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넘어, 위기의 시대를 사는 지혜: 사찰음식이 던지는 화두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09-26 15:24:57

한국불교문화사업단 김유신 수석전문위원 강연으로 본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 김유신 수석전문위원   사진 = 이경엽 기자

[Cook&Chef = 이경엽 기자]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식량은 인류가 먹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지만, 생산된 음식의 30%는 버려지고 있다. 이 순간에도 세계 인구의 약 10%는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나머지 한편에서는 과식과 폭식으로 인한 비만과 각종 질병이 인류를 위협한다.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는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기후 위기를 가속화한다. 이처럼 풍요와 결핍, 소비와 파괴의 역설이 공존하는 시대. 우리는 매일 마주하는 밥상 앞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왔다.

최근 지속 가능성과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사찰음식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초에는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그 가치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이를 기념하여 지난 9월 24일 열린 한식콘서트에서 한국불교문화사업단 김유신 수석전문위원은 '한국 사찰음식의 이해'라는 주제로 특별한 강연을 펼쳤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사찰음식의 종류나 조리법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음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며,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기존의 질문을 넘어 ‘어떻게 먹을 것인가’라는 시대적 화두를 던졌다. 이 기사는 그의 강연을 바탕으로, 사찰음식이 현대 사회의 위기를 헤쳐나갈 삶의 지혜와 철학적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심도 있게 고찰하고자 한다.

관점의 전환: 음식은 정체성이자 자연이며, 곧 ‘나’ 자신이다

우리는 음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김유신 위원은 본격적인 사찰음식 이야기에 앞서, 음식을 대하는 우리의 관점 자체를 뒤흔드는 세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식재료로 각 나라를 표현한 푸드 아티스트의 작품이다. 중국은 무수히 다양한 면으로, 미국은 옥수수로, 이탈리아는 토마토로, 인도는 각종 향신료로 표현된다. 이는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물질을 넘어 한 나라와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강력한 문화적 기호임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르네상스 후기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그림이다. 그는 사람의 초상화를 꽃, 과일, 채소, 심지어 물고기나 동물들로 그려냈다. 봄은 형형색색의 꽃으로 , 가을은 풍성한 과일과 호박 같은 열매로 표현했다. 더 나아가 물(水), 불(火), 공기(空氣), 땅(地)이라는 4원소를 각각 수중 생물, 타오르는 장작과 대포, 온갖 종류의 새, 땅 위의 코끼리와 소 같은 동물들로 형상화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이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계절의 순환과 세상의 모든 생명체와 연결된 유기적인 존재임을 강렬하게 일깨운다.

이는 마치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무파사가 아들 심바에게 설명하던 "생명의 위대한 순환(The Great Circle of Life)"과 그 속의 "미묘한 균형(delicate balance)"을 떠올리게 한다. 김 위원은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이 균형을 거스르지 않지만, 유독 인간만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잊고 살아간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의 시선을 자기 자신, 즉 '나'라는 존재의 근원으로 돌렸다. 인간은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가 만나 형성된, 크기 0.2mm, 무게 100만 분의 1그램에 불과한 수정란에서 시작된다. 이 작은 생명이 평균 수명 약 88년(남자 86.3세, 여자 90.7세 기준) 동안 35조에서 60조 개에 이르는 세포를 가진 존재로 성장하고 생명을 유지한다. 하루에도 3,300억 개의 세포가 새로 생성되고 소멸하는 이 경이로운 과정의 에너지원과 물질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 태중에 있을 때는 어머니가 섭취한 영양분이며, 태어난 후에는 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물이다. 결국,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말처럼 , 음식은 곧 나 자신을 구성하는 물질적 토대이자 나의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사진 = 한식진흥원

풍요 속의 비극, 위기에 처한 현대인의 밥상

이처럼 음식이 곧 나이며 세상과의 관계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밥상은 깊은 병을 앓고 있다. 김 위원은 강연에서 충격적인 통계를 제시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류가 소비하는 양보다 1.3배나 많은 식량이 생산되고 있지만 , 그중 30%는 유통 및 소비 과정에서 버려진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인구 10~11명 중 1명은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고 있으며, 특히 아프리카는 5명 중 1명이, 아시아에는 전 세계 기아 인구의 절반이 거주한다.

반면, 선진국을 포함한 고소득 국가는 정반대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성인 비만 인구는 10년 만에 12.1%에서 15.8%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과식, 폭식, 편식, 그리고 극단적 다이어트로 인한 거식 등은 이제 단순한 식습관 문제가 아닌 정신 질환과 깊게 연관된 사회적 병리 현상이 되었다. 우리가 무심코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는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기후 위기를 심화시킨다. 북미와 오세아니아 같은 선진국의 1인당 음식물 쓰레기 탄소 배출량은 기아에 허덕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보다 4배나 많다. 이는 식량의 불평등이 곧 환경 파괴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총체적 위기 앞에서 인류는 다양한 대안을 모색해왔다. 채식을 기반으로 하되 때때로 육식을 허용하는 플렉시테리언, 패스트푸드에 맞서 전통과 지역의 음식을 지키려는 슬로푸드 운동,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하는 한살림 운동,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려는 빈그릇 운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의 강연은 이러한 실천적 운동을 넘어, 더 근본적인 차원의 해답을 사찰음식의 철학에서 찾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사찰음식, ‘비움’과 ‘관계’의 철학을 담다

 ‘사찰음식’하면 사람들은 흔히 ‘고기와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먹지 않는 채식’을 떠올린다. 하지만 김 위원은 이러한 이해가 사찰음식의 본질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부처님조차 육식을 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2,500년 전 인도에서는 출가 수행자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지 않고, 마을을 돌며 공양물을 얻는 탁발(托鉢)을 했다. 이때 수행자는 음식을 주는 이에게 복을 짓는 기회를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에, 음식을 가리거나 거부할 수 없었다. 주는 대로 먹어야 했기에 채식과 육식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했다.

