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 시간을 끓여낸 한국의 가장 오래된 위로

이지헌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5-12-03 23:42:19

사진 = 한식진흥원

곰탕의 ‘곰’은 곰(熊)이 아니다

[Cook&Chef = 이지헌 전문기자] 곰탕이라는 이름은 자주 오해를 받는다. 동물 곰이 들어간 탕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곰탕의 ‘곰’은 ‘곰다’, 즉 오래 삶고 고아낸다는 중세국어 동사에서 비롯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도 “곰다(久烹)”, 즉 오래 끓이는 조리 행위가 기록되어 있다. 

『능소주다식 조석상식발기(陵所晝茶食朝夕上食撥記)』에는 ‘고음탕’,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고음국’, 『조선요리법(朝鮮料理法)』 이후의 조리서에는 ‘곰국’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시의전서』에서는 다리뼈·사태·도가니·홀때기·꼬리·양·곤자소니·전복·해삼을 넣고 끓인다고 하여 지금의 설렁탕과도 흡사한 조리법을 보여준다.

드물게 곰탕을 육탕, 잡탕으로 부른 경우도 있는데, 이는 소의 여러 부위를 사용하는 음식임을 보여준다. 사태·양지머리와 같은 살코기부터, 양·곱창·부아·곤자소니 같은 내장류까지 고르게 사용해 국물의 깊이를 만든다. 

궁중 국방(國房)의 곰탕

조선시대 궁중에서 음식을 담당하는 부서는 여러 갈래로 나뉘었는데, 그중 ‘국방(國房)’은 탕·국·국물 요리를 담당한 부서였다. 『규합총서(1809)』에는 “사골을 하루 종일 곰아 국물을 얻는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곰아’는 곰탕의 원형을 암시한다. 기름기를 걷어내고 국물을 맑게 유지하는 궁중 조리의 기본 원칙 아래에서도 뼈와 살에서 맛을 천천히 우려내는 방식은 지금의 곰탕과 매우 닮아 있다. 

궁중에서 정교하게 다려진 조리 기술은 궁녀와 상궁, 혹은 관청의 여종을 통해 민간으로 확산되었으며, 이후 곰탕은 왕실의 기술을 품은 채 서민의 일상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제사 음식이자 장터 음식

한국의 음식 중 제례, 궁중, 장터를 모두 아우르는 사례는 많지 않은데, 곰탕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제사 음식으로서 곰탕은 ‘정성’의 상징이었다. 밤새 불을 끄지 않고 국물을 지키는 과정 자체가 조상에 대한 공경으로 이해되었다. 

반면 장터에서는 곰탕이 서민의 에너지 음식이었다. 큰 가마솥 하나에 사골, 잡뼈, 양지를 넣고 오래 끓이면 적은 재료로도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었다. 장꾼과 노동자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찾는 든든한 한 끼, 그것이 곰탕이었다. 

이처럼, 곰탕은 신분의 벽을 넘어 왕실과 제사의 상징성을 유지하면서도, 장터의 실용성과 효율성을 충족한 음식이었다. 한 음식이 권력의 상징과 서민의 일상을 동시에 품은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곰탕은 한국 사회의 계층과 삶을 가로지르는 독특한 문화적 지점을 보여준다. 

곰탕 만드는 방법

사골은 찬물에 2시간 동안 담가서 핏물을 뺀다. 

양지머리는 20분 정도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냄비에 사골과 고기를 넣고 뼈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부은 후 센불로 끓인다. 

물이 끓어오르면 물을 버린 후 다시 찬물을 부어 센불로 끓인다. 

물이 끓어오르면 중약불로 줄이고 6시간 정도 푹 고아준다. 

고기는 건져낸 후 국물을 다른 그릇에 따라내 식힌 뒤 냉장고에 넣어 식힌다.(기름막이 생기면 걷어낸다.)

사골이 담긴 냄비에 다시 찬물을 붓고 센불로 끓인다. 

물이 끓어오르면 중약불로 줄이고 6시간 정도 푹 고아준다.

1차로 끓인 국물을 2차로 끓인 국물에 넣고 섞는다. 

30분 정도 더 끓여낸다. 

곰탕은 시간을 중심 재료로 삼는 음식이다. 약한 불에서 오랜 시간 고기를 삶고 뼈를 고아내면, 국물은 점차 깊어지고 감칠맛은 단단해진다. 요즘 ‘슬로우 푸드(slow food)’라는 개념이 새롭게 소비되지만, 한국은 오래전부터 곰탕이라는 음식에 ‘시간을 요리하는 기술’을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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