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튀겨 먹는 일본… ‘단풍잎 튀김’의 반전 미식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 2026-09-21 15:00:48

1년의 기다림 끝에 맛보는 낭만
오사카 미노오 폭포길에서 만난 '모미지 텐푸라'

[Cook&Chef = 이승우 기자]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 한국인들의 기억 한편에는 공통된 후각적 향수가 자리 잡고 있다. 마당이나 골목 한구석에 바싹 마른 낙엽을 수북하게 모아 불을 피우고, 그 매캐한 연기 속에서 군고구마나 알밤을 까맣게 구워 먹던 기억이다. 타들어 가는 낙엽의 냄새는 곧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한국식 가을의 낭만이었다.

그렇다면 바다 건너 일본은 어떨까. 일본인들 역시 가을 단풍을 끔찍이 사랑하지만, 이들은 낙엽을 모아 불을 피우는 대신 아주 독특한 미식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떨어지는 단풍잎의 형태를 고스란히 살려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낸 요리, 바로 오사카의 명물 ‘모미지 텐푸라(단풍잎 튀김)’다.

1,300년 전 수행자의 낭만이 낳은 가을의 맛

단풍잎 튀김이라는 낯선 요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오사카 도심에서 전철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북부의 소도시, ‘미노오(箕面)’로 향해야 한다. 오사카 최고의 단풍 명소로 꼽히는 미노오 폭포로 이어지는 산책로에 들어서면, 고소하고 달콤한 튀김 냄새가 진동한다. 산책로 양옆으로 늘어선 수십 개의 오래된 상점들이 저마다 커다란 솥을 걸고 붉은 잎사귀를 쉴 새 없이 튀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잎사귀를 튀겨 먹기 시작했을까. 그 기원은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노오 폭포 아래에서 수행을 하던 산악 신앙의 창시자 ‘엔노 교자(役行者)’가 폭포수 위로 비친 붉은 단풍의 절경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길을 걷는 여행객들과 나누기 위해 단풍잎을 유채 기름에 튀겨 건넨 것이 시초로 전해진다.


무맛(無味)의 낙엽을 ‘단짠’ 미식으로 바꾼 1년의 기다림

처음 이 요리를 접하는 이들은 누구나 예리하고도 현실적인 의문을 품는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낙엽을 튀기면 무슨 맛이 나겠는가?’ 솔직하게 말해, 단풍잎 자체에는 우리가 식재료에서 기대하는 어떠한 맛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의 모미지 텐푸라는 땅에 떨어진 마른 잎을 대충 주워다 튀기는 불량식품이 아니다. 미노오의 장인들은 튀김용으로 적합한 잎맥이 얇고 부드러운 단풍나무(이치교지)를 따로 재배한다. 가을에 온전한 모양의 잎을 수확하면 소금통에 넣어 무려 1년 이상을 묵힌다. 이 숙성 과정을 거쳐야만 잎 특유의 떫은 독성이 빠지고 잎맥이 연해지며, 기분 좋은 짠맛이 잎사귀 깊숙이 스며든다.

이듬해 가을, 소금기를 빼낸 잎에 밀가루와 설탕, 흰깨를 배합한 튀김옷을 두껍게 입혀 깨끗한 기름에 튀겨낸다. 바사삭 부서지는 식감 뒤로 밀려오는 맛은 고급스러운 ‘전통 전병’과 매우 흡사하다. 1년을 묵힌 잎의 짭짤함과 튀김옷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완벽한 ‘단짠단짠(달고 짠)’의 밸런스를 완성하는 것이다.

녹차 곁들이던 옛날 과자, 이제는 힙한 ‘단풍맥’ 트렌드로

과거의 모미지 텐푸라는 주로 어르신들이 따뜻하고 쌉싸름한 녹차에 곁들여 먹는 정통 옛날 과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이 튀김은 미노오 폭포를 찾는 젊은 층과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가장 힙한 미식 트렌드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별 모양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황금빛 튀김이 훌륭한 가을 SNS 인증샷 소품이 될 뿐만 아니라, 미노오 지역 브루어리에서 생산하는 로컬 크래프트 맥주와 완벽한 페어링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가을 시즌 일본 간사이 지역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미노오 산책로 입구에 위치한 80년 전통의 원조 가게 ‘히사쿠니 코센도(久國紅仙堂, 오사카부 미노오시 미노오 1-1-40, 072-721-2747)’를 눈여겨보자.

이곳에서 갓 튀겨낸 단풍잎 한 봉지(가정용 60g 680엔·80g 820엔, 선물용 90g 1,130엔 등)와 지역 수제 생맥주(바이젠·페일에일 등 451엔, 오사루 IPA 484엔, W-IPA 653엔)를 사 들고 폭포를 향해 걸어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쌉싸름하고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고, 달콤 짭짤한 단풍잎을 바삭하게 씹어 넘기는 이른바 ‘단풍맥(단풍잎 튀김+맥주)’의 조화는 가히 압도적이다.

찰나에 사라지는 가을의 색채를 붙잡아 1년을 꼬박 기다려 튀겨낸 이 번거로운 요리는, 오직 이 계절 오사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이고 유쾌한 미식일 것이다. 

Cook&Chef /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