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로 남은 우리 음식 이름

조연정 기자

cnc02@hnf.or.kr | 2026-10-10 15:01:28

지역 사투리와 방언으로 부르는 음식
우리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

[Cook&Chef = 조연정 기자] 얼마 전 식당을 찾다가 ‘임자탕’이라는 음식을 발견했다. 들깨 수제비와 비슷한 맛과 담음새였다. 먹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왜 임자탕이라고 부르는 걸까? 찾아보니 임자(荏子)는 한자로 깨를 뜻하는데, 강원도에서는 들깨 국물에 도토리수제비를 넣어 만든 음식을 임자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렇게 한식에는 이름은 낯설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는 음식이 꽤 많다. 특이하고 신기한 한식 이름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지역마다 다른 식재료, 다른 사투리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향토 음식에는 지역의 기후나 풍토,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음식 부르는 이름도 구전으로 전해져 그 지역의 말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흔히 사투리나 방언이라고 하는데, 처음 들으면 낯설지만 뜻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각재기국은 국물이 시원해 해장음식으로
즐겨 먹는다. 사진= 저작자 : 채지형
출처 : 한국저작권위원회

음식의 식재료를 사투리나 방언으로 불러서 붙여진 경우가 제일 흔하다. 각재기는 전갱이의 제주 방언으로 고등어보다 비린 맛이 별로 없고 감칠맛이 뛰어나다. 제주에서는 각재기에 얼갈이 배를 넣고 된장을 풀어 구수하게 국을 끓이는데, 이를 각재기국이라고 한다. 모멀조베기는 제주에서 출산 후 꼭 먹는 음식이다. 모멀은 메밀, 조베기는 수제비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로 미역국이나 들깨탕에 넣어 따뜻하게 먹었다. 충북 옥천에서는 모래무지를 마주라고 부른다. 금강에서 사는 마주는 성질이 급해 바로 죽기 때문에 조림으로 해 먹었다고 한다. 몸집이 큰 병어인 덕자로 만드는 전남의 덕자찜이나 갈치 새끼인 풀치로 만드는 전북 군산의 풀치 조림 등도 마찬가지다.  

만들고 보면서 떠오른 음식 이름들 

홍갓을 넣어 불그스름한 물이
든 전북 정읍의 싱건지.
사진 = 전통문화포털

조리법이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싱건지와 꺼먹지가 대표적이다. 싱건지는 ‘싱거운 김치’라는 뜻에서 유래한 전라도 사투리이자 순우리말이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슴슴하고 시원하게 담그는 동치미이다. 꺼먹지는 ‘검은 김치’라는 뜻으로 충남 당진에서 담그는 무청 김치이다. 11월경에 무청을 수확해 절인 후 이듬해 봄에 꺼내 먹는다. 털레기는 온갖 재료를 탈탈 털어 넣는다는 의미로, 주로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매운탕으로 끓인다. 벌버리묵은 박대 껍질로 만든 생선묵으로, 인천, 충남 등 서해에서 만들어 먹었다. 썰어서 그릇에 담으면 힘없이 벌벌 떨어서 벌버리묵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싱싱한 꽁치의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곱게 다진 후, 밀가루를 넣어 동그랗게 빚어낸다.
우거지를 넣은 된장국에 당구를 넣으면 깊고 고소한 맛이 난다. 사진 = 전통문화포털

경북 포항의 당구국은 조리법에 유래됐다. 당구는 사투리로 칼로 잘게 다진다는 뜻으로, 주로 꽁치를 잘게 다져 완자로 만들어 국이나 찌개에 넣어 먹었다. 오모가리탕은 특이하게 그릇에서 이름을 따왔다. 전북 전주 사투리로 찌개나 탕을 끓일 때 쓰는 속이 깊고 둥근 뚝배기를 오모가리라고 한다. 오모가리에 민물고기를 넣고 매운탕을 푹 끓이면 국물 맛이 깊다. 

궁중음식도, 서민 음식도 의미가 있다 

손님 접대 음식인 안동 건진국수는 경상도 사투리로 '건진국시'라고도 불렸다.
국물과 고명 재료로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사용했다. 사진 = 전통문화포털

이름 자체에 역사가 담긴 음식도 있다. 경북 안동의 건진국수는 반가 문화를 잘 보여준다. 여름에 양반가 잔칫날이나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 음식으로 밀가루와 콩가루를 넣은 면발을 얇게 뽑아 찬물에 담갔다 건진다. 그래서 건진국수라고 부른다. 국수 국물은 은어를 달여서 은은한 맛을 냈다. 임자수탕은 조선시대 궁중음식으로 대표적인 여름 보양식이다. 닭을 끓여 국물에 깨를 갈아 넣고 고기를 찢어 갖은 고명을 곁들인다. 깨를 뜻하는 임자(荏子)와 물을 뜻하는 수(水)를 합쳐 임자수탕이라고 불렀다.

예전에는 겨울이 되면 먹거리가 부족해서 있는 식재료를 활용해 죽을 끓여 먹었다. 강원도 산골에서는 콩비지나 콩가루로 콩죽, 콩국을 많이 만들었는데, 콩갱이라고 부른다. 콩에 국을 뜻하는 한자 갱(羹)이 합쳐진 말이다. 갱은 경북에서도 사용했다. 갱시기는 겨울에 멸치 국물에 묵은지와 찬밥 등 온갖 재료를 넣고 푹 끓은 음식으로 양을 늘려서 오래 두고 먹었다. 경남 통영에서는 빼데기를 활용해서 죽을 끓였다. 빼데기는 경남 및 제주 지역 사투리로 생고구마를 얇게 썰어서 말린 고구마를 뜻한다. 빼데기죽은 빼데기와 팥, 찹쌀, 콩 등을 넣어 죽으로 먹던 음식이다. 


일본의 한 소설가는 ‘모든 음식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라고 했다. 우리 음식인 한식도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한식 이름도 마찬가지다. 오늘 저녁, 메뉴판에서 적힌 음식 이름에 담긴 시대적 변화와 다양한 의미를 찾아보는 재미를 경험해 보길 바란다. 

참고 도서 <먹는 보물 숨은 보약 향토밥상>(농민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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