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를 처음 만난다면, 체바피부터
정수연 기자
cnc02@hnf.or.kr | 2026-07-20 15:10:36
[Cook&Chef = 정수연 기자] 월드컵은 낯선 나라의 이름을 한순간 또렷하게 만든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긴 이름도 그랬다. 경기장에서는 유니폼과 깃발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그 이름 뒤에는 사라예보의 골목과 오래된 시장,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며 마주해온 식탁이 있다.
이제 그 이름을 식탁 위로 옮겨볼 차례다. 사라예보 골목에서는 잘게 간 고기가 숯불 위에서 익고, 사람들은 따뜻한 빵과 양파를 곁들여 한 접시를 나눈다. 그 음식이 체바피다. 작고 소박한 고기구이처럼 보이지만, 한입 베어 물면 이 나라가 지나온 시간과 도시의 리듬이 함께 따라온다.
체바피가 먼저 놓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손에 쥐기 좋고, 골목에서 쉽게 만날 수 있으며, 사라예보라는 도시의 이름까지 품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중계 화면 속 국가명이 아직 멀게 느껴졌다면, 체바피는 그 이름을 숯불 냄새와 빵의 온기, 사람들의 식사 장면으로 바꿔주는 첫 접시가 되어준다.
사라예보 골목에서 시작되는 한 접시
사라예보의 오래된 골목에 들어서면 체바피는 먼저 냄새로 다가온다. 숯불 위에서는 손가락 길이의 고기 조각들이 익어가고, 빵은 고기의 열과 기름을 받아 부드러워진다. 접시 한쪽에 놓인 생양파는 묵직한 육향을 가볍게 깨워준다.
이 장면이 사라예보다운 이유는 도시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사라예보는 15세기 오스만 행정 중심지로 성장했고, 그 뒤 여러 시대를 지나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정치·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사라예보식 체바피 제품 규격서 역시 도시의 지리와 역사, 오스만 시기 형성된 도시 기반을 함께 설명한다.
그래서 체바피집은 맛집 목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곳에는 시장의 속도, 숯불 앞의 손놀림, 빵과 고기를 함께 먹는 도시의 식사 방식이 남아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이름은 이 골목을 지나며 지도 위의 정보에서 손에 잡히는 한 끼로 바뀐다.
원통형 고기, 도시의 이름을 달다
사라예보의 일상은 이제 도시 이름을 단 음식으로도 기록됐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식품안전청 자료에 따르면 ‘Sarajevski ćevapi/Sarajevski ćevapčići’는 신선한 다진 쇠고기와 소금으로 만드는 원통형 고기 제품이다. 전통적인 길이는 네 손가락을 모은 정도, 곧 6~10cm로 제시되며, 생산 과정은 사라예보 칸톤 안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 기준은 체바피의 성격을 선명하게 만든다. 사라예보식 체바피는 강한 양념으로 고기를 덮는 음식보다 쇠고기와 소금, 숯불과 빵, 양파의 조합으로 완성되는 도시의 한 끼다. 고기는 작아도 접시의 짜임은 단단했다. 뜨거운 빵이 고기를 감싸고, 양파가 기름진 맛을 정리하며, 카이막이나 요구르트가 곁들여질 때 식사의 결은 한층 부드러워진다.
체바피가 사라예보의 이름을 달게 된 과정에는 골목의 식사 문화도 들어 있다. 제품 규격서는 바슈차르시야 일대에서 체바피 전문점들이 생기고, 여러 가게가 이어지며 사라예보식 체바피가 도시의 대표적인 맛으로 자리 잡은 흐름을 다룬다. 작은 숯불 고기집들이 모여 사라예보의 이름을 가진 음식을 만들어온 셈이다.
축구와의 거리도 멀지 않았다. 같은 자료는 사라예보식 체바피가 스포츠 행사와 축제, 모임과 잔치에서 널리 자리 잡았고, 사라예보의 스포츠 단체와 선수들도 그 확산에 역할을 했다고 기록했다. 경기장 안에서 국기가 팀을 보여줬다면, 경기장 밖의 체바피집은 그 팀을 응원한 사람들이 어디에서 만나고 무엇을 먹었는지 보여줄 수 있겠다.
