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티켓 EATIQUETTE] 이탈리아식 예절, 소스는 빵으로 커피는 식사 끝에

정수연 기자

cnc02@hnf.or.kr | 2026-08-18 15:02:49

포크로 몇 가닥 감아 한입 크기로 먹는 파스타
손으로 조금씩 떼어 곁들이는 빵 한 조각
출처 : AI생성이미지

[Cook&Chef = 정수연 기자]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펼치면 한 끼의 시간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안티파스티, 프리미, 세콘디, 콘토르니, 돌치. 음식의 종류를 나눈 항목이면서 동시에 식탁 위에서 접시가 움직일 순서를 알려주는 말들이다. 입맛을 여는 음식이 첫 장면을 맡고, 파스타나 리소토가 한 접시를 채운다. 고기와 생선이 그 뒤를 이어 등장한 뒤 디저트를 지나면, 짧은 커피 한 잔이 마지막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정찬에서는 무엇을 먹을지와 함께 언제 그 음식을 먹는지도 중요하다. 파스타에는 프리모라는 순서가 있고, 빵은 코스와 식사의 분위기에 따라 쓰임을 달리해왔다. 식후 커피 역시 한 끼의 마지막에 별도의 차례로 등장한다. 음식마다 놓이는 자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한 끼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즐겨온 방식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접시가 바뀌며 이어지는 한 끼

오늘날 이탈리아식 정찬은 대체로 안티파스토에서 시작해 프리모, 세콘도, 콘토르노, 돌체, 카페로 이어진다. 식사 전에는 아페리티보를 즐기기도 하고, 마지막에 디제스티보가 더해지기도 한다. 일상에서는 필요한 코스를 골라 먹으며, 축일이나 격식을 갖춘 자리에서는 보다 긴 구성이 펼쳐져왔다.

안티파스토는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입맛을 여는 음식이다. 살루미와 치즈, 올리브, 절임채소, 해산물 등 지역과 계절에 따라 내용도 달라져왔다. 이어지는 프리모에는 파스타와 리소토, 수프가 오른다. 세콘도에서는 고기나 생선이 중심을 차지하며, 채소와 감자 같은 콘토르노가 함께 식탁에 놓인다.

한 코스가 끝나면 접시가 바뀌고 다음 음식이 자리를 이어받는다. 파스타를 마친 뒤에는 세콘도가 식사의 무게를 옮기고, 이후 단맛과 커피가 차례를 받는다. 코스가 바뀔 때마다 맛의 중심도 움직이며, 함께 앉은 사람들에게는 대화를 이어갈 시간이 생겨났다. 한 끼를 여러 장면으로 나누어 즐기는 방식이 이렇게 완성돼온 것이다.


프리모에 오르는 파스타

이탈리아 정찬에서 파스타는 안티파스토 다음에 이어지는 프리모 코스에 오른다. 스파게티와 탈리아텔레, 라비올리 같은 파스타뿐 아니라 리소토와 수프도 이 순서에 자리한다. 프리모를 마치면 접시를 바꾸고 세콘도로 넘어간다. 파스타가 하나의 독립된 코스로 자리 잡은 배경도 이 식사 구조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소스와 면의 조합부터 익힘 정도와 한입의 크기까지 파스타 한 접시 안에서 하나의 코스가 완성된다. 스파게티처럼 긴 면을 먹을 때에는 포크로 몇 가닥을 잡아 한입에 들어갈 만큼 말아 올린다. 접시 위에서 면을 가지런히 감아 입으로 가져가면 소스가 튀거나 긴 면이 흘러내리는 상황도 줄일 수 있다.

오늘날 격식을 갖춘 자리에서는 긴 파스타도 포크 하나로 먹는 방식이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숟가락을 보조해 면을 마는 방식은 과거의 지역 관습에서 흥미로운 흔적을 남겼다. 몇 세대 전 나폴리에서는 숟가락을 받쳐 긴 면을 마는 식사법이 세련된 행동으로 여겨졌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파스타 예절 역시 시대의 생활 방식과 함께 변해온 셈이다.


식탁 위에 놓인 빵 한 조각

파스타와 함께 이탈리아 식탁에서 꾸준히 모습을 보여온 음식이 빵이다. 빵에는 함께 먹는다는 의미도 오래 남아 있다. ‘동료’나 ‘친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compagno’의 어원은 ‘함께 빵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과 연결된다. 한 덩이의 빵을 나누는 행위가 공동 식사의 오래된 이미지를 언어 속에도 남겨준 것이다.

격식을 갖춘 식탁에서는 빵을 손으로 필요한 만큼 조금씩 떼어 먹는다. 자신의 빵 접시 위에 놓고 한입 크기로 나누는 방식이 예절로 자리 잡아왔다. 손으로 자신의 몫을 작게 떼어내면 식탁의 흐름을 크게 방해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만큼 먹을 수 있다. 작은 동작 하나에도 함께 식탁을 쓰는 사람을 의식하는 태도가 배어 있는 셈이다.

빵의 역할은 코스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처음부터 바구니에 담겨 식탁에 오르기도 하고, 현대의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파스타나 리소토가 먼저 나올 때 빵의 등장 시점을 세콘도 쪽으로 조정하기도 한다. 고기나 생선의 소스와 함께 빵을 즐기는 자리도 자연스럽게 이어져왔다. 같은 빵이라도 어느 순간 식탁에 놓이느냐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것이다.