그렇다면 사찰음식의 진짜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탐욕을 버리는 것'에 있다. 아무리 좋은 채소라도 배가 터지게 먹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찰음식이 아니다. 특정 음식에 대한 집착, 예를 들어 '봄에는 도다리, 가을에는 전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사찰음식의 정신에서 벗어난 것이다. 즉, 사찰음식의 핵심은 식재료의 종류에 대한 금지 조항이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세상을 바라보는 불교의 핵심 철학인 '연기(緣起)', 즉 모든 존재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는 세계관에 뿌리를 둔다. 김 위원은 밥 한 그릇이 우리 앞에 놓이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쌀 한 톨에는 햇빛과 땅의 기운, 비와 바람, 수많은 미생물의 작용과 농부의 땀방울까지 온 우주의 노력이 담겨있다. 음식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건이 아니라, 온 세상이 참여한 관계성의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음식을 대하면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오며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더 나아가 사찰에서는 음식을 즐거움의 대상이 아닌 '약(藥)'으로 여긴다. 이는 앞서 살펴본 '나'라는 생명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영양 공급이라는 의미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이라도 과용하지 않듯이, 음식 또한 생명을 지탱할 만큼만 섭취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처럼 사찰음식은 '탐하지 않음'이라는 절제의 미덕,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관계의 철학, 그리고 '음식은 약'이라는 실용적 지혜가 어우러진 종합적인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오관게  사진 = 이경엽 기자

한 끼의 식사, 우주를 품는 수행: 발우공양과 오관게

사찰음식의 철학이 가장 집약적으로 구현된 의식이 바로 '발우공양(鉢盂供養)'이다. 이는 단순히 식사를 하는 행위를 넘어, 음식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엄숙한 수행 과정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똑같은 음식을 똑같이 나누어 먹는 발우공양에는 평등, 청결, 절약, 그리고 공동체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발우공양의 핵심은 식사 직전에 읊는 '오관게(五觀偈)'에 있다. 이는 음식을 앞에 두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다섯 가지 게송으로, 사찰음식 정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첫째, 계공다소 양피래처(計功多少 量彼來處) :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이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깃든 수많은 사람의 수고와 자연의 공덕을 헤아린다. 이는 음식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일깨운다.

둘째, 촌기덕행 전응공양(忖己德行 全應供養) : 내 자신의 덕행을 돌아보아 이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한다. 이는 겸손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자세를 갖게 한다.

셋째, 방심이과 탐등위종(防心離過 貪等爲宗) : 음식을 보고 일어나는 탐욕을 비롯한 온갖 나쁜 마음을 버리고, 오직 마음을 지키고 허물을 벗어나는 데 근본을 둔다.

넷째, 정사양약 위료형고(正思良藥 爲療形枯) : 이 음식을 단지 좋은 약으로 여길 뿐, 쇠약해진 육신을 치유하기 위해 먹는다. 음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건강한 생명 유지를 목적으로 삼는다.

다섯째째, 위성도업 응수차식(爲成道業 應受此食) : 궁극적으로 깨달음의 길, 즉 도업(道業)을 이루기 위해 이 음식을 받는다. 식사가 단순한 생명 유지를 넘어 더 높은 차원의 목표를 위한 수단임을 명확히 한다.

오관게가 끝난 후에는 밥알 서너 개에서 일곱 알 정도를 떼어내 모든 보이지 않는 생명들과 나누겠다는 서원을 담아 따로 두는 '생반게(生飯偈)' 의식을 행한다. 이는 나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와 함께한다는 자비와 나눔의 정신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실천이다. 이처럼 발우공양은 한 끼의 식사를 통해 감사와 성찰, 절제와 나눔의 가치를 온몸으로 체득하는 살아있는 교육이자 명상이다.

당신의 밥상을 바꾸는 사찰음식의 지혜

김 위원은 강연을 마치며 끝없는 허기에 시달리다 결국 자기 자신마저 먹어치운 그리스 신화 속 '에리시크톤' 왕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고 자연의 신성한 숲을 파괴한 대가로 영원한 기아의 저주를 받은 그의 모습은, 무한한 성장과 소비를 추구하다 파국으로 치닫는 현대 문명에 대한 강력한 경고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찰음식은 그 해답이 거창한 구호가 아닌, 우리 각자의 밥상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 위원이 제안하는 '삼소식(三笑食)'은 그 구체적인 실천법이다. 첫째, 웃으며 즐겁고 감사하게 먹는 '소식(笑食)'. 둘째, 내 건강을 유지할 최소한의 양만 먹는 '소식(少食)'. 셋째, 되도록 육식을 삼가고 채소 위주로 먹는 '소식(蔬食)'.

모두가 승려처럼 발우공양을 하며 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정신, 즉 음식에 감사하고(感謝), 먹을 만큼만 덜어 남기지 않으며(節制),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려는(共生) 마음가짐은 누구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다. 사찰음식은 특정 종교의 음식을 넘어,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이자 철학이다. 오늘 저녁, 당신의 밥상에 올릴 것은 단순히 허기를 채울 음식이 아니라, 세상과 나를 대하는 당신의 철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21세기, '어떻게 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대답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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