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요리가 된 종이 한 장, 파피요트
정수연 기자
cnc02@hnf.or.kr | 2026-09-22 15:01:00
[Cook&Chef = 정수연 기자]생선과 채소, 허브를 종이 위에 올리고 가장자리를 촘촘히 접는다. 오븐에 들어간 종이는 안에서 생긴 증기를 머금으며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식탁에 오른 봉투를 열면 그동안 안에 모여 있던 향이 한꺼번에 퍼진다. 프랑스 요리에서 ‘앙 파피요트’라 부르는 조리법이다.
오늘날에는 흰살생선과 채소를 종이호일에 감싸 익히는 모습이 익숙하지만, 파피요트의 기록은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송아지와 토끼 같은 육류도 종이에 감쌌고, 버터와 햄, 버섯과 소스를 함께 넣어 풍미를 집중시키는 데 이 방식을 활용했다.
몇 세기를 지나면서 종이 안에 들어가는 음식도, 종이를 다루는 방법도 달라졌다. 18세기 요리사가 직접 종이에 기름을 먹였다면 오늘날에는 내열성과 내유성을 갖춘 종이호일을 바로 사용한다. 파피요트를 따라가면 프랑스 요리의 변화와 종이라는 일상적인 물건의 기술사가 한 식탁에서 함께 움직여온 과정이 보인다.
파피요트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현재 확인되는 파피요트의 가장 이른 요리 기록은 1735년 프랑스 요리사 뱅상 라 샤펠의 조리서에 남아 있다. 그는 송아지 커틀릿을 종이에 감싸 익히는 방식을 소개했으며, 이 기록을 통해 파피요트라는 말이 18세기 초 이미 하나의 조리법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종이에 감싼 요리에 왜 ‘파피요트’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이 단어는 요리보다 먼저 프랑스 일상어에서 쓰이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기록 가운데 하나인 1408년에는 금이나 은으로 만든 작고 반짝이는 장식을 뜻했고, 나비를 뜻하는 프랑스어 ‘파피용’과 연결된다. 17세기에는 머리 모양을 잡을 때 사용하는 작은 종이 조각도 파피요트라고 불렀다. 작고 얇은 종이를 가리키던 표현이 18세기에 들어 종이에 감싼 음식에도 쓰이기 시작했다.
라 샤펠이 활동하던 환경도 파피요트의 이후 역사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그는 유럽 귀족가에서 일한 전문 요리사였고, 그의 조리서는 상류층의 식탁을 위한 조리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었다. 이후 토끼와 가금류, 생선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되면서 파피요트는 여러 식재료를 다루는 조리기술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 주방에서 하나의 기술이 되기까지
오늘날 파피요트를 프랑스 조리법으로 기억하게 만든 중요한 과정은 전문 요리사들이 이 방식을 이름 붙이고 기록하며 하나의 기술로 발전시킨 데 있다.
17~18세기 프랑스의 궁정과 귀족 사회에서는 전문 요리사의 역할이 커졌고, 조리법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들도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소스를 만드는 법부터 재료의 손질, 불의 사용, 완성된 음식의 형태까지 세분화됐고, 이런 기술은 프랑스어 이름과 함께 유럽의 상류층 식탁으로 퍼졌다.
파피요트 역시 이 흐름 속에서 사용 범위를 넓혔다. 1735년에는 송아지 커틀릿이 기록됐고, 1767년 프랑스 조리사전에서는 토끼 파피요트가 확인된다. 19세기에 이르면 송아지와 가금류, 생선까지 다양한 재료가 종이 안에 들어갔다.
음식 자체보다 더 눈여겨볼 것은 종이가 맡았던 역할이다. 종이는 재료와 소스, 향신 재료를 한데 감싸고 열과 수분을 다루는 조리도구로 사용됐다. 그리고 이 종이를 준비하는 일 역시 당시에는 요리사의 손기술에 포함됐다.
