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테이블]<코코> '죽은 이'와 '남은 이'를 잇는 음식들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09-17 15:01:22
추석 차례상을 닮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추모
[Cook&Chef = 조소현 기자]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Coco)>는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Día de Muertos)’을 배경으로 가족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음악을 운명처럼 여기는 12살 소년 ‘미겔’. 하지만 대대로 구두를 만들어온 미겔의 가족에게 음악은 오랜 세월 저주이자 금기였다. 음악가로 성공하겠다며 가족을 떠난 고조할아버지에 대한 원망 때문이었다.
죽은 자의 날, 미겔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우상인 ‘델라 크루즈’의 기타를 슬쩍 빌린(?)다. 기타를 친 순간, 죽은 자들의 세계로 이어지는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산 자와 죽은 자의 도시
제작진은 멕시코 현지를 찾아 박물관과 시장, 광장, 교회, 공동묘지 등을 둘러보며 음식과 음악, 가족문화와 전통을 작품에 담았다. 여기에 고대 아즈텍 도시 테노치티틀란에 대한 상상력을 더해 죽은 자들의 세계를 완성했다.
물에 둘러싸여 있던 테노치티틀란에서 착안해 물 위로 도시가 솟아나는 모습을 구상했고, 그렇게 탄생한 죽은 자들의 도시는 산호가 자라듯 탑들이 층층이 위로 뻗어 올라간다. 새로운 영혼이 계속 찾아오는 세계인 만큼 도시 역시 끝없이 확장되는 구조로 묘사했다고 한다.
멕시코 '죽은 자의 날(Día de Muertos, 디아 데 무에르토스)'
우리에게 추석이 있다면 멕시코에는 '죽은 자의 날'이 있다. 매년 11월 1월과 2일 사이에는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다리가 열리고, 죽은 이의 영혼이 돌아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여긴다.
죽은 자의 날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오프렌다(ofrenda)'라는 제단을 마련한다. 제단의 중심에 고인의 사진이나 초상화를 놓고, 주변을 색색깔의 종이로 만든 '파펠 피카도'로 꾸민다.
오프렌다에 놓인 각각의 요소에는 멕시코 사람들의 사후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영혼이 집으로 오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밝히는 촛불과 주황빛 금잔화(Cempasúchil, 셈파수칠),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고인의 목을 축일 물, 액운을 막는 향 등이 제단을 채운다. 죽음 이후에도 떠난 이와의 관계가 이어진다고 여기는 세계관이 오프렌다에 담겨 있다.
오프렌다에 중요한 것들이 많이 올라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인데, 그 중에서도 '빤 데 무에르토(Pan de muerto)'는 빠지지 않는다. 이름 그대로 ‘죽은 자의 빵’이라는 뜻으로, 밀가루와 달걀, 설탕 등을 넣어 만드는 달콤한 빵이다.
둥근 빵 위에 뼈 모양의 반죽을 얹고 가운데에 작은 공 모양을 올린 형태가 가장 흔하다. 둥근 모양은 삶과 죽음의 순환을, 가운데의 작은 공은 두개골을, 위에 얹은 뼈 모양의 반죽은 죽은 이의 뼈를 상징한다.
'타말(Tamales, 타말레)'도 오프렌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이다. 타말은 옥수수 반죽에 고기나 채소 등의 다양한 속재료를 넣고 옥수수나 바나나 잎으로 감싸 쪄낸 음식이다.
멕시코에는 수백 가지 종류의 타말이 있다. 녹색 토마토 소스에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넣은 것부터 전통 소스인 몰레(Mole)를 넣은 것, 고추와 치즈를 넣은 것, 건포도나 파인애플을 넣은 달콤한 타말까지 다양하다.
타말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은 아니다. 멕시코 전역에서 아침 식사나 간식으로 즐기고, 휴대성이 좋아 도시락처럼 들고 다니면서 먹기도 한다. 세례식이나 결혼식 같은 가족 행사에도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멕시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평생을 먹어온 음식이다.
죽은 자의 날에 강렬한 이미지를 더하는 음식도 있다. '칼라베리타스 데 아수카르(Calaveritas de azúcar)', 즉 '설탕 해골'인데, 설탕으로 만든 해골에 알록달록한 색을 입히고 무늬를 더해 장식한다. 지역에 따라 설탕 대신 초콜릿이나 아마란스(중남미의 곡물) 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설탕 해골은 죽음을 무섭고 어두운 대상으로만 표현하기보다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멕시코의 문화를 보여준다. 이는 오프렌다를 장식하는 동시에,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렇게 오프렌다에 다양한 음식을 정성껏 차려 올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멕시코에서는 죽은 이의 영혼이 죽은 자의 날에 가족을 찾아와 살아 생전처럼 함께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인이 생전에 즐기던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상관 없이 제단에 바친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영혼이 허기와 갈증을 달래고, 음식의 향과 맛을 가족들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죽은 자의 날'과 우리의 '추석'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비슷한듯 다르지만, 온 가족이 모여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고 음식을 나누며 남은 이들의 그리움을 달랜다는 점이 닮아 있다.
음식은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떠난 이를 영원히 살게한다.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