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장부터 주유소까지 휩쓴 호주 미트파이

정수연 기자

cnc02@hnf.or.kr | 2026-08-27 15:02:22

영국 정착민의 식탁에서 호주인의 소울푸드가 되기까지
출처 : istockphoto

[Cook&Chef = 정수연 기자] 호주의 미트파이를 이야기하려면, 우선 영국과 호주가 맺어온 역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오늘날 풋볼 경기장과 베이커리, 주유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미트파이의 뿌리는 영국의 오래된 육류 파이 문화에 닿아 있다. 영국에서 먹던 파이가 호주의 일상식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에 18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두 나라의 역사가 깊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호주 대륙에서는 영국인의 도착 이전부터 원주민 사회가 각 지역의 기후와 생태에 맞는 음식문화를 이어왔다. 이후 영국계 식문화가 이 대륙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된 배경은 1788년 영국의 식민지 건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해 1월 죄수와 군인, 관리 등을 태운 11척의 퍼스트 플리트가 시드니 코브에 도착했고, 영국은 뉴사우스웨일스에 식민지를 세웠다.

식민지 건설 이후에는 더 많은 죄수와 자유 정착민이 영국에서 호주로 건너왔다. 사람의 이동은 생활방식의 이동으로 이어졌다. 정착민들은 새로운 땅에서도 자신들이 먹어온 음식을 만들었고, 빵과 로스트, 푸딩과 파이를 중심으로 한 영국식 식생활 역시 호주에 뿌리를 내렸다. 19세기 말까지 호주가 여섯 개의 영국 식민지로 이루어져 있었고, 1901년 연방 출범 이후에도 두 나라의 문화적 연결이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점은 초기 호주 음식에서 영국의 흔적이 짙게 나타나는 배경이 됐다.

미트파이 역시 이러한 흐름을 따라 호주로 들어왔다. 이후 식민지가 성장하고 도시의 생활방식이 달라지면서 영국의 육류 파이는 점차 호주의 대중음식으로 새로운 성격을 갖게 된다.


영국식 파이가 호주의 식탁으로

이렇게 호주로 건너온 육류 파이는 이미 영국에서 수백 년 동안 먹어온 음식이었다. 그 계보는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두껍고 단단한 반죽에 고기와 육즙을 담아 함께 익혔고, 거리에서는 완성된 파이를 파는 상인들도 활동했다. 고기를 반죽 안에 넣어 굽는 방식은 오랜 세월 영국인의 식생활 속에서 이어져왔다.

영국계 정착민들이 호주에서도 파이를 만들어 먹은 데에는 익숙한 식습관과 당시의 식재료 조건이 함께 작용했다. 초기 식민지에서는 밀 재배가 시작됐고, 배급품으로 밀가루와 소금에 절인 고기, 지방과 버터가 공급됐다. 이 재료들은 영국에서 먹어온 육류 파이를 그대로 만들어내기 쉬운 조합이었기 때문에 파이는 새로운 정착지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실제로 파이는 식민지가 세워진 첫해부터 호주의 식탁에 등장했다. 1788년 조지 3세의 생일을 기념해 총독 아서 필립이 마련한 식사에도 파이가 포함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록은 영국계 정착민들이 호주에 도착한 초기부터 익숙한 식생활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파이를 만들어 먹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식민지가 자리를 잡고 시드니의 인구와 상업이 성장하면서 파이를 먹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집이나 식탁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이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 공간에서 돈을 내고 바로 사 먹을 수 있는 상품으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1840년대 시드니에서 등장한다. 당시 부두에서는 빠른 몸놀림으로 파이를 팔아 ‘플라잉 파이맨’이라 불린 행상이 사람들에게 파이를 판매했다. 영국에서 건너온 파이가 호주의 식탁에 자리한 뒤, 이제 도시의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의 대중음식이 된 미트파이

파이가 거리로 나오면서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먹느냐도 달라졌다. 19세기 후반 애들레이드에서는 이동식 파이 카트가 도시 곳곳을 돌며 늦은 시간까지 따뜻한 파이를 팔았다. 노동자와 여행객, 술집에서 나온 사람들은 이동 중에도 곧바로 파이를 사 먹을 수 있었다. 정해진 식사 자리에 앉지 않아도 따뜻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도시의 생활방식과 맞물리면서 미트파이의 대중성도 커졌다.

이런 소비 방식은 19세기 말 더욱 뚜렷해졌다. 시드니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조지와 샬럿 사전트 부부는 1890년 무렵 작은 미트파이를 하나에 1페니씩 판매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하나씩 사 먹기 좋은 크기와 저렴한 가격은 도시 소비자들의 생활에 잘 맞았다. 오늘날 호주에서 익숙한 손바닥 크기의 개별형 미트파이가 대중적인 한 끼로 자리하게 된 배경에도 이런 실용성이 있었다.

호주식 미트파이의 구조 역시 이러한 소비 방식과 잘 맞는다. 단단한 바닥의 페이스트리가 다진 쇠고기나 잘게 썬 고기와 걸쭉한 그레이비를 받치고, 윗면은 바삭한 반죽으로 덮는다. 고기와 탄수화물을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에 담을 수 있어 접시와 식기를 갖추기 어려운 거리에서도 먹기 편했다. 도시가 커지고 이동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런 특성은 미트파이가 생활 속으로 퍼지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기 시작하면서 생산 규모도 커졌다. 사전트는 1906년 회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09년 시드니 달링허스트에 4층 규모의 공장을 세웠다. 약 550명이 일한 이곳에서는 제과점에서 만들던 작은 파이가 대량생산 식품으로 바뀌어갔다. 도시의 거리에서 간편한 한 끼로 인기를 얻은 것이 생산의 산업화로 이어진 셈이다.