사라예보를 넘어, 도시마다 달라지는 맛
사라예보의 체바피를 보고 나면, 다른 도시가 지켜온 체바피의 결도 보이기 시작한다. 반자루카식 체바피가 대표적이다. 사라예보식 체바피가 길쭉한 고기 조각을 빵 안에 담아내는 방식으로 알려졌다면, 반자루카식 체바피는 네 줄의 고기가 붙은 판 모양으로 구워진다.
반자루카식 체바피 규격서는 이 음식이 거의 100년 동안 네 개의 체바피가 붙은 판 모양과 레피냐로 인식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전통 조리법에는 마늘과 숙성 시간이 들어가며, 고기 반죽은 낮은 온도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판 모양으로 붙은 구조는 고기 안의 지방을 더 머금게 해 촉촉한 식감을 만든다고도 적혀 있다.
사라예보와 반자루카의 차이를 따라가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여러 도시의 식탁을 가진 나라로 또렷해진다. 사라예보의 체바피에는 구시가지의 시장과 숯불이 있고, 반자루카의 체바피에는 판 모양으로 붙여 굽는 방식과 지역의 자부심이 있다. 한 나라의 대표 음식이 도시마다 다른 모양으로 구워지며, 여행자의 기억도 더 세밀해질 것이다.
숯불 옆의 반죽, 식사 뒤의 커피
체바피 한 접시를 비운 뒤에도 골목은 다른 식사로 이어진다. 숯불 옆에는 반죽이 있고, 식사 뒤에는 커피가 남는다. 체바피가 사라예보 골목의 열기를 보여줬다면, 피타는 보스니아의 집과 빵집으로 시선을 옮겨준다.
얇게 민 반죽에 속을 넣고 말아 굽는 피타는 하루의 여러 식사에 오른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음식 연구는 피타를 전국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으로 다루며, 속재료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고기와 양파를 넣으면 부레크, 치즈와 크림을 넣으면 시르니차, 시금치를 넣으면 젤랴니차, 감자를 넣으면 크롬피루샤가 된다. 이름을 나누는 방식 안에도 재료를 기억하고 식탁을 구분하는 감각이 남아 있는 셈이다.
식사 뒤에는 커피가 온다. 진하게 내린 커피 앞에 조금 더 앉아 있으면, 빠르게 굽고 먹는 숯불 음식의 속도도 잠시 늦춰진다. 체바피가 골목을 걷게 만든다면, 피타는 빵집 앞에 멈추게 하고, 커피는 그 도시의 시간을 조금 더 오래 붙잡아준다.
거리에서 굽고, 집에서 끓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식탁은 골목의 숯불에서 집의 냄비로도 옮겨간다. 보산스키 로나츠, 곧 ‘보스니아 냄비’라 불리는 음식은 고기와 채소를 층층이 담아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익히는 전통 스튜다. 관련 음식 연구는 이 요리에 쇠고기·돼지고기·양고기나 어린 염소고기, 양배추와 감자, 양파와 마늘, 당근과 토마토, 향신료가 쓰인다고 설명한다.
이 냄비는 체바피와 다른 속도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보여준다. 체바피가 도시의 숯불과 빠른 식사의 리듬을 품었다면, 보산스키 로나츠는 집과 계절, 저장해둔 재료와 긴 조리시간을 품고 있었다. 고기와 채소는 한 냄비 안에서 천천히 익고, 마지막에는 가족이 나눌 묵직한 식사가 된다.
거리에서는 굽고, 집에서는 끓이고, 식사 뒤에는 커피로 머문다. 이 리듬이 보스니아의 식탁을 만든다. 사라예보의 체바피, 반자루카의 체바피, 빵집의 피타, 집 안의 보산스키 로나츠는 서로 다른 속도로 이 나라의 시간을 보여주게 된다.
낯선 이름이 한 접시의 온기가 될 때
월드컵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이름을 우리 앞에 불러냈다. 이제 그 이름을 식탁 위로 옮겨볼 차례다. 사라예보 골목에서는 체바피가 숯불 위에서 익고, 사람들은 따뜻한 빵과 양파를 곁들여 한 접시를 나눈다. 그 뒤에는 피타와 커피의 시간이 이어진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중계 화면 속 팀 이름에서 사람들이 먹고 만나고 하루를 보내는 나라로 바뀐다. 체바피 한 접시는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만들어주는 음식일 것이다. 작고 소박한 고기 조각 안에 도시의 골목, 오스만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흔적, 지역별 자부심, 경기를 보고 난 뒤 함께 앉는 식사의 시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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