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의 달팽이가 프랑스 미식이 되기까지

정수연 기자

cnc02@hnf.or.kr | 2026-10-14 15:00:59

부르고뉴의 버터와 19세기 요리문화, 세계로 넓어진 한 접시
사진 = 픽사베이

[Cook&Chef = 정수연 기자] 둥근 홈이 파인 접시 위로 버터가 보글거린다. 껍데기 안에는 마늘과 파슬리 향이 가득하고, 손에는 작은 집게와 가느다란 포크가 쥐어진다. 달팽이 살을 한 점 꺼낸 뒤 남은 버터에는 바게트를 곁들인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에스카르고를 주문했을 때 만나는 익숙한 풍경이다.

이 한 접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걸린 시간은 꽤 길다. 달팽이는 유럽에서 오랫동안 먹어온 식재료였고, 고대 로마에서는 종류를 나눠 사육할 만큼 적극적으로 다뤘다. 수백 년 뒤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에서는 포도밭에서 채집한 달팽이가 지역의 식탁에 올랐으며, 버터와 마늘, 파슬리를 품은 조리법은 19세기 프랑스 미식문화 속에서 이름을 얻었다. 오늘날 세계가 ‘프랑스의 에스카르고’라고 기억하는 음식은 그렇게 여러 시대를 지나 완성되어왔다.

로마의 달팽이 사육장

달팽이를 향한 유럽인의 식욕은 적어도 고대 로마의 기록에서 꽤 구체적인 모습으로 확인된다.

서기 1세기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는 기원전 1세기의 풀비우스 리피누스가 타르퀴니 지역에 달팽이를 기르는 시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흰 달팽이와 일리리아산, 아프리카산 등을 서로 다른 공간에 넣었고, 포도즙을 졸인 액체와 곡물을 이용해 살을 찌우기도 했다. 로마인에게 달팽이는 주변에서 주워 먹는 작은 생물에서 이미 관리와 사육의 대상까지 영역을 넓힌 식재료였던 것이다. 

고대 요리서 『아피키우스』로 가면 식탁의 모습이 한층 가까워진다. 달팽이를 우유와 소금에 담가 살을 찌우고, 기름에 익힌 뒤 와인을 이용한 소스를 곁들이는 조리법이 적혀 있다. 또 다른 방식에서는 소금과 기름, 후추와 커민 등을 사용한다. 어떻게 살을 찌울지, 무엇을 곁들일지까지 이미 고민하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달팽이는 유럽 각지의 풍토와 식습관을 따라 서로 다른 음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에서는 훗날 세계가 프랑스 에스카르고의 전형으로 기억하게 될 또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포도밭에서 식탁으로

‘에스카르고 드 부르고뉴(Escargot de Bourgogne)’라 불리는 헬릭스 포마티아(Helix pomatia)는 크고 밝은 색의 껍데기를 가진 달팽이다. 과거에는 부르고뉴의 포도밭에서 손으로 채집해 파리까지 보냈을 만큼 이 지역과 인연이 깊었다. 2026년 프랑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답변에도 옛 부르고뉴 포도밭에서 이 달팽이를 채집했던 풍경이 언급된다. 

지역의 식탁에서는 달팽이에 버터와 마늘, 파슬리를 더했다. 오늘날 ‘에스카르고 아 라 부르기뇬(Escargots à la bourguignonne)’으로 알려진 방식이다. 삶아 손질한 살을 껍데기에 담고 향을 낸 버터를 채운 뒤 뜨겁게 구워낸다. 열을 받은 버터가 껍데기 안에서 녹기 시작하면 달팽이의 담백한 맛 위로 마늘과 파슬리 향이 번진다.

현재 부르고뉴에서도 이 조합은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관광청은 부르고뉴식 에스카르고를 버터·마늘·파슬리와 함께 조리하는 전통 음식으로 소개하며, 특히 크리스마스와 가족 식사에서 즐겨 먹는 음식으로 설명한다. 한때 포도밭에서 채집했던 달팽이가 지금도 지역의 특별한 식탁을 채우고 있는 셈이다. 

