오기시(小城市)’를 강력히 추천한다.

이곳은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양갱 특산지로, 옛 방식을 고수하는 20여 곳의 양갱 전문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일반적인 양갱이 비닐에 밀봉되어 겉과 속이 모두 촉촉한 반면, 이곳의 명물인 ‘오기 양갱(小城羊羹)’은 완성된 양갱을 자른 뒤 며칠간 겉면을 건조하는 독특한 숙성 과정을 거친다.

수분이 날아가며 겉면의 설탕이 굳어 하얗게 결정화되는데, 한 입 베어 물면 얇은 얼음보숭이처럼 ‘사각(샤리샤리)’ 부서지는 경쾌한 식감을 선사한다. 바삭한 겉면과 대비되는 속의 묵직하고 촉촉한 팥의 풍미는 그야말로 ‘겉바속촉(겉은 바삭, 속은 촉촉)’의 기분 좋은 반전을 만들어낸다.

미식의 나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마트 매대에서 보던 익숙한 양갱에 대한 선입견은 잠시 접어두자. 정취 있는 찻집에 앉아 겉바속촉의 예술 작품 같은 양갱 한 조각을 베어 무는 순간,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짜 양갱의 품격이 입안 가득 달콤하게 퍼져나갈 것이다.


Cook&Chef /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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