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열의 '음식 잡설(雜說)'] 복날 대하는 삼계탕 한 그릇의 마음
신상열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07-27 16:05:06
더위를 식히는 브레이크타임의 감사함
[Cook&Chef = 신상열 칼럼니스트] 복날은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온다. 달력은 같은 날을 가리키지만, 더위는 조금씩 다르고, 나의 삶도 조금씩 달라져 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복날인데 보양식 한 그릇은 먹어야지.' 하는 마음이다.
삼계탕의 종류는 다양하다. 들깨를 넣어 고소함을 더하기도 하고, 전복을 넣어 바다의 기운을 담기도 한다. 귀한 약재를 넣어 보양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가장 맛있는 삼계탕은 화려한 재료보다 닭 한 마리와 맑은 국물로 끓여낸, 기본에 충실한 한 그릇이다.
삼계탕을 끓이기 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닭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다. 영계를 고른다. 너무 큰 닭, 특히 9호 이상의 닭은 살이 단단해 오래 끓여도 부드러운 맛이 덜하다. 가슴살과 등살, 양다리에 조심스레 칼집을 넣고 껍질을 한 번에 벗겨낸다. 중간에 찢어지지 않고 온전히 손에 남았을 때면, 마치 작은 작품 하나를 완성한 듯한 기분이 든다.
목과 엉덩이 주변의 기름을 말끔히 손질한 뒤, 닭을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 번 삶아 첫 국물을 버리면 숨어 있던 기름까지 빠져나간다. 그제야 비로소 맑은 국물을 낼 준비가 끝난다.
요리는 비법보다 정성이다. 삼계탕을 먹는 시간은 길어야 한 시간 남짓이지만, 준비하는 시간만큼은 음식을 함께 먹을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닭을 손질하고, 냄비를 지키며 국물이 천천히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마주 앉아 한 그릇을 비우는 시간. 그 시간을 모두 합하면, 그것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다.
마늘 몇 알, 대추 몇 개, 인삼 한 뿌리, 그리고 찹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재료들이 오랜 시간 서로의 맛을 내어주며 국물 속에서 하나가 된다. 그렇게 천천히 끓여낸 국물은 깊다고 말하기보다 맑고 담백하다. 첫 숟갈을 떠 입에 머금으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따뜻해진다.
정성은 시간과 비례한다. 예전에는 명절에 사골이나 소꼬리가 큰 선물이었지만, 지금은 오래 끓일 시간을 아까워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사골이나 소꼬리를 선물했다가는 되돌려받을지도 모른다. 끓여서 가져오려고. 정성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정성을 담은 음식은 귀해지고,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는 일도 함께 귀해졌다.
음식의 기본은 정성이다. 정성은 마음이고, 시간이다. 시간을 들여야 정성이 생기고, 정성이 쌓여야 마음이 전해진다. 그래서 좋은 음식은 맛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누가, 얼마나 오래,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가 함께 기억된다. 좋은 음식도, 좋은 사람도, 좋은 삶도 결국은 그렇게 시간을 견딘 마음에서 오래도록 빛을 낸다.
복날의 삼계탕은 단순히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보양식이 아니다. 무더운 계절 한가운데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스스로를 돌보라는 계절의 인사다. 해마다 찾아오는 그 인사를 따뜻한 한 그릇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한 숟갈씩 천천히 비우다 보면 몸의 열기는 식고, 마음에는 작은 여백 하나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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