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열의 '음식잡설(雜說)'] (10) 치킨의 모순
신상열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09-07 15:00:51
걱정은 많은데 냄새 풍기면 못 참고 또 주문
[Cook&Chef = 신상열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국민은 닭을 많이 먹는다. 2023년 기준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15.7kg. 국내산과 수입산을 마릿수로 단순 환산하면 한 사람이 1년에 약 26마리를 먹는 셈이다. 2003년 7.8kg이었던 소비량이 20년 만에 두 배가 됐다.
배달음식에서도 치킨은 강자다. 2025년 외식소비행태 조사 관련 자료에서는 배달 이용자가 가장 선호하는 메뉴로 치킨을 꼽은 비율이 42.4%였다.
그렇게 많이 먹는 음식이니 가격에도 민감하다.
치킨 한 마리에 2만 원을 넘기 시작했을 때 비싸다고 했는데, 이제는 배달비까지 더하면 3만 원에 가까워졌다. 2026년 3월에도 서울 주요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이 배달비를 포함해 3만 원에 육박하면서 냉동치킨 같은 대체재를 찾는 소비가 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체효과(Substitution Effect)다.
비싸면 덜 먹거나 다른 것을 먹는다. 지극히 합리적이다.
가격만 생각하면 치킨의 경제학은 간단한데, 닭까지 생각하면 복잡해진다.
우리가 치킨을 이렇게 흔하고 싸게 먹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가 있었다.
더 빨리 자라는 닭을 기르고, 좁은 공간에서 더 많은 닭을 키우고, 사료부터 도축·가공·유통까지 표준화했다. 많이 생산할수록 닭 한 마리를 키우는 비용은 낮아졌다.
경제학적으로는 효율적이다.
그런데 양계장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 ‘효율’이라는 말이 조금 불편하다.
닭은 땀샘이 없고 체온이 약 41도로 더위에 취약하다. 밀집된 계사에서는 더울 때 그늘을 찾아갈 수도 없다. 닭과 닭이 서로의 열원이 된다.
2025년 폭염으로 8월 말까지 죽은 가축은 약 178만 마리였고, 그중 가금류가 160만 마리를 넘었다. 닭은 약 150만 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기록적인 폭염이 있었던 2018년에는 닭 812만 마리가 죽었다.
숫자가 커지니 ‘죽었다’는 말 대신 ‘폐사’라고 한다.
한 마리가 죽으면 생명인데, 150만 마리가 죽으면 통계가 된다.
공장식 축산의 묘한 비인간성은 여기에 있다.
살아 있는 닭이 몇 주 만에 몇 kg까지 자라는지, 1㎡에 몇 마리를 넣을 수 있는지, 사료를 얼마나 먹고 고기를 얼마나 만들어내는지로 계산된다.
닭은 생명인 동시에 생산 단위가 된다.
그렇다고 치킨을 안 먹자니 그것도 쉽지 않다.
이번에는 내 몸이 문제다.
튀긴 음식에 맥주까지 더하면 건강에 좋을 리 없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치맥 대신 소주를 마시자니 어딘가 섭섭하고, 소맥을 말자니 술값까지 더해져 계산서가 만만치 않다.
닭을 생각하면 사육환경이 걱정이고,
내 몸을 생각하면 혈관이 걱정이고,
가격을 생각하면 지갑이 걱정이다.
치킨 한 마리 먹는데 경제학과 환경학과 철학에 의학까지 따라붙는다.
그런데 냄새가 나면 또 먹는다.
가격과 건강, 미래의 후회까지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 눈앞의 바삭한 닭다리를 선택한다.
내일 아침의 더부룩함은 아직 멀리 있고, 닭다리는 지금 눈앞에 있다.
그런거 보면, 인간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다.
동물복지를 걱정하면서 싼 치킨을 찾고, 건강을 걱정하면서 치맥을 먹는다.
배달비가 비싸다고 투덜거리다가 할인쿠폰 3천 원이 뜨면 다시 주문한다.
치킨이 재미있는 것은 이런 모순이 한 마리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업의 효율과 닭의 희생, 소비자의 가격과 자영업자의 원가, 미래의 건강과 지금의 즐거움이 모두 부딪힌다.
그래서 요즘 치킨 한 마리를 먹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예전에는 치킨집 전단지를 펼쳐놓고 고민할 것이 하나뿐이었다.
후라이드냐, 양념이냐.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복잡해진 것보다, 내가 세상보다 먼저 늙어 생각이 많아진 것인 듯도 하다. 지난날에는 치킨을 먹으면서 닭의 체온이 몇 도인지 몰랐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몰랐으며, 배달 플랫폼의 수수료 구조는 더더욱 몰랐다.
몰라서 편했고, 맛있어서 먹었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선택이 현명해질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때로는 아는 만큼 걱정이 늘고, 생각하는 만큼 즐거움이 줄기도 한다.
그러니 오늘 하루쯤은 경제학도, 기후도, 혈관도 잠시 미뤄두자.
치킨은 식기 전에 먹어야 하고 소맥은 거품이 꺼지기 전에 마셔야 한다.
후라이드냐, 양념이냐.
오늘의 고민은 딱 거기까지만 하자.
아무 생각 없이 치킨 한 조각에 소맥 한잔하자.
내일의 걱정은 내일의 내가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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