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음식을 뜻하는 한자 ‘膳’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3-12 23:30:22

궁중의 식탁에서 일상 식탁까지, ‘선(膳)’이라는 글자가 품은 음식의 역사 [사진 = 月 (달 월) + 善(착한 선)  → 膳 (음식 선) ]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동아시아 음식 문화에서 ‘음식’을 뜻하는 한자는 하나가 아니다. ‘식(食)’은 먹는 행위를 의미하고, ‘찬(饌)’은 음식과 반찬을 뜻하며, ‘선(膳)’은 차려 올린 음식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선(膳)’이라는 글자는 특히 궁중과 의례의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문자다. 한국의 궁중 기록과 중국의 고전 문헌, 일본의 음식 문화 용어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글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상에 차려 올린 정식 식사’를 의미한다.

한자 한 글자의 구조를 살펴보면 동아시아 사람들이 음식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에 대한 문화적 맥락이 드러난다. ‘膳’이라는 글자 역시 문자 구조와 사용 맥락을 함께 살펴볼 때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해진다.

먼저 ‘膳’의 문자 구조를 보면 이 글자는 형성자(形聲字)에 속한다. 형성자는 의미를 나타내는 부분과 발음을 나타내는 부분이 결합해 만들어진 한자 유형을 말한다. ‘膳’은 왼쪽의 ‘月’과 오른쪽의 ‘善’이 결합해 만들어졌다.

이때 왼쪽의 ‘月’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달(月)의 의미가 아니라 ‘육달월’이라고 불리는 부수다. 이 부수는 본래 ‘肉(고기 육)’에서 변형된 형태로, 고기나 몸, 음식과 관련된 의미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한자에서 인체 기관이나 육류와 관련된 글자들이 ‘月’ 부수를 사용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어 ‘肝(간)’, ‘腸(장)’, ‘脈(맥)’ 같은 글자 역시 육달월 부수를 사용한다. 따라서 ‘膳’에서 ‘月’은 음식과 관련된 의미를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오른쪽에 있는 ‘善’은 의미가 아니라 발음을 나타내는 요소다. 즉 이 글자는 ‘肉(음식 관련 의미)’과 ‘善(발음)’이 결합해 만들어진 문자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膳’은 ‘착할 선’이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글자가 아니라, 음식과 관련된 개념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선(shàn)’이라는 발음을 갖도록 설계된 문자라고 이해해야 한다.

이 글자가 의미하는 ‘음식’의 범위는 일반적인 먹거리보다 좁다. 고대 문헌에서 ‘膳’은 단순한 식재료나 요리를 뜻하지 않는다. 대신 상에 차려 올린 음식, 즉 정식으로 준비된 식사를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는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 이미 확인된다.

대표적인 예가 『주례(周禮)』와 『예기(禮記)』다. 『주례』는 주나라의 관직 체계와 국가 제도를 기록한 문헌이며, 『예기』는 의례와 예법을 설명하는 고전이다. 이 문헌들에서 ‘膳’은 궁중이나 의례에서 사용되는 음식과 관련된 용어로 등장한다. 왕에게 음식을 올리는 행위나 궁중의 식사 체계를 설명할 때 이 글자가 사용된다.

고대 중국에서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禮)와 정치 질서의 일부였다. 왕에게 음식을 올리는 행위 자체가 국가의 질서를 상징하는 의식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膳’은 조리된 음식 자체보다 ‘차려 올리는 음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글자는 다양한 합성어에서도 확인된다. ‘膳食’은 식사나 식단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고, ‘進膳’은 임금에게 음식을 올리는 행위를 뜻했다. ‘御膳’은 왕이 먹는 식사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궁중 기록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膳’은 음식 가운데에서도 특히 의례적이고 공식적인 식사를 가리키는 글자였다.

한국에서도 이 글자는 궁중 기록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조선 왕실의 연회와 의식을 기록한 『진연의궤』와 『진찬의궤』 같은 문헌을 보면 ‘진선(進膳)’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왕에게 음식을 올리는 절차를 의미하는 말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음식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의례와 정치 질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음식이 상에 올라가는 과정 자체가 엄격한 절차로 관리되었다.

궁중에서는 음식의 종류뿐 아니라 음식이 상에 올라가는 순서와 방식, 그리고 이를 담당하는 관직 체계까지 세밀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膳’이라는 글자는 궁중 의례 속에서 정식으로 차려진 음식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 글자는 중국과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일본에서는 ‘御膳(ごぜん)’이라는 표현이 오늘날에도 일상적인 음식 용어로 남아 있다. ‘텐푸라 고젠’, ‘사시미 고젠’처럼 여러 가지 음식을 한 상에 차려 제공하는 정식 메뉴를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은 일본 음식점의 메뉴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현대에도 ‘膳食’이라는 단어가 식사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특히 영양학 분야에서는 ‘营养膳食’이라는 표현이 영양 식단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병원이나 건강 관련 문헌에서도 이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膳’이라는 글자는 동아시아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면서도 각 지역의 식문화 속에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 글자가 의미하는 음식은 단순한 조리 결과물이 아니라 상에 차려진 식사라는 점이다.

동아시아의 음식 문헌을 읽다 보면 음식과 관련된 여러 글자가 등장한다. ‘食’은 먹는 행위나 음식 자체를 의미하고, ‘烹’은 조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반면 ‘膳’은 조리 과정이 아니라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의미한다. 즉 ‘요리된 음식’이라기보다 ‘상차림으로 완성된 식사’에 가까운 개념이다.

이러한 차이는 동아시아 식문화에서 음식이 단순한 조리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의례 속에서 의미를 갖는 대상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왕에게 음식을 올리는 행위, 제사에서 음식을 차리는 절차, 연회에서 상차림의 순서를 정하는 방식까지 모두 ‘膳’이라는 문자 속에 담긴 개념과 연결된다.

결국 ‘膳’이라는 글자는 단순히 음식의 이름을 뜻하는 한자가 아니라 동아시아 식문화의 구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자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자가 사용된 문헌과 맥락을 살펴보면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예법과 질서 속에서 차려지는 문화적 행위였다.

궁중 의례에서 시작된 이 글자는 오늘날에도 중국과 일본의 식문화 용어 속에서 살아 있으며, 한국의 궁중 음식 기록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 글자 속에 담긴 이러한 의미의 층위는 음식 문화가 단순한 조리의 기술을 넘어 사회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문화 체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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