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의 손맛으로 배우는 전통”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06-04 11:43:51

경북 종가음식, 밥상 위의 철학으로 대중 속에 스며들다

경북의 종가음식이 다시금 대중 속으로 발을 들이고 있다. 경상북도가 6월과 7월 두 달간 운영하는 ‘경북 종가음식 쿠킹클래스’는 프로그램 개시 전부터 관심을 모았고, 모집 시작과 동시에 전 회차가 마감되는 기록을 남겼다.

사전 신청자만 입장 가능한 이 프로그램은 종가에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전통 음식 조리법을 현장에서 직접 배우는 기회로, 특히 종부들이 강사로 나서 참가자들과 손맛을 나누는 방식이 큰 호응을 얻었다.

종가음식은 단순한 조리기술의 산물이 아니다. 조선 후기 이후 유교 문화권의 중심지였던 경북 지역은 종손 중심의 가계 구조와 제례 문화가 뿌리 깊게 이어져 왔다. 이 문화 속에서 형성된 음식은 의례를 위한 음식인 동시에 일상에서 실천되는 가르침이자 태도였다.

‘누구에게 내는 음식인가’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해 ‘언제, 어떻게,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까지 고민하는 이 정성의 집합체는 결국 한 사람의 품성과 집안의 품격을 드러내는 척도가 되었다. 이번 클래스에 참여한 종부들은 각자의 가문에서 오랫동안 준비해온 상차림을 시연하며, 음식 뒤에 숨어 있는 스토리와 조리 철학을 직접 풀어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도토리묵, 호두정과, 인삼정과, 개성주악 등 총 10가지 음식이 소개되었다. 재료는 대부분 경북 로컬 식재료를 활용했으며, 특히 건조·숙성·절임 등 전통 조리 방식이 그대로 재현됐다.

참가자들은 음식을 단순히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손질법, 간 맞추는 법, 조리 시간에 대한 감각 등 구술 중심으로 전해지는 ‘손맛의 언어’를 직접 몸으로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인삼정과는 인삼을 오래 졸여내는 인내의 작업을 통해 단맛과 약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인상 깊은 음식으로 기억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단발성에 그치지 않는다. 오는 6월 20일부터 22일까지 안동 월영공원에서 열리는 ‘2025 종가음식문화대전’에서도 종가음식 쿠킹 클래스와 시식 프로그램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 행사에서는 경북 각지의 종가에서 수십 년간 내려온 밥상 문화가 하나의 전시 공간이자 체험 콘텐츠로 구현되며, 일반 대중도 손쉽게 종가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서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지역 전통, 가족 중심의 가치관, 슬로우푸드의 미학까지 함께 접할 수 있는 복합 문화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종가음식은 현대인의 식탁에서는 보기 드문 ‘느림의 철학’을 간직한 음식이다. 빠르게 소비되고 빠르게 폐기되는 음식 문화 속에서 종가음식은 오히려 차분한 리듬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재료 하나하나의 쓰임새를 알고, 계절과 시간에 따라 조리 방식을 달리하며, 음식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고 감정을 전달한다. 이 모든 과정이 밥상 위에 펼쳐지고, 그 밥상은 다시 한 사람의 태도와 기억으로 이어진다.

경북도 문화관광체육국 김병곤 국장은 “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종가를 보유한 지역으로, 음식의 품격과 다양성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며 “이번 쿠킹클래스가 마감되었더라도, 종가음식문화대전이나 다른 계기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종가의 전통과 지혜를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종가음식은 관광자원인 동시에, 교육 자원이며, 지역 식문화의 원형이다”라며 다층적 의미를 강조했다.

오늘날 요리사들은 단지 맛을 내는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요리는 곧 이야기이며, 정체성이며, 관계를 잇는 수단이다. 그런 점에서 종가음식은 쿡앤셰프 독자들이 지향하는 요리의 본질, 그리고 한식의 깊이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출발점이다. 빠름이 미덕이 된 시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정성과 품격의 요리’, 그것이 바로 종가음식이 지금 다시 조명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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