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인문학] 국화주를 마시는 날, 중양절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 2026-10-09 15:01:14

국화주 한 잔에 담긴 장수에 대한 염원과 가을의 풍류
음력 9월 9일, 꽃을 감상하고 술을 나누던 중양절
가을을 맞아 노란 꽃을 피운 국화. 예부터 국화는 건강과 장수를 상징했으며,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는 국화로 술을 빚거나 꽃을 술잔에 띄워 마시며 가을의 풍류를 즐겼다. / 사진 = 신현우 기자

[Cook&Chef = 신현우 기자] 가을이 깊어지면 하나둘 국화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봄에는 진달래와 벚꽃, 여름에는 연꽃이 계절을 알린다면 가을은 단연 국화의 계절이다. 오늘날 국화는 꽃을 감상하거나 차로 즐기는 것이 익숙하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캐모마일차 또한 국화과 식물의 꽃을 말려 만든 차다. 물론 우리가 흔히 보는 국화와는 다른 식물이지만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국화를 눈만이 아닌, 입으로도 즐겼다. 찹쌀가루 반죽에 국화꽃을 얹어 지진 국화전부터 국화의 향을 담은 국화화채, 국화꽃으로 향을 더한 국화주까지 다양한 음식과 술에 국화를 넣어 계절의 맛과 멋을 즐겼다.

이처럼 국화를 감상하고, 먹고, 마시며 가을의 풍류를 즐기던 명절이 있다. 바로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이다.

아홉이라는 숫자가 두 번 겹치는 날, 중양절
올해 중양절은 양력으로 10월 19일이다. 추석이 지나고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찾아오는 명절이지만, 오늘날에는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왜 하필 9월 9일일까.

동양의 전통적인 음양사상에서는 홀수를 양(陽), 짝수를 음(陰)으로 여겼다. 그중에서도 9는 양을 상징하는 가장 큰 한 자리 숫자다. 이러한 9가 두 번 겹치는 날이라는 의미에서 '거듭 중(重)', '볕 양(陽)', '마디 절(節)'을 사용해 중양절(重陽節)이라 불렀다.

또한 아홉이라는 숫자가 두 번 겹친다는 뜻에서 '거듭 중(重)', '아홉 구(九)', '마디 절(節)'을 사용해 중구절(重九節)이라고도 했다. 결국 중양절과 중구절은 같은 날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이름인 셈이다.

중양절의 풍속은 한나라 시기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후 여러 왕조를 거치며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부터 중양절에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중양절에 국화주를 마신 이유
국화주(菊花酒)는 이름 그대로 국화를 이용해 만든 술이다.

선조들에게 국화는 단순히 아름다운 꽃이 아니었다.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꽃을 피우는 국화는 절개와 지조의 상징이었으며,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술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중양절에 국화주를 마시면 병을 피하고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으며, 국화주는 장수를 기원하는 술로 여겨졌다.

국화와 장수를 연결하는 문화는 오래된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려가요 <동동(動動)>의 9월령에는 중양절에 노란 국화를 약으로 여기는 내용이 등장한다. 국화가 단순히 감상하는 꽃을 넘어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화주에 관한 기록도 고려시대 문헌인 <동국이상국집>과 <파한집>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화를 이용한 술 문화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국화주를 마시면 실제로 장수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술 한 잔에 건강과 장수에 대한 바람을 담았다는 점에서 당시의 문화적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중양절의 국화주는 단순히 계절에 맞춰 마시는 술이 아니라,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술이었다. 

국화로 술을 빚는 방법도 다양했다

흥미롭게도 국화주를 만드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국화를 곡물과 함께 발효시키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이미 빚어 놓은 술에 국화의 향을 입히는 방법도 있었다.

요록에 기록된 국화주(菊花酒) 제조법. 국화와 생지황, 구기자뿌리를 각각 다섯 근씩 찧어 물에 끓인 뒤, 찹쌀과 누룩을 섞어 발효시키는 방법이 소개돼 있다. / 사진 = 한국전통지식포탈

조선시대 문헌인 <요록(要錄)>에는 '지골피주'라고 하여 국화와 생지황, 구기자뿌리를 함께 찧어 물에 넣고 끓인 뒤, 그 즙을 찹쌀밥과 누룩에 섞어 발효시키는 방법이 기록돼 있다.