요리사의 손기술에서 종이 기술로
18세기 조리서에서는 요리사가 종이에 직접 기름이나 버터를 발라 사용했다. 재료를 감싼 종이는 약한 불 위에서 음식과 소스를 한 공간에 모아두고, 직접적인 열을 완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조리를 마친 뒤에는 종이째 식탁에 올리기도 했다.
19세기 중반에는 종이 자체에도 변화가 생긴다. 1846년 프랑스에서는 종이를 처리해 질기고 수분에 강한 식물성 양피지를 만드는 연구가 발표됐고, 이후 관련 기술이 산업생산으로 이어졌다.
이 변화는 주방의 풍경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전에는 요리사가 종이에 직접 지방을 먹이며 조리에 알맞은 상태를 만들었다면, 이후에는 종이 자체가 수분과 지방을 견디는 성질을 갖추기 시작했다. 오늘날 사용하는 종이호일은 이런 물질기술의 발전이 주방 안으로 들어온 결과다.
파피요트의 조리 원리는 이어졌지만, 그 원리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손기술과 도구는 시대와 함께 달라졌다. 같은 시기 프랑스 요리사들은 종이 안에 무엇을 넣고 어떻게 감쌀 것인지도 한층 세밀하게 다듬고 있었다.
19세기, 파피요트의 조리법도 달라졌다
19세기로 들어가면 파피요트에 사용하는 재료와 종이를 다루는 방법이 한층 세밀해진다.
마리 앙투안 카렘을 비롯한 당시 요리사들은 송아지와 가금류, 생선에 파피요트를 활용했다. 종이 안에는 버터와 햄, 버섯과 트러플, 진한 소스까지 함께 들어갔다. 종이는 여러 풍미를 좁은 공간에 모아 완성하는 도구였다.
포장 방식도 달라졌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하트 모양으로 자르고, 재료를 올린 뒤 가장자리를 촘촘하게 접는 방법이 조리서에 등장한다. 종이 한 장으로 한 사람 몫의 작은 조리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다.
20세기 초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요리 안내서』에 이르면 파피요트는 여러 재료에 적용할 수 있는 조리법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기록된다. 그의 송아지 커틀릿 파피요트에서는 고기를 먼저 버터에 익힌 뒤 햄과 버섯 등을 다져 만든 뒤셀, 소스와 함께 종이 안에 넣는다. 가장자리를 단단히 접은 다음 오븐에서 종이 봉투를 부풀린다.
1903년 에스코피에의 조리서에는 이처럼 파피요트를 부풀리는 과정이 완성 단계의 하나로 적혀 있다. 오늘날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볼록한 종이 봉투의 모습이 이미 20세기 초 프랑스의 식탁에 존재했던 것이다.
송아지에서 시작한 방식은 닭과 비둘기, 숭어와 고등어, 청어와 송어까지 이어졌다. 종이는 여러 식재료를 같은 원리로 다룰 수 있는 작은 조리 공간이 됐다.
그리고 파피요트의 묘미는 그 공간을 식탁에서 직접 여는 순간에 완성된다.
종이를 여는 순간까지 요리다
밀폐된 종이 안에서는 재료가 가진 수분과 와인, 육수, 레몬즙 같은 액체가 증기로 변한다. 그 증기가 내부에 머물며 음식에 열을 전달하고, 허브와 버섯, 버터와 향신료에서 나온 향도 함께 모인다.
19세기 미식가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은 향이 섬세한 메추라기를 파피요트로 조리하는 방식을 높이 평가했다. 당시에도 종이 안에 향을 머물게 하는 파피요트의 특징이 미식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완성된 파피요트는 봉투째 식탁에 오른다. 손님이 종이를 열면 안에 모였던 뜨거운 수증기와 향이 한꺼번에 퍼진다. 눈앞에서 종이가 열리고 음식이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 자체가 식사의 한 장면이 된다.
종이는 조리도구와 포장의 역할을 함께 맡으며, 마지막에는 기대감을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파피요트는 조리와 서비스가 하나의 종이 안에서 이어지는 음식인 것이다.
