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전 종교화에도 등장한 빵, 독일 프레첼

정수연 기자

cnc02@hnf.or.kr | 2026-10-06 15:02:30

기도와 축일의 빵에서 바이에른식 라우겐브레첼, 오늘의 일상 간식까지
출처 : vecteezy.com

[Cook&Chef = 정수연 기자] 빵집 진열대에서 특유의 꼬인 모양만 보고도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빵이 있다. 윤기 도는 브라운빛 표면에 굵은 소금이 박힌 프레첼이다. 독일에서는 아침 식사나 간식으로 먹고, 소시지와 맥주를 곁들이는 자리에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 익숙한 모양을 약 천 년 전의 그림에서도 만날 수 있다. 1050년 무렵 잘츠부르크에서 제작된 복음서의 ‘최후의 만찬’ 장면을 자세히 보면 식탁 위에 두 개의 꼬인 빵이 놓여 있다. 미국 모건도서관도 이를 프레첼과 닮은 빵으로 설명한다. 지금은 빵집이나 마트에서도 쉽게 구하는 빵의 형태가 중세 종교화 속 식탁에도 등장하는 셈이다.

잘츠부르크는 오늘날 오스트리아에 속한다. 프레첼의 오래된 흔적은 현재의 독일 국경보다 넓은 중부 유럽의 역사와 연결된다. 지금의 국경선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아우르는 지역에서 프레첼 문화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랜 세월 사람들의 식탁에 놓였던 이 독특한 빵은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의 모습이 됐을까.


기도하는 두 팔을 닮은 모양

그 이야기를 따라가려면 먼저 유난히 눈에 띄는 꼬인 모양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일어 표준명은 ‘브레첼(Brezel)’이다.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에서는 ‘브레체(Breze)’나 ‘브레첸(Brezn)’ 같은 이름도 사용한다. 독일어 사전 두덴(Duden)은 중세고지독일어 ‘brēzel’과 고대고지독일어 ‘brezitella’의 어원을 라틴어 ‘brachium’, 즉 팔과 연결한다. 서로 포개진 두 팔을 닮은 모습에서 이름이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유럽연합의 바이에른 브레첼 지리적 표시 자료에서도 이 형태를 기도할 때 포갠 팔의 모습과 연결한다.

종교적인 이미지와 프레첼의 인연은 중세 자료에서도 이어진다. 12세기 알자스의 호엔부르크 수도원에서 제작된 『호르투스 델리키아룸(Hortus Deliciarum)』의 연회 장면에도 프레첼 형태의 빵이 등장한다. 남부 독일에 수도원이 많았던 점과 함께, 프레첼은 새해와 종려주일, 수확감사절에 굽는 특별한 빵으로 전해졌다.


기도와 축일, 행운을 함께한 빵

그 흔적은 지금도 몇몇 지역의 종려주일 풍습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슈바벤의 가톨릭 지역에서는 소금과 라우겐을 사용하지 않은 커다란 ‘팔름브레첼(Palmbrezel)’을 굽고, 지역에 따라 장식한 종려나무 가지에 프레첼을 달아 교회로 가져가 축복을 받는다. 현재도 종려주일 미사가 끝난 뒤 아이들에게 팔름브레첼을 나누는 성당들이 남아 있다. 오래전 종교적 이미지와 연결됐던 꼬인 빵이 절기와 지역 공동체 속에서도 계속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새해에는 또 다른 의미가 더해졌다. 독일 일부 지역에서는 커다란 새해 프레첼을 주고받으며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빌었다. 같은 꼬인 형태의 빵이 어느 날에는 교회의 절기 음식이 되고, 또 다른 날에는 좋은 한 해를 바라는 선물이 된 것이다. 프레첼은 여러 지역의 의례와 축일 속에서 사람들의 바람과 관계를 담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중세 도시에서도 이어진 프레첼의 자리

종교와 절기에서 반복해서 모습을 보이던 프레첼은 중세 도시의 일상에서도 사람들을 이어주는 음식이었다. 1318년 뮌헨의 상인 부르카르트 바들러와 아내 하일비히는 하일리히가이스트 병원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재산을 기부했다. 이 기부에서 시작된 풍습 가운데 하나가 ‘브레첸라이터(Brezenreiter)’였다. 말을 탄 사람이 도시를 돌며 프레첼 배급을 알렸고, 해마다 약 3,000개의 프레첼이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당시 뮌헨 인구가 약 8,000명이었다는 기록을 생각하면 도시 전체가 함께 기억할 만한 행사였다.

프레첼은 제빵업의 상징으로도 자리 잡았다. 바이에른의 전통식품 기록에는 밤베르크의 제빵사 문장 속 프레첼이 남아 있고, 1494년 성목요일에는 밤베르크를 방문한 기사들에게 달걀을 넣어 만든 ‘아이아브레첼(Eierbrezel)’과 와인을 내놓았다는 기록도 전한다. 교회와 축일에서 만났던 빵이 어느새 제빵사의 표지가 되고, 도시가 손님을 맞이하는 자리에도 올라온 것이다.


지금 익숙한 브라운빛 프레첼은 언제 등장했을까

프레첼의 꼬인 형태는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윤기 있는 브라운빛과 특유의 구운 향에는 또 하나의 역사가 겹쳐 있다. 라우겐(Lauge), 즉 알칼리 용액을 사용하는 제빵법이다.