호주의 일상에 들어간 미트파이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미트파이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다양한 장소에서 팔릴 수 있었다. 철도역과 베이커리에서 손쉽게 살 수 있었고, 자동차 중심의 생활이 확산된 뒤에는 주유소의 보온 진열대에도 뜨거운 파이가 놓였다. 한 손에 들고 이동하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특성이 달라지는 생활환경과 맞물리면서 미트파이는 호주의 일상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이 자주 먹고 이야기하는 음식이 되면서 미트파이는 언어 속에도 자리를 만들었다. 호주 영어의 라임 슬랭에서는 미트파이를 ‘dog’s eye’, 함께 곁들이는 소스를 ‘dead horse’라고 부르는 표현이 생겼으며, ‘bachelor’s breakfast’ 역시 미트파이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기록돼 있다. 음식의 이름을 여러 방식으로 비틀어 부를 수 있을 만큼 미트파이는 호주인에게 익숙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이 친숙함은 일상의 식사를 넘어 여가문화로도 이어졌다. 그 대표적인 공간이 호주의 풋볼 경기장이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며 뜨거운 미트파이를 먹는 모습이 세대를 거쳐 반복되면서 파이는 경기 관람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음식으로 자리했다. 거리와 이동 중에 먹던 간편식이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함께 즐기는 음식으로까지 범위를 넓힌 것이다.


호주를 상징하는 음식이 되다

그렇게 호주의 일상에 자리 잡은 미트파이는 20세기에 이르러 호주를 상징하는 음식으로까지 의미가 커졌다. 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1976년 홀든 광고다. 광고 속 노래에는 풋볼과 미트파이, 캥거루와 홀든 자동차가 나란히 등장했다. 당시 호주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이미지 가운데 미트파이가 포함된 것이다.

이 광고의 의미는 원형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홀든은 미국 쉐보레의 ‘야구, 핫도그, 애플파이와 쉐보레’를 호주식으로 바꾸면서 야구 대신 풋볼을, 애플파이 대신 미트파이를 넣었다. 미국을 상징하는 애플파이의 자리를 호주에서는 미트파이가 차지한 셈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파이가 호주인의 일상을 거치며 어느새 호주를 설명하는 음식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 광고 한 편에 압축돼 있다.

그 변화의 바탕에는 오랜 시간 반복된 일상의 경험이 있었다. 식민지 초기부터 먹어온 파이는 도시의 거리와 철도, 주유소와 풋볼 경기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호주인의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여러 세대가 같은 음식을 먹고 경험하는 동안 영국에서 유래한 파이에는 점차 호주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쌓여갔다.


지금도 이어지는 미트파이 문화

미트파이는 지금도 호주인의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호주·뉴질랜드 식품기준청 자료에 따르면 호주인은 1년에 평균 약 12개의 미트파이를 먹으며, 전체 소비량은 연간 약 2억7000만 개에 이른다. 베이커리와 슈퍼마켓, 주유소와 풋볼 경기장에서 자연스럽게 파이를 찾는 모습만 보아도 이 음식이 현재의 생활 속에 얼마나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미트파이를 둘러싼 경쟁도 꾸준히 이어진다. 1989년 시작된 ‘Great Aussie Pie Competition’에서는 전국의 제빵사와 제과사, 요리사들이 파이를 출품해 완성도를 겨룬다. 페이스트리의 바삭함과 바닥의 상태, 속재료와 그레이비의 균형까지 세세하게 평가하며 해마다 최고의 파이를 가린다. 19세기 도시 거리에서 값싼 한 끼로 팔리던 음식이 오늘날에는 지역 베이커리의 기술과 자부심을 드러내는 대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 역사를 알고 나면 호주에서 마주치는 미트파이의 모습도 조금 다르게 읽힌다. 주유소의 보온 진열대에 놓인 파이에는 이동하면서 빠르게 한 끼를 해결해온 생활방식이 남아 있고, 풋볼 경기장에서 먹는 파이에는 수많은 사람이 같은 음식을 함께 즐겨온 시간이 겹쳐 있다. 지금 눈앞에서 이어지는 소비 방식 속에도 미트파이가 호주의 음식으로 자리 잡아온 역사가 남아 있다.

그 과정은 한 나라의 대표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호주의 미트파이는 영국에서 건너온 조리법에서 출발했지만, 그 뒤의 역사는 호주에서 만들어졌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거리의 한 끼가 되었고, 이동이 늘면서 철도와 주유소로 자리를 옮겼으며, 풋볼 경기장과 일상의 언어에 스며들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호주다운 음식’으로 자리했다. 어디에서 처음 만들어졌는가와 더불어 한 사회가 그 음식을 어떻게 먹어왔는지도 음식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호주에서 미트파이를 맛볼 때는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와 함께,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이 음식을 먹고 있는지도 살펴보면 더 흥미롭다. 거리와 베이커리, 주유소와 경기장은 서로 다른 장소지만 그 안에는 같은 음식이 시대에 따라 쓰임을 바꾸며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다. 미트파이 하나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음식이 사람들의 생활을 만나고, 습관이 되고, 끝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하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오늘날 작은 미트파이 한 개에는 고기와 그레이비, 그리고 영국에서 건너온 음식이 호주의 일상과 상징으로 변해온 200여 년의 시간이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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