풍성한 고급요리에서 가벼운 생선요리로
오늘날 파피요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생선과 얇게 썬 채소, 허브와 레몬을 함께 넣은 가벼운 요리다. 고전 프랑스 요리의 파피요트는 훨씬 풍성했다.
버터에 익힌 송아지고기에 햄을 올리고, 버섯과 허브로 만든 뒤셀을 더했다. 트러플과 진한 소스도 즐겨 사용됐다. 당시의 파피요트가 여러 풍미를 종이 안에 집중시키는 기술이었다면, 20세기 후반에는 같은 방법이 다른 방향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누벨 퀴진은 신선한 재료와 짧고 섬세한 조리, 가벼운 소스와 재료 본연의 맛을 중요하게 여겼다. 증기와 수분을 활용해 재료를 부드럽게 익히는 파피요트는 이런 변화와 잘 어울렸다.
미셸 게라르가 발전시킨 ‘퀴진 맹쇠르’에도 딜과 레몬을 곁들인 송어 파피요트가 등장한다. 종이 안에 여러 소스와 재료를 겹쳐 넣던 고전 요리에서 생선과 허브의 섬세한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중심이 옮겨간 모습이다.
생선은 짧은 시간 안에 익고 수분 손실에 민감해 파피요트와 특히 잘 어울렸다. 종이 안의 증기는 살을 부드럽게 익히고, 함께 넣은 허브와 채소의 향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같은 조리기술을 두고 시대가 원하는 맛이 달라졌다. 파피요트는 프랑스 요리의 취향이 변화하는 과정까지 한 장의 종이 안에 담아왔다.
프랑스 밖에서 얻은 새로운 모습
프랑스에서 다듬어진 파피요트는 다른 지역의 식재료와 만나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8세기 말 프랑스의 파피요트와 연결된 표현이 요리 언어로 들어왔고, 이후 ‘알 카르토초’라는 이름이 자리했다. 지금도 생선과 고기, 파스타 등을 종이나 포일에 싸서 익히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미국 뉴올리언스에서는 프랑스 요리기술과 크리올 식문화가 만나 ‘폼파노 앙 파피요트’가 만들어졌다. 멕시코만에서 잡히는 폼파노 생선을 소스와 함께 종이에 싸서 익히는 음식으로, 프랑스의 조리법이 현지의 재료와 만나 지역 요리로 자리한 사례다.
현재 파피요트는 프랑스 전문 요리학교에서도 기본적인 조리기술 가운데 하나로 다뤄진다. 생선과 육류, 채소와 과일까지 활용 범위가 넓어졌고, 종이호일과 알루미늄박, 실리콘 용기 등 조리도구도 다양해졌다.
18세기 전문 요리사의 주방에서 다듬어진 기술은 이제 세계 여러 지역의 전문 주방과 가정에서 각자의 재료를 담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종이 한 장이 보여주는 음식의 역사
파피요트의 역사를 따라가면 음식의 모습이 식재료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보인다. 요리사가 열과 향을 다루는 방법,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의 성질, 사람들이 좋은 맛이라고 여기는 기준까지 함께 움직이며 하나의 음식문화를 만든다.
18세기의 요리사는 종이에 직접 기름을 먹여 고기와 소스를 감쌌다. 19세기에는 종이 기술이 발전했고, 프랑스 요리사들은 파피요트를 다양한 재료와 식탁에 맞게 발전시켰다. 20세기 후반에는 생선과 채소의 섬세한 맛을 살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역할을 얻었다.
오늘날 우리가 종이호일 한 장을 접어 생선을 감싸는 짧은 과정에는 그렇게 몇 세기에 걸쳐 축적된 요리사의 손기술과 종이 제조기술, 프랑스 사람들이 맛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가 함께 들어 있다. 파피요트는 평범한 종이 한 장도 음식의 역사에 깊이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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