단순히 국화꽃을 술에 넣는 것이 아니라 여러 약재를 함께 사용하여,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골수를 보하며, 수명을 늘려 오래 살게 한다는 효능도 전해진다. 물론 이는 당시의 의학적 인식이지만, 국화주가 향기로운 술을 넘어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까지 지녔음을 보여준다.

<규곤요람>에 기록된 국화쥬법. / 사진 = 한국전통지식포탈

반면 <규곤요람>에는 조금 다른 방식이 소개돼 있다. 말린 국화를 모시주머니에 넣어 약주 위에 매달아 두었다가 이틀 뒤에 꺼내는 방법이다. 이는 국화를 직접 발효시키는 대신 술에 국화의 향을 입히는 방식이다. 

이처럼 같은 국화주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제조법에 따라 서로 다른 술이 만들어졌다. 국화를 술의 발효 과정에 넣었는지, 완성된 술에 향을 입혔는지에 따라 맛과 향에도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국화주에는 단순히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을 넘어, 계절을 즐기던 옛사람들의 풍류와 건강과 장수를 기원했던 문화가 담겨 있다. 여기에 국화의 향을 술에 입히고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발효시켰던 양조 기술까지 더해져, 국화주 한 잔에 당시의 생활문화와 술 빚는 지혜가 함께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국화주 한 잔에 담긴 가을의 시주풍류
오늘날 우리는 가을이 되면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산을 찾거나 바다로 여행을 떠나며 계절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선조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윤복의 <삼추가연>. 국화꽃이 피어난 가을, 사람들이 술을 나누는 모습을 담은 조선 후기 풍속화다. 국화와 술을 함께 즐기던 옛사람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다. / 사진 = 간송미술관

선조들 역시 가을이 깊어지는 중양절이면 산이나 언덕처럼 높은 곳에 올라 주변의 풍경을 감상했는데, 이를 '오를 등(登)', '높을 고(高)'를 사용해 등고(登高)라고 불렀다.

높은 곳에 올라서는 국화꽃을 감상하고 시를 지으며 술을 나누었다. 국화를 감상하는 것을 '상줄 상(賞)', '국화 국(菊)'을 사용해 상국(賞菊)이라 했으며,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풍류는 '시 시(詩)', '술 주(酒)'를 사용해 시주(詩酒)라고 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국화주였다. 국화주를 마시거나 술잔에 국화꽃을 띄워 마시는 풍속을 '뜰 범(泛)', '국화 국(菊)'을 사용해 범국(泛菊)이라고 했다. 국화꽃을 술에 띄운다는 의미에서 황화범주(黃花泛酒)라고도 불렀다.

이처럼 선조들은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벗 삼아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시주풍류(詩酒風流)를 즐겼다. 오늘날 우리가 여행을 떠나 좋은 사람들과 음식과 술을 나누듯, 옛사람들도 국화주 한 잔으로 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던 것이다.

또한, 국화주는 궁중에서도 축하주로 사용되었다. 즉, 궁중에서는 축하의 의미를 민간에서는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즐겼던 것이다.

잊혀가는 명절, 국화주에 남아 있는 이야기
오늘날 중양절은 설날이나 추석처럼 많은 사람이 챙기는 명절은 아니다.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곳에 올라 시를 짓던 풍경도 이제는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국화주에 담긴 의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계절에 따라 피어나는 꽃을 술에 담고, 그 술에 건강과 장수에 대한 바람을 더했던 선조들. 국화주는 단순히 꽃으로 빚은 술이 아니라 계절을 즐기고 서로의 안녕을 기원했던 술 문화의 한 부분이었다.

오는 19일은 중양절이다. 비록 예전처럼 국화전을 부치고 국화주를 마시며 명절을 보내기는 어렵겠지만, 올가을에는 국화꽃을 바라보며 옛사람들의 풍류를 한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

Cook&Chef /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