접시 위에 남은 소스와 스카르페타

빵의 역할이 가장 흥미롭게 바뀌는 순간은 접시 위에 소스가 남았을 때 찾아온다. 작은 빵 조각으로 남은 소스나 기름을 훑어 먹는 행동을 이탈리아에서는 ‘스카르페타’라고 부른다. 파스타를 모두 먹은 뒤 접시 바닥에 남은 소스까지 빵으로 모아 맛보는 장면이다.

이 표현의 어원에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져왔다. 빵이 접시 위를 움직이는 모습이 작은 신발처럼 보였다는 설명이 있고, 남은 음식까지 알뜰하게 먹던 생활의 기억과 연결하는 해석도 있다. 여러 설이 함께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카르페타가 오래된 생활 속에서 자라난 표현임을 짐작하게 한다.

스카르페타를 대하는 태도는 자리의 성격에 따라 달라져왔다. 공식적인 정찬에서는 접시와 식탁을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며 다음 코스로 넘어가는 태도를 예의로 여긴다.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과의 편안한 자리에서는 잘 만든 소스를 마지막까지 즐기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고, 때로는 요리한 사람에게 보내는 만족의 표현이 되어주기도 했다.

같은 빵 한 조각이 격식 있는 식탁에서는 절제된 행동을 요구하고, 편안한 식탁에서는 접시의 마지막 맛을 즐기는 도구가 된다. 자리와 관계가 달라지면 같은 행동의 의미도 달라졌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탈리아의 갈라테오와 실제 생활 속 식사 습관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어져온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돌체 뒤에 놓이는 카페

세콘도와 콘토르노를 지나 돌체에 이르면 식사는 마지막 단계로 접어든다. 티라미수나 케이크, 과일처럼 단맛을 가진 음식이 지나간 뒤에는 짧은 커피가 기다린다. 이탈리아에서 “un caffè”라고 주문하면 일반적으로 에스프레소가 나온다. 작은 잔에 담긴 진한 커피 한 모금이 식사의 마지막 순서를 이어받게 된다.

이탈리아 정찬에서는 돌체를 충분히 즐긴 뒤 카페의 시간이 시작된다. 디저트가 한 차례를 마치면 짧은 커피가 그 뒤를 이어받는 흐름이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프리모의 파스타가 한 코스를 온전히 담당했듯, 식후의 카페도 한 끼를 마무리하는 독립된 순간을 만들어준다.

카푸치노는 또 다른 시간대와 연결돼 있다. 우유와 거품이 풍성한 카푸치노는 아침의 빵이나 달콤한 페이스트리와 함께 즐겨온 음료다. 점심이나 저녁을 마친 자리에서는 짧은 에스프레소가 식사의 뒤를 잇는다. 카푸치노에는 아침의 시간이, 에스프레소에는 식후의 시간이 쌓여온 것이다. 어떤 음료를 고르는가에서도 하루의 생활 리듬이 드러난다.


커피 뒤에 남는 마지막 잔

조금 더 긴 식사에서는 카페 뒤에 식후주가 이어지기도 한다. 아마로와 그라파, 리몬첼로 등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이탈리아에는 ‘ammazzacaffè’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생겨났다. 직역하면 ‘커피를 죽이는 것’이라는 뜻으로, 커피를 마신 뒤 이어지는 술을 가리키게 됐다.

디제스티보라는 이름도 이 식후의 시간을 보여준다. 식사가 끝난 뒤 작은 술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가는 순간이다. 안티파스토에서 시작한 한 끼는 파스타와 세콘도, 돌체와 카페를 지나 마지막 잔까지 닿게 된다. 음식과 음료가 차례로 자리를 바꾸면서 긴 식사의 시작과 끝을 완성해온 것이다.


차례가 만드는 이탈리아의 식탁

이탈리아 정찬에서는 음식이 코스에 따라 차례로 나온다. 파스타는 안티파스토 뒤에 이어지는 프리모에서 먹고, 빵은 식사 중 필요한 만큼 손으로 떼어 곁들인다. 파스타를 다 먹은 뒤 접시에 남은 소스를 빵으로 훑는 스카르페타는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과의 식사에서 흔히 즐겨온 방식이다. 격식을 갖춘 정찬에서는 접시를 깔끔하게 마무리한 뒤 다음 코스로 넘어가며, 돌체까지 마치면 에스프레소가 식사의 마지막 순서를 이어받는다.

이처럼 이탈리아 정찬의 예절은 음식마다 정해진 순서와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스파게티는 프리모에서 포크로 한입씩 말아 먹고, 빵은 필요한 만큼 손으로 떼어 먹는다. 디저트를 마친 뒤에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며 식사를 마무리해왔다. 파스타와 빵, 커피를 대하는 각각의 행동이 한 끼의 순서 안에서 이어져온 것이다.

안티파스토에서 시작한 식사는 프리모와 세콘도를 거쳐 돌체와 카페까지 이어진다. 그사이 접시는 여러 번 바뀌었고, 음식이 새로 놓일 때마다 함께 앉은 사람들에게는 다음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생겨났다. 파스타와 빵, 커피가 각자의 차례를 지키며 하나의 긴 식사를 완성시켜온 것이다. 이 순서를 알고 이탈리아의 정찬 식탁에 앉는다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뿐 아니라 왜 그 음식이 지금 이 순간에 등장했는지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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