바이에른에는 라우겐브레첼의 시작을 1839년 뮌헨의 제빵사 안톤 네포무크 파넨브레너(Anton Nepomuk Pfannenbrenner)와 연결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평소 프레첼에 바르던 설탕물 대신 제빵판을 세척하는 데 쓰던 알칼리 용액을 사용했고, 그렇게 구운 빵에서 진한 색과 새로운 풍미가 나타났다. 2월 11일 아침 왕실 관계자가 이 빵을 맛봤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바이에른주 전통식품 자료와 유럽 지리적 표시 자료에도 소개될 만큼 널리 알려진 탄생담이다.

알칼리 처리가 반죽에 만드는 변화 자체는 식품과학으로도 확인된다. 수산화나트륨 용액에 닿은 반죽 표면에서는 전분과 단백질에 변화가 일어나고, 높은 온도에서 굽는 동안 특유의 색과 질감이 만들어진다. 2019년 뮌헨공과대학교 연구진이 소프트 프레첼의 향을 분석했을 때는 28개의 향 활성 성분이 확인됐다. 그중에는 팝콘처럼 고소하게 구운 향을 내는 성분과 캐러멜을 떠올리게 하는 성분도 포함됐다. 지금 프레첼에서 느끼는 색과 향에는 이런 조리과학이 함께 들어 있다.


지역마다 달라진 프레첼의 모습

라우겐브레첼이 자리 잡은 뒤에도 독일 각 지역은 저마다 다른 형태와 식감을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바이에른과 슈바벤이다.

바이에른식은 양쪽 팔이 도톰하고 가운데에 별도의 칼집을 넣지 않아 굽는 동안 표면이 자연스럽게 갈라진다. 슈바벤식은 중앙의 둥근 부분이 도톰하고 팔은 훨씬 가늘며, 가운데에는 길게 칼집을 낸다. 지방 함량 역시 바이에른식은 밀가루 대비 1.54%, 슈바벤식은 48%로 차이가 난다. 같은 라우겐브레첼 안에서도 지역마다 눈에 띄는 개성이 생긴 것이다.

독일 안에는 이보다 더 다양한 프레첼도 존재한다. 프랑켄에서는 아니스 향을 넣은 밝고 부드러운 프레첼을 사순절에 먹는 전통이 이어졌고, 다른 지역에서는 새해나 종려주일처럼 특정한 절기를 위한 형태가 따로 발전했다. 프레첼이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 지역별 식문화가 겹겹이 들어 있는 셈이다.


왜 바이에른식 프레첼이 세계에 알려졌을까

독일 안에서 여러 모습으로 발전한 프레첼 가운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형태는 바이에른식에 해당한다. 그 배경에는 바이에른 사람들이 프레첼을 먹어온 일상의 풍경이 있다.

바이에른에서는 가벼운 식사를 뜻하는 ‘브로트차이트(Brotzeit)’에 프레첼이 자연스럽게 오른다. 뮌헨식 흰 소시지 바이스부르스트(Weißwurst)와 달콤한 머스터드, 프레첼을 한데 놓기도 하고, 레버케제(Leberkäse)나 치즈를 곁들이기도 한다. 비어가든에서도 프레첼은 맥주와 함께 가장 익숙하게 만나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바이에른주 전통식품 자료에서도 프레첼을 브로트차이트 문화의 중요한 음식이자 바이스부르스트와 레버케제에 빠질 수 없는 곁들임으로 소개한다.

이런 지역의 식사 풍경은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를 만나 더 넓은 세계로 퍼졌다. 축제의 대형 천막과 맥주잔 사이에는 커다란 ‘비즌브레첸(Wiesnbrezn)’이 등장하고, 수많은 방문객이 바이에른 맥주와 함께 프레첼을 경험한다. 바이에른 브레첼의 지리적 표시 자료 역시 옥토버페스트가 이 지역 프레첼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두꺼운 팔과 윤기 나는 브라운빛, 굵은 소금에 맥주잔이 함께 놓인 모습은 그렇게 바이에른의 지역적인 식문화에서 출발해 세계인이 떠올리는 ‘독일 프레첼’의 이미지로 넓어졌다. 여러 지역에 서로 다른 프레첼이 존재하는 가운데 특정한 한 모습이 독일을 대표하는 음식 이미지로 자리 잡은 과정에는 지역의 일상과 거대한 축제가 함께 있었다.


특별한 날의 빵에서 매일 만나는 간식으로

20세기에 들어서는 프레첼을 만나는 장소도 달라졌다. 1919년 마인츠에서 프레첼과 라우겐 제과 전문 제빵소를 시작한 디치(Ditsch)는 1950년대 ‘브레첼멘너(Brezelmänner)’라 불린 판매원들을 술집과 지역 축제로 보냈다. 판매원들은 바구니에 갓 구운 프레첼을 담고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1972년에는 마인츠 중앙역에 프레첼 판매대가 들어섰다. 열차를 타기 전 간단히 하나를 사 들고 갈 수 있는 음식이 된 것이다. 1980년에는 냉동 상태로 운반한 프레첼을 판매 현장의 오븐에서 직접 구워내는 방식도 도입됐다. 특정한 절기와 축제에서 만났던 빵은 술집과 역, 쇼핑가를 거치며 하루 중 언제든 따뜻하게 사 먹을 수 있는 일상적인 간식으로 영역을 넓혔다.

오늘날에는 빵집이나 마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프레첼 하나를 집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익숙한 꼬임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천 년 전 종교화와 기도하는 두 팔, 종려주일과 새해의 풍습, 중세 도시의 나눔, 제빵사의 기술, 바이에른의 식탁과 옥토버페스트까지 이어진다.

매일 쉽게 만나는 빵 하나에 이만큼 긴 시간이 겹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프레첼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다음번 하나를 집어 들게 된다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 익숙한 모양부터 한번 살펴봐도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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