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손질의 기술이 사라질 때, 한식의 식감이 바뀐다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2-12 23:52:44

포 뜨기와 칼다짐이 사라진 자리에서 달라지는 맛의 구조 [사진=식재료 썰기 종류와 방법 조리 준비 - 램프쿡]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한식 조리에서 손질은 단순한 준비 과정이 아니라 조리의 시작에 해당하는 단계였다. 생선의 결을 따라 포를 뜨고, 고기를 칼로 다지고, 채소의 섬유 방향을 고려해 썰어내는 일은 이미 맛을 설계하는 첫 번째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재료의 조직과 수분, 식감의 방향이 정해지고 이후의 가열은 그 구조를 완성하는 단계로 이어졌다. 한식의 맛이 단지 양념과 불 조절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손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조리 현장에서는 손질의 많은 부분이 주방 밖에서 이루어진다. 포 떠진 생선, 기계로 다진 고기, 일정한 규격으로 절단된 채소가 기본 재료로 들어오면서 조리자는 점점 재료를 다듬는 사람에서 준비된 재료를 조합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작업 효율과 편의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음식의 식감과 풍미의 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생선전은 손질의 차이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음식 중 하나다. 직접 포를 뜬 생선은 근섬유의 방향이 살아 있다. 칼의 각도와 압력에 따라 살점이 정리되면서 조직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불필요한 수분이 빠지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 전을 부치면 표면은 얇게 단단해지고 내부는 부드럽게 풀리며, 입안에서 결의 흐름이 느껴지는 식감이 만들어진다.

[사진=백미양식 / 민어포]

반면 이미 포 떠진 생선은 유통 과정에서 압력을 받거나 냉동과 해동을 거치며 조직이 느슨해지는 경우가 많다. 근섬유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을 부치면 전체적인 질감이 균일해지고, 씹을 때 느껴지는 결의 방향성이 줄어든다.

같은 생선, 같은 조리법을 사용하더라도 손질 단계에서 식감의 뼈대가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고기를 다지는 방식에서도 비슷한 차이가 나타난다. 칼로 직접 다진 고기는 입자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 어떤 부분은 곱고, 어떤 부분은 굵다. 이 불균일한 조직은 가열 과정에서 육즙이 빠져나오는 속도를 다르게 만들고, 씹을 때마다 식감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입안에서 터지는 지점이 생기며, 단순히 부드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질감을 형성한다.

기계로 다진 고기는 입자가 균일하다. 조직이 일정하고 표면적이 넓어지면서 수분이 빠르게 빠져나가기 쉽고, 결과적으로 식감이 평면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대신 조리의 안정성과 작업 속도는 높아진다.

이 변화는 단순히 방식의 차이를 넘어 음식의 성격을 바꾸는 요소로 작용한다. 전통적으로 칼다짐이 중심이었던 요리에서 느껴지던 입체적인 식감이 점차 단순해지는 이유도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채소 손질 역시 마찬가지다. 칼로 썰어낸 단면과 기계로 절단된 단면은 미세하게 다른 조직을 남긴다. 칼날이 섬유를 정리하며 지나갈 때와 압력으로 절단될 때의 손상 정도는 다르며, 이는 양념이 스며드는 속도와 수분이 빠지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나물이나 전, 볶음처럼 채소의 식감이 중요한 음식일수록 이러한 차이는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전 한식 조리에서 손질은 주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핵심 기술이었다. 포 뜨기, 다지기, 채 썰기, 껍질 벗기기 같은 과정은 숙련도의 기준이자 맛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손질을 통해 재료의 상태를 파악하고, 요리에 맞는 조직으로 바꾸는 과정 자체가 조리의 일부였다.

지금은 그 과정의 상당 부분이 유통 단계에서 완료된 상태로 주방에 들어온다. 조리 시간은 줄어들고 작업 효율은 높아졌지만, 재료를 다루며 생기는 미세한 조정의 여지는 줄어들었다. 손질의 외주화는 시대의 흐름이자 산업 구조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음식의 질감과 풍미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손질을 직접 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성을 더 들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재료의 조직을 이해하고, 식감의 방향을 설계하는 기술에 가깝다. 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수분의 흐름이 달라지고, 조직의 밀도가 달라지며, 결과적으로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의 깊이까지 달라진다.

한식은 오래전부터 재료를 섬세하게 다루는 과정 속에서 맛을 만들어온 음식이다. 손질은 그 시작점이었고, 동시에 조리의 일부였다. 그 손질의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지금, 우리는 편의와 효율을 얻는 대신 어떤 식감의 층을 놓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손질이 사라진 자리에서 달라지는 것은 단지 과정의 변화가 아니라, 한식이 지녀온 질감의 결일지도 모른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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