바게트가 등장하는 순간에는 이 음식의 매력이 한 번 더 살아난다. 달팽이 살을 꺼내 먹은 껍데기 안에 향긋한 버터가 남아 있고, 빵 한 조각이면 그 맛까지 이어서 즐길 수 있다. 에스카르고의 기억 속에 달팽이만큼 버터가 강하게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1814년, 유명한 한 접시의 탄생담

부르고뉴식 에스카르고의 역사에는 1814년이라는 연도가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프랑스에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는 외교가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 그리고 당대의 이름난 요리사 앙토냉 카렘을 한 식탁에 불러 모은다. 탈레랑의 요청을 받은 카렘이 부르고뉴에서 가져온 달팽이에 버터와 마늘, 파슬리를 더했고, 황제의 호평을 받으며 이 요리가 유명해졌다는 내용이다. 프랑스 관광 자료와 최근 국회 자료에서도 1814년을 부르고뉴식 에스카르고의 중요한 일화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한 번의 식사가 곧바로 오늘날의 조리법을 완성했다는 이야기보다, 그 이후 프랑스 요리문화가 에스카르고를 어떻게 기록하고 다듬어갔는가에 있다.

카렘은 19세기 프랑스 고급요리를 체계화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은 그를 당시 오트 퀴진의 중심적 인물로 소개하며, 조리법을 책으로 정리하고 시각적인 구성까지 세밀하게 설계했던 요리사로 평가한다. 음식을 만들고 기록하고 이름 붙이는 작업이 점차 하나의 체계가 되어가던 시대였다. 

그리고 몇십 년이 흐른 뒤, 에스카르고는 실제 요리문헌 속에서 선명한 이름을 갖게 된다.

뒤마의 요리책에 남은 부르고뉴식 에스카르고

1873년 출간된 알렉상드르 뒤마의 『Grand dictionnaire de cuisine』에는 달팽이가 하나의 독립된 항목으로 등장한다. 로마인들이 달팽이를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프로방스식, 보르도식 등 여러 조리법을 소개하고, ‘에스카르고 아 라 부르기뇬’도 따로 기록했다. 

당시의 조리법을 보면 지금과 미묘하게 다른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뒤마는 부르고뉴 달팽이에 잘게 간 스위스 치즈를 넣고, 허브와 약간의 마늘로 간한 신선한 버터를 덮어 구우라고 적었다. 오늘날 익숙한 버터·마늘·파슬리의 형태가 어느 날 한꺼번에 고정되기보다, 19세기를 지나며 여러 방식으로 다듬어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같은 책에 프로방스식과 보르도식이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하다. 프랑스 사람들은 하나의 달팽이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향신료와 소스로 풀어냈고, 요리책은 그 차이를 이름과 조리법으로 기록했다. 이 시점에 이르면 달팽이는 하나의 식재료인 동시에 프랑스 각 지역의 요리법을 보여주는 음식이 되어 있었다.

19세기는 프랑스 미식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쌓아가던 시간이기도 했다. 카렘과 같은 요리사가 조리기술을 체계화했고, 요리책과 식당을 통해 이름을 가진 음식들이 더 넓은 손님을 만나기 시작했다. 에스카르고 역시 그 흐름 속에 놓였다. 부르고뉴의 식재료와 조리법은 문헌에 기록됐고, 반복해서 조리되며 프랑스 음식이라는 인상을 점점 또렷하게 만들어갔을 것이다.

먹는 방식까지 만들어진 요리

오늘날 에스카르고 한 접시에는 조리법만큼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먹는 도구다.

손님 앞에는 껍데기를 고정하는 작은 집게와 가느다란 포크가 놓인다. 한 손으로 둥근 껍데기를 잡고 다른 손으로 살을 꺼내 먹는다. 달팽이를 다 먹은 뒤에는 껍데기에 남아 있는 향긋한 버터가 자연스럽게 바게트로 이어진다.

