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노트] 늙은 오이라 얕본 ‘노각’의 반전

송자은 기자

cnc02@hnf.or.kr | 2026-08-26 16:48:01

조선오이를 충분히 익혀 수확한 옛날식 채소
열량 적고 무침 냉국 볶음 등 활용 범위 넓어
사진 = 제철을 맞아 판매중인 노각(기자 제공)

[Cook&Chef = 송자은 기자] 무더위가 심상치가 않다. 처서 매직이라며 가을이 성큼 오나 싶었지만 연일 35도를 웃도는 날이 이어진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시원한 음식부터 찾게 된다. 이때 화려한 과일 못지않게 여름 식탁에서 제 역할을 하는 채소가 노각이다. 투박한 생김새 때문에 외면하기 쉽지만 수분이 풍부하고 열량 부담이 적은 데다, 무침부터 냉국과 볶음까지 활용 범위도 넓다.

노각은 이름 그대로 ‘늙은 오이’라고 불린다. 그렇다고 냉장고에 오래 둔 일반 오이가 노각이 되나 하면 그것은 아니다. 우리가 평소 먹는 오이는 다다기오이와 취청오이가 대부분이지만, 노각은 재래 품종인 조선오이를 제때 수확하지 않고 약 30일 더 키워 노랗고 굵게 익힌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잘 익은 오이가 맞지만, 출발부터 일반 오이와 품종이 다른 셈이다.

오래전부터 이어진 여름 오이 문화

오이는 우리 식생활에 오래 자리 잡은 채소다. 통일신라시대 식재료에 오이가 등장하며,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가 텃밭에서 기른 여섯 가지 채소를 읊은 ‘가포육영’에도 오이가 포함돼 있다. 풋오이 뿐 아니라 충분히 자라 노랗게 익은 오이까지 먹었던 식문화가 오늘날 노각무침과 장아찌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옛 문헌에서는 익은 오이를 황과(黃瓜)라고 표현하고 서늘한 성질을 지닌 여름 식재료로 여겼다. 다만 전통 의학에서 말하는 ‘열을 내린다’는 표현을 현대적인 치료 효과로 받아들이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노각의 실제 장점은 수분이 많고 부담 없이 먹기 좋은 채소라는 데서 찾는 편이 합리적이다.

노각은 대부분이 수분으로 이뤄져 있어 더위에 지친 날 식사를 통해 수분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처럼 빠르게 갈증을 해결하는 음료는 아니지만, 식사량이 줄기 쉬운 여름철에 무침이나 냉국으로 곁들이면 수분과 식이섬유를 함께 섭취할 수 있다.

낮은 열량에 비해 부피가 크다는 점도 장점이다. 식이섬유가 들어 있어 식사의 포만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므로 체중을 관리할 때 반찬으로 활용하기 좋다. 다만 노각만 먹는다고 체중이 줄거나 몸속 노폐물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밥의 양과 양념에 들어가는 설탕·고추장·참기름까지 함께 살펴야 가벼운 한 끼가 된다.

노각에 함유된 칼륨은 체내 나트륨 균형과 정상적인 혈압 유지에 관여한다. 문제는 노각을 요리할 때 소금에 절이고 고추장이나 간장을 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절이는 시간을 지나치게 늘리지 말고, 절인 뒤 가볍게 헹궈 물기를 짠 다음 양념의 양을 줄이는 것이 좋다.

또한 노각은 수분과 섬유소가 중심인 채소여서 한 끼에 필요한 단백질과 에너지를 모두 채워주지는 못한다. 달걀이나 두부, 닭고기, 생선 등을 곁들이면 영양 균형을 맞추기 쉽다.

씨를 긁어내고 소금에 절이는 이유

노각을 반으로 가르면 일반 오이보다 크고 단단한 씨와 물렁한 속이 눈에 띈다. 이 부분을 긁어내는 이유는 독성 때문이 아니라 식감 때문이다. 성숙한 씨와 주변 조직을 그대로 두면 씹는 맛이 거칠고 무침에 물이 많이 생길 수 있다.

껍질을 벗기고 씨를 제거한 노각은 너무 얇지 않게 썬다. 소금을 뿌려 10~20분가량 절인 뒤 물기를 충분히 짜면 과육이 오독오독해지고 양념도 덜 겉돈다. 지나치게 얇게 썰면 물기를 짜는 과정에서 과육이 쉽게 찢어질 수 있어 0.4~0.5㎝ 정도 두께가 무난하다.

손질한 노각은 고추장과 식초를 넣어 새콤하게 무치거나 찬 국물에 담아 냉국으로 즐길 수 있다. 들기름과 들깻가루를 넣어 짧게 볶으면 부드러운 나물로 변하고, 피클이나 장아찌로 만들면 제철이 지난 뒤에도 맛볼 수 있다. 냉국은 국물과 노각을 따로 보관했다가 먹기 직전에 합치면 과육이 물러지고 간이 싱거워지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좋은 노각은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들었을 때 묵직하고 껍질이 단단하다. 전체적으로 노란빛이 고르게 돌면서 일부에 푸른빛이 남아 있는 것이 좋다. 눌린 자국이 있거나 껍질이 물렁한 것은 속까지 무르거나 씨 주변이 상했을 가능성이 있다.

노각은 구입한 뒤 오래 두기보다 신선할 때 손질하는 것이 좋다. 바로 먹지 못한다면 무게의 약 2%에 해당하는 소금으로 30분에서 1시간 정도 절여 물기를 제거한 뒤 밀폐해 냉장 보관한다. 이미 무친 노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물이 생기므로, 절인 노각과 양념을 나눠 보관했다가 먹을 만큼만 버무리는 편이 낫다.

한 가지 주의할 점도 있다. 꼭지 부근에서 느껴지는 약한 쌉싸름함과 달리, 한입 먹기 어려울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쓰다면 양념으로 감추거나 익혀 먹지 말고 버리는 것이 안전하다. 오이의 쓴 맛에 관여하는 쿠쿠르비타신 함량이 지나치게 높은 박과 식물은 복통과 구토, 설사 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가열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노각은 특별한 보양식이라기보다 여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강한 일상 식재료다. 수분이 풍부하고 열량 부담이 낮으며, 조리법에 따라 시원한 반찬부터 든든한 한 그릇 요리까지 폭넓게 변신한다. 여름이 완전히 지나기 전, 투박한 노란 껍질 속에 숨은 노각의 맛을 식탁에서 다시 발견해볼 만하다.

Cook&Chef / 송자은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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