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테이블] <터치 오브 스파이스>향신료로 깊어지는 인생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08-27 15:02:53
고향의 향수를 달래주는 풍미 가득한 영화
[Cook&Chef = 조소현 기자] 향신료는 재료의 군내를 덮어주고, 풍미의 층을 만들고,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해준다. 향신료는 인생의 기억을 불러오고, 문화를 전달하고,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는 천문학자 ‘파니스’가 이스탄불에서 홀로 향신료 가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으며 시작한다.
인생에 다채로운 향을 더하는 향신료
영화는 온갖 향신료들에 둘러싸인 유년 시절을 보낸 파니스의 어린시절을 회상한다. 어느 날, 젊은 여자 손님이 할아버지의 향신료 가게에 찾아온다. 그녀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쾨프테’를 대접한다며, 커민을 달라고 한다.
‘커민(쿠민)’은 상쾌하면서도 묵직한 향을 지닌 향신료로, 고기의 잡내를 줄이고 풍미를 돋우는 데 쓰인다. 중국에서는 ‘쯔란’으로 불리며, 인도를 비롯해 중동과 지중해권 등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요리에 사용된다. 튀르키예의 대표적인 고기 요리인 ‘쾨프테’에도 흔히 사용된다.
다진 고기에 양파와 허브, 향신료 등을 넣어 빚는 쾨프테는 미트볼과 유사한 음식으로,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커민은 이 쾨프테에 특유의 깊고 이국적인 향을 살리는 단골 재료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커민이 아닌 계피를 권한다. 익숙하고 예상 가능한 맛에서 벗어나야 좋아하는 사람에게 남다른 인상을 줄을 수 있다는 조언까지 덧붙인다. 파니스는 이런 할아버지를 통해, 살다보면 마주하는 문제에 향신료를 곁들이면 인생은 새로운 맛이 난다는 것을 배운다.
향신료는 파니스에게 태양계를 알려주는 좋은 교구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을 굽어 살피는 태양처럼 따뜻하고 알싸한 후추는 모든 음식의 풍미에 바탕이 된다. 아프로디테처럼 아름다운 금성은 톡 쏘면서도 달콤한 계피를 닮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음식을 맛깔나게 하는 소금과도 같다.
이처럼 향신료에 빗대어 세상을 알려준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파니스 인생에 나침반이 되어준다.
두 나라의 갈등, 떠나야하는 가족들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위치 탓에 많은 교류를 하기도 했지만, ‘에게해의 앙숙’이라 불릴 정도로 수백 년동안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1955년, 이스탄불에서 그리스계 주민을 겨냥한 대규모 폭력 학살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몇 년 후 그리스인들에 대한 추방 명령이 내려진다. 영화 속 파니스의 가족도 그리스 국적을 가진 아버지를 따라 아테네로 추방당하는데, 튀르키예 사람인 할아버지는 이스탄불에 남게된다.
유년 시절의 모든 것이 있는 이스탄불을 터난 파니스는 아테네에서의 새로운 삶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튀르키예식 말투를 고치지 못해 학교에서 지적 받고, 부엌을 떠나지 못할 정도로 할아버지에게 배운 요리에 집착한다. 부모님은 그런 파니스를 억지로 고치려 하지만, 오히려 파니스는 가출을 감행한다.
향신료가 남긴 강렬한 기억들은 시간과 국경을 넘어 사람의 마음에 남는다. 영화가 말하는 ‘향신료’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평범한 음식에 풍미를 더하듯, 우리의 기억과 삶에도 저마다의 향을 남기는 것.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한 번 마음에 밴 그 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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