그래서 에스카르고를 처음 먹는 경험에는 맛과 함께 동작도 기억된다. 뜨거운 접시를 바라보고, 집게를 쥐고, 작은 포크로 살을 꺼내고, 마지막에는 빵으로 버터를 맛본다. 조리법과 식기, 먹는 순서가 서로 맞물리면서 하나의 프랑스식 식사 장면을 만들어준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부르고뉴식 레시피도 이 장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라루스의 조리법에서는 버터에 샬롯과 마늘, 파슬리를 섞고, 껍데기마다 버터와 달팽이를 채운 다음 전용 홈이 있는 접시에서 버터가 거품을 낼 때까지 뜨겁게 데운다. 곁에는 빵이 따라온다. 

이쯤 되면 에스카르고를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가 꽤 많아진다. 부르고뉴라는 이름, 달팽이 껍데기의 형태, 초록빛 파슬리가 섞인 버터, 뜨거운 접시와 작은 집게까지. 여러 감각이 하나의 이미지로 묶이면서 에스카르고는 해외의 손님에게도 알아보기 쉬운 프랑스 요리가 되어갔다.

부르고뉴의 이름, 세계로 넓어진 공급망

오늘날 에스카르고의 이야기는 부르고뉴의 포도밭을 넘어 훨씬 넓은 지역으로 이어진다.

프랑스 농업회의소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에서 소비되는 달팽이의 95% 이상은 수입품이다. 루마니아와 튀르키예, 헝가리, 그리스 등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프랑스로 들어온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달팽이 소비시장을 유지하는 동안 재료를 공급하는 지리적 범위는 크게 넓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이름과 산지가 갈라지는 흥미로운 지점도 있다. 프랑스에서 통조림 제품에 쓰이는 ‘Escargots de Bourgogne’라는 명칭은 헬릭스 포마티아라는 종을 의미한다. 따라서 실제 부르고뉴 지역에서 잡힌 달팽이만을 가리키는 표현은 아니다. 동유럽에서 채집해 프랑스로 들어온 헬릭스 포마티아 역시 이 이름으로 판매될 수 있다. 

부르고뉴 현지의 상황도 달라져왔다. 프랑스 정부는 20세기 포도 재배 방식이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과거 포도밭에서 흔히 채집하던 헬릭스 포마티아가 지역에서 점차 줄었다고 설명한다. 현재 프랑스의 양식장에서는 그로 그리(gros-gris)와 프티 그리(petit-gris) 같은 다른 종도 기르고 있다. 

야생 개체에는 보호 규정도 적용된다. 헬릭스 포마티아는 껍데기 지름이 3cm보다 작은 경우 연중 채집이 제한되며, 일정 크기 이상인 성체도 번식기인 4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채집할 수 없다. 한때 포도밭에서 손으로 모았던 식재료가 이제는 보호와 양식, 수입을 함께 고려하는 산업의 일부가 된 것이다. 

한 접시에 겹쳐진 프랑스의 시간

다시 처음의 에스카르고 접시로 돌아가 본다.

껍데기 안에서는 여전히 마늘과 파슬리 버터가 뜨겁게 녹고 있다. 손님은 작은 집게를 들고 달팽이 하나를 집는다. 처음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별미 한 접시처럼 보였던 풍경이 이제 조금 다르게 읽힌다.

그 안에는 고대 로마의 달팽이 사육 기록이 있고, 부르고뉴의 포도밭에서 달팽이를 채집하던 시간이 있다. 19세기의 요리사는 버터와 향신채를 더해 조리법을 다듬었고, 뒤마 같은 작가는 그 방식을 책에 남겼다. 프랑스의 미식문화가 세계로 알려지면서 에스카르고라는 이름도 국경을 건넜으며,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들어온 달팽이가 다시 프랑스의 식탁을 채운다.

오랜 시간 먹어온 작은 식재료에 지역의 맛과 요리사의 기술, 기록과 식사 방식이 차곡차곡 더해졌다. 오늘날 우리가 ‘프랑스의 에스카르고’라고 부르는 한 접시는 그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다음에 뜨거운 에스카르고 접시가 테이블에 놓인다면, 작은 껍데기 하나를 꺼내는 일이 조금 더 흥미롭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유명한 달팽이 요리를 먹는 순간이면서, 수천 년을 건너온 식재료가 부르고뉴와 19세기 프랑스 미식문화 속에서 새로운 이름과 모습을 얻어온 시간을 함께 맛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