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균의 ‘역사 속 음식이야기’] (8) 효종갱
염상균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10-14 15:00:40
남한산성에서 끓여 북촌 재상가 숙취 해소
[Cook&Chef = 염상균 칼럼니스트] 수도권 시민들이 즐겨 찾는 남한산성은 조선의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해 인조 때 대대적으로 증축한 산성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 인조는 청나라 군대에 맞서 이곳에서 47일 동안 항전했으나, 끝내 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항복해야 했다. 나라의 운명이 흔들리고 백성의 고통이 깊어졌던 역사의 현장이다.
그러나 성 안에는 관청과 군영을 비롯해 민가와 사찰이 들어섰고, 그곳에서 농민과 상인, 군인과 승려가 저마다의 삶을 이어갔다. 농민은 밭을 일구어 먹거리를 마련하고, 상인은 필요한 물건을 사고팔았으며, 군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훈련과 경계에 힘썼다. 승려들도 산성의 방어와 주민들의 생활에 힘을 보탰다. 전쟁에 대비해 식량을 저장하고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일도 중요했다. 이처럼 남한산성은 위급한 순간을 대비하는 군사기지인 동시에, 사람들이 먹고 일하고 물건을 나누며 살아가는 생활공간이었다. 이러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00여 년 전 그 남한산성에서 종일토록 끓인 국이 서울의 재상 집까지 배달되었다. 이름은 효종갱(曉鐘羹). ‘새벽 효(曉)’에 ‘쇠북 종(鐘)’, ‘국 갱(羹)’을 쓴다. 글자 그대로라면 ‘새벽 종소리 들으며 먹는 국’이다. 효종갱을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기록은 최영년(崔永年,1856~1935)의 『해동죽지(海東竹枝)』다. 1925년 간행된 이 책에는 신선로, 감주, 헛제사밥, 고추장, 냉면 등 전국의 이름난 음식과 유래를 죽지사(竹枝詞)와 함께 실었다. 풍속과 명물까지 두루 기록한 이 책은 당시 사람들의 먹거리와 생활문화를 엿보기 좋은 귀중한 자료다. 효종갱은 다른 조선시대 음식 관련 문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해동죽지』에 자세한 모습이 나온다.
“광주성(廣州城) 안에서 이 국을 잘 끓인다. 만드는 방법은 배추속대를 위주로 하여, 콩나물, 송이, 표고, 소갈비, 양지머리뼈, 해삼, 전복에 토장을 섞고 종일토록 끓인다. 저녁때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짊어지워 서울로 보내, 재상가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종이 울릴 무렵이 되는데, 여전히 국 항아리가 따뜻하다.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에 이 국을 먹으면 달콤하고 담백하며 향기가 짙어, 이름이 온 세상에 알려졌다. 어떤 사람은 이 국을 ‘북촌갱(北村羹)’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曉鐘羹, 廣州城內 善調此羹 造法菘心(백채숙대)爲主 菽芽·松茸·蔈菇·牛肋·陽骨·海蔘·全鰒 和土醬, 終日煮熟. 夕天以綿裹缸, 擔送于京城, 時宰家時値曉鍾, 羹缸猶溫. 爛酒啜羹, 甘澹香膩, 名擅一世. 或目之以北村羹.
『해동죽지』에는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이 국을 먹으면 좋다”고 했지만, 효종갱이라는 이름의 조리법은 조선시대 조리서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1930년대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과 『조선요리제법』에 토장국·술국·해장국·배추속대국 등이 등장하며 효종갱과 비슷한 재료와 조리법을 보여준다. 효종갱과 훗날의 해장국 사이의 흐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해동죽지』에는 효종갱을 노래한 시도 나온다.
“태화산에 맑은 종소리 한 번 울리자/광주의 효종갱에서는 새벽부터 향기가 피어난다.
비단 휘장 안에서는 양고주를 마시고,/눈보라 속 매화가 필 때까지 몇 번이나 술잔을 기울였던가.”太華淸鍾落一聲/廣陵羹已曉香生/銷金帳裏羊羔酒/風雪梅花問幾行
서울의 양반이 밤새 귀하고 진한 술을 마시고, 새벽 종소리가 울리자 남한산성에서 밤새 운반해온 따끈한 효종갱을 받아드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진다. 눈보라 치는 겨울밤, 술잔을 기울이고 새벽에는 따뜻한 국으로 속을 달랜다. 효종갱은 그렇게 남한산성과 서울, 밤과 새벽, 술과 국을 이어준 음식이었다.
저자 최영년은 185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1897년 시흥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고 독립협회 운동에도 참여했다. 1905년 을사늑약을 전후해 친일 성향으로 돌아서 1907년 일진회 총무원과 『국민신보』 주필·사장을 지냈다. 이후 『조선문예』와 『매일신보』에서 문예 활동을 이어갔으며, 1925년 제자 송순기의 편집과 김병채의 교주로 『해동죽지』를 3권 1책으로 출간했다. 『해동죽지』 상편은 단군조선부터 조선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를 8장으로, 중편은 속악유희·명절풍속·음식명물 등 세시풍속과 생활문화를, 하편은 누대정각·전묘사묘·단소사향 등 문화유적과 제향을 다뤘다. 표지에 작은 글씨로 쓴 ‘이목규 첨’은 이목규가 『해동죽지』의 표지 글씨나 원고를 첨삭하는 데 관여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나는 술을 짊어지고는 못 가도 마시고는 갔던 사람 중 하나였다. 술을 마시면 취하고, 취하면 숙취가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이름난 해장국은 찾아다니며 대개 맛보았다. 조지훈 시인은 「주도유단(酒道有段)」에서 술을 많이 마시는 능력보다 술을 대하는 태도와 경지를 바둑의 단수처럼 나누었다. 술을 두려워하는 단계에서 애주·기주·탐주·폭주를 지나 7단 낙주(樂酒), 8단 관주(觀酒), 마침내 9단 폐주(廢酒-열반주)에 이른다. 지금 나는 7단과 8단 사이쯤이다. 술을 마시는 즐거움도 알지만,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고 술자리의 분위기와 사람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니 요즘엔 해장국도 먹을 일이 없다. 그래도 누군가 효종갱을 복원한다면 꼭 한 번 먹어 보고 싶다.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