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인문학] 1300년 전 바다 건넌 우리의 양조 기술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 2026-10-02 15:02:45

- 술 한 잔과 노래로 남은 1300년 전 양조 기술자의 기록
- 바다를 건넌 양조 기술, 일본 최고 역사서에 이름을 남기다
- 천황이 노래한 한 잔의 술, 그 뒤에 남은 수수보리의 이름

[Cook&Chef = 신현우 기자] 약 1300여 년 전, 한반도에서 건너간 양조 기술자가 빚은 술을 마시고 일본 천황이 취해 노래까지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술을 빚은 사람의 이름은 ‘수수코리(須須許理)’. 우리에게는 ‘수수보리’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인물이다.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 <고사기>의 진푸쿠지본. 14세기에 필사된 완질 사본으로 국보로 지정돼 있다. /사진=Wikimedia Commons

이 이야기가 등장하는 책은 712년에 편찬된 <고사기(古事記)>다.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신들의 이야기부터 역대 천황의 계보와 전승까지 담겨 있다. 그중 오진천황에 관한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오간 사람과 문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백제에서 말과 칼, 거울 등이 전해지고, 와니키시(和邇吉師)가  <논어>와 <천자문>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대장장이와 직물을 짜는 기술자도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술을 빚을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

<고사기>는 그를 ‘인번(仁番)’, 또 다른 이름을 ‘수수코리(須須許理)’라고 기록했다.

수수코리는 자신이 가진 기술로 술을 빚어 오진천황에게 바쳤다. 천황에게 올린 술이라는 뜻에서 기록에는 ‘대어주(大御酒)’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이 술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술을 마신 천황은 취기가 올라 직접 노래까지 남겼다.

<고사기>에는 그 노래의 소리가 한자를 빌려 그대로 기록돼 있다.

일본 오진천황과 다케노우치노 스쿠네를 그린 스미요시 구케이의 작품. 17세기 후반~18세기 초 제작된 후대 회화다. <고사기>에는 수수코리가 빚은 술을 마신 오진천황이 취해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사진=Wikimedia Commons

“須須許理賀 迦美斯美岐迩
和礼恵比迩祁理 許登那具志
恵具志爾 和礼恵比迩祁理”

“수수코리가 빚은 술에 내가 취했구나. 근심을 잊게 하고 웃게 하는 술에 내가 취했구나”라는 내용이다.

술에 취한 천황을 둘러싼 재미있는 이야기도 뒤따른다. 천황이 길을 가다 지팡이로 큰 돌을 치자 돌이 달아났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단단한 돌도 술 취한 사람을 피한다’는 의미의 ‘견석피취인(堅石避酔人)’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고사기>에 작성되어 있다.

물론 돌이 달아났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신화와 설화가 함께 담긴 <고사기> 특유의 이야기로 봐야 한다. 하지만 수수코리가 술을 빚었고 이를 천황에게 바쳤으며, 천황이 그 술을 마시는 장면과 노래까지 기록됐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렇다면 수수코리는 어디에서 술 빚는 기술을 가지고 왔을까.

<고사기>는 수수코리의 출신지를 직접 밝히지는 않는다. 대신 그가 등장하는 대목을 살펴보면 하타씨(秦造)의 조상과 아야씨(漢直)의 조상 등 여러 도래인이 함께 바다를 건너왔다고 기록돼 있다. 수수코리 역시 이들과 함께 ‘술을 빚을 줄 아는 사람’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아 바다를 건너온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기록을 함께 보면 한반도와의 연결은 더욱 선명해진다.

<일본서기>에는 하타씨의 조상으로 전해지는 궁월군(弓月君)이 ‘백제로부터 왔다(自百濟來歸)’고 기록돼 있다. 백제에서 옷을 만드는 기술자가 건너왔다는 기록도 있으며, 아지키(阿直岐)와 왕인(王仁)에 관한 이야기도 같은 오진천황 대에 등장한다.

당시 바다를 건넌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글을 아는 사람과 쇠를 다루는 사람, 옷감을 짜는 사람처럼 저마다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이동했고 그 흐름 속에 술을 빚는 사람도 있었다.

술의 역사에서 이 대목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아시아의 곡물 양조문화는 오랜 시간 중국과 한반도, 일본 열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다. 특히 고대 일본에 새로운 기술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사기>에 등장하는 수수코리 역시 이러한 인적·기술적 교류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수수코리가 어떤 방식으로 술을 빚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수수코리와 연결되는 양조 전승은 오늘날 일본에도 남아 있다.

교토부 교타나베시에 있는 사가신사(佐牙神社)는 오래전부터 술과 관련된 신을 모셔온 곳이다. 현재는 사가미즈오노카미(佐牙弥豆男神)와 사가미즈메노카미(佐牙弥豆女神)를 주조의 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 지역에는 대륙에서 건너와 술을 빚었다는 사람들에 대한 전승이 전해지며, 그 가운데 ‘소소호리(曽々保利)’를 <고사기>의 수수코리와 연결하기도 한다.

13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수수코리가 빚었던 술은 사라졌다. 술의 이름도, 제조법도, 정확한 맛도 알 수 없다.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수수코리가 술을 빚어 천황에게 올렸고, 천황은 그 술에 취해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뿐이다.

짧은 기록이지만 그 안에는 당시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오갔던 사람과 기술, 그리고 술 문화의 교류가 함께 담겨 있다. 어떤 술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다를 건너간 양조 기술자가 빚은 한 잔의 술이 천황을 취하게 하고 노래까지 남기게 했다는 이야기는 13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Cook&Chef /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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