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의 '세상의 모든 사과'] (4) 파리스의 황금사과...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김경주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08-18 15:32:35
잃게 될 것도 숙고해 결정
[Cook&Chef = 김경주 칼럼니스트]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인간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황금사과 하나가 굴러들어왔다. 사과를 던진 이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였다. 올림포스 신들의 잔치에 자신만 초대받지 못하자, 누가 가지더라도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사과를 던져놓은 것이다.
예상대로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저마다 자신이 사과의 주인이라고 나섰다. 축하의 자리는 순식간에 다툼의 장으로 변했다. 제우스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다. 세 여신은 그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저마다 선물을 내걸었다. 헤라는 막강한 권력을,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약속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과를 건넸다. 그리고 그녀가 약속한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왔다. 문제는 헬레네가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다는 점이다. 그녀를 되찾기 위해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로 향하면서,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됐다.
이 신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파리스가 누구를 선택했느냐 보다, 하나를 택하는 순간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는 것은 곧 헤라와 아테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 오래된 신화는 지금도 살아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그린다. 그 기나긴 여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대한 전쟁의 신화적 출발점에 파리스의 황금사과가 놓여 있다.
비즈니스에서도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많다. 문제는 선택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지를 얼마나 제대로 읽어냈느냐에 있다.
1985년 코카콜라(Coca-Cola)는 99년 동안 지켜온 기존의 맛을 바꾸는 큰 결정을 내렸다. 펩시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던 시기였다. 소비자 대상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더 달콤한 새 맛이 좋은 평가를 받았고, 코카콜라는 이를 바탕으로 기존 제품을 대체할 ‘뉴 코크(New Coke)’를 출시했다.
숫자만 보면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은 맛으로 바꾸면 더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코카콜라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 있었다.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히 음료의 맛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함께해 온 익숙함과 기억, ‘코카콜라다운 맛’에 대한 애착도 브랜드의 일부였다.
뉴 코크가 기존 코카콜라를 대체하자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결국 코카콜라는 뉴 코크 출시 79일 만에 옛 맛을 ‘코카콜라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놓았다. 더 나은 맛을 선택하려 했지만, 그 실패는 오히려 코카콜라가 오랜 시간 쌓아온 브랜드의 힘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여줬다.
기업의 선택에는 이처럼 숫자로는 바로 확인하기 어려운 대가가 숨어 있을 때가 많다. 가격을 낮추면 서비스의 일부를 포기해야 할 수 있고, 특정 고객층에 집중하면 다른 고객은 놓칠 수 있다. 빠른 성장을 택하면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고, 새로운 시장에 힘을 쏟으면 기존 사업에 투입할 자원은 줄어든다.
경영학자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는 전략의 핵심을 트레이드오프에서 찾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만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전략이라는 뜻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지려 하기보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에 집중할지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케아(IKEA)는 그런 선택을 사업모델로 만든 대표적인 브랜드다.
전통적인 가구점은 완성된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원이 고객을 안내하며, 구매한 가구를 집까지 운반해 설치해 준다. 이케아는 그와 다른 길을 택했다. 고객이 매장을 직접 둘러보며 제품을 고르고, 납작하게 포장된 가구를 가져가 직접 조립하도록 했다.
고객에게 일을 떠넘긴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케아는 운송과 보관 비용을 줄이고, 좋은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제품을 비교적 낮은 가격에 팔 수 있었다. 이케아의 플랫팩은 단순한 포장 방식이 아니다. 낮은 가격을 위해 기업이 할 일과 고객이 할 일을 새롭게 나눈 결과다.
이케아는 모든 가구 구매자를 만족시키려 하지 않았다. 세심한 상담과 완제품 배송·설치를 원하는 고객보다, 합리적인 가격을 위해 직접 고르고 조립할 의향이 있는 고객을 택했다. 무엇을 제공하지 않을지 분명히 한 덕분에 무엇을 잘하는 브랜드인지도 선명해졌다.
뉴 코크를 내놓은 코카콜라와 이케아는 모두 분명한 선택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코카콜라는 새롭게 얻을 것에 주목한 나머지 기존의 맛과 함께 무엇을 잃게 될지를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다. 반면 이케아는 낮은 가격을 선택하면서 그 대가로 어떤 서비스를 포기해야 하는지까지 사업모델 안에 포함시켰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에 선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용을 줄이면 누군가의 업무 부담이 늘어날 수 있고, 특정 고객층에 집중하면 다른 고객은 소외될 수 있다. 빠른 성장을 좇다 보면 품질이나 조직문화가 흔들릴 수 있고, 외부 플랫폼에 의존하면 고객과 데이터에 대한 주도권을 내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대가까지 함께 보는 일이다.
오늘도 기업의 회의실에는 수많은 황금사과가 놓인다. 더 많은 매출, 더 빠른 성장, 더 넓은 시장, 더 화려한 명성의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들기 전에 물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려 하는가.
그 선택을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그리고 그 대가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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