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왕의 식사는 왜 ‘수라’라고 불렸을까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3-12 23:31:01

조선 왕실의 식사 체계와 12첩 반상으로 읽는 궁중 식문화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수라상]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조선 왕실의 식탁을 이야기할 때 가장 널리 알려진 표현은 ‘수라상’이다. 오늘날 이 말은 화려하고 풍성한 궁중 음식 상차림을 의미하는 말로 널리 사용된다. 그러나 역사적 문헌과 궁중 기록을 살펴보면 ‘수라’라는 단어는 단순히 왕이 먹는 밥상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라 조선 왕실의 식사 체계와 궁중 의례 속에서 형성된 중요한 개념이었다.

수라라는 말은 조선 왕실에서 왕에게 올리는 식사를 의미하는 궁중 용어였다. 조선 왕실의 의례와 일상을 기록한 문헌에서는 왕에게 음식을 올리는 행위를 ‘진수라(進水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식사를 준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왕의 일상 의례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었다. 왕의 식사는 개인적인 식사가 아니라 국가의 상징적인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에 음식의 준비와 상차림, 전달까지 모두 궁중의 규범 속에서 이루어졌다.

수라는 하루에 두 번 왕에게 올려졌다. 이를 각각 ‘조수라(朝水剌)’와 ‘석수라(夕水剌)’라고 불렀다. 조수라는 아침 식사, 석수라는 저녁 식사를 의미한다. 왕의 하루 일과 속에서 이 두 번의 식사는 일정한 시간에 맞추어 준비되었으며, 상차림 역시 일정한 형식을 따랐다. 이러한 구조는 조선 왕실에서 음식이 단순한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궁중 질서와 의례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왕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궁중의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 담당한 기관이 바로 사옹원(司饔院)이다. 사옹원은 왕과 왕실 가족의 식사를 관리하는 관청으로, 식재료의 조달과 보관, 음식의 조리, 상차림에 이르기까지 궁중 음식 전반을 담당했다. 궁중 음식은 단순히 조리 기술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식재료의 관리, 조리 과정, 상차림의 질서까지 모두 포함하는 하나의 체계였다.

궁중의 수라상은 일반적인 식사와는 다른 구조를 갖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밥과 국을 중심으로 여러 종류의 반찬이 함께 올라갔다. 밥은 ‘수라’라고 불렸고 국은 ‘탕’으로 불렸다. 여기에 찜, 조림, 전, 구이, 전골, 장류, 김치 등 다양한 조리법의 음식들이 함께 제공되었다. 궁중에서는 음식의 종류뿐 아니라 음식이 상에 올라가는 순서와 배열 역시 중요하게 여겨졌다.

수라상은 하나의 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궁중 기록에 따르면 왕의 식사 자리에는 보통 두 개의 상이 함께 놓였다. 밥과 국이 놓인 상을 중심으로 반찬이 놓인 상이 함께 배치되었으며, 이를 대원반과 소원반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구조는 궁중 상차림에서 음식의 배열과 질서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선 시대 상차림 체계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반상’이다. 반상은 밥과 국을 중심으로 반찬이 몇 가지 올라가는지를 기준으로 구분된다. 조선 시대에는 반찬의 수에 따라 3첩 반상, 5첩 반상, 7첩 반상, 9첩 반상, 12첩 반상 등으로 상차림의 격이 나뉘었다. 여기서 ‘첩’은 반찬의 수를 의미하는 단위다. 즉 밥과 국을 제외하고 몇 가지 반찬이 올라가는지를 나타낸다.

이 가운데 12첩 반상은 가장 격이 높은 상차림으로 알려져 있으며 왕의 식사와 관련된 상차림 체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 궁중 음식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12첩 수라상’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상차림 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만 실제 궁중 기록을 살펴보면 왕의 식사 구성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며 항상 일정한 수의 반찬으로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궁중의 상차림은 계절과 재료의 상황, 궁중 행사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조선 시대 음식 문헌을 살펴보면 궁중 상차림과 관련된 다양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음식 문헌인 『규합총서』나 『시의전서』 같은 문헌에서는 반상 차림의 구조와 음식의 종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문헌들은 궁중 음식이 단순한 조리 기술이 아니라 상차림의 질서와 식사 문화 전체를 포함하는 체계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임원경제지』의 「정조지」에는 음식과 식사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등장하는데, 이 문헌에서도 식사의 구성과 상차림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은 조선 시대 음식 문화가 단순한 조리법 중심의 문화가 아니라 식사의 구조와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였음을 보여준다.

궁중의 수라상에는 다양한 조리법의 음식이 함께 올라갔다. 찜과 조림, 전과 구이, 장류와 김치 등 서로 다른 조리 방식의 음식들이 균형 있게 배치되었다. 이는 궁중 음식이 단순히 많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조리 방식과 맛의 균형까지 고려한 상차림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수라상에는 계절에 따라 식재료가 달라지기도 했다. 봄에는 봄나물과 제철 채소가 올라가고 여름에는 담백한 음식과 채소 중심의 음식이 많았으며 겨울에는 저장 식품과 장류를 활용한 음식이 함께 올라갔다. 이러한 구성은 궁중 음식이 계절성과 식재료의 특성을 고려한 식문화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수라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 중요한 점은 이것이 단순한 음식 이름이 아니라 궁중 식사 체계를 의미하는 용어라는 점이다. 왕에게 음식을 올리는 행위는 궁중의 일상 의례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를 준비하는 조직과 절차 역시 체계적으로 운영되었다. 사옹원을 중심으로 궁중의 수많은 인력들이 왕의 식사를 준비했고 음식의 조리와 전달, 상차림까지 모두 규범에 따라 이루어졌다.

오늘날 ‘수라상’이라는 표현은 화려한 궁중 음식 상차림을 의미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수라는 단순히 많은 음식이 올라간 밥상이 아니라 조선 왕실의 식사 제도와 궁중 조직, 그리고 의례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문화 체계였다.

왕의 식사는 개인적인 식사가 아니라 국가의 질서와 궁중의 규범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그리고 그 식탁 위에는 밥과 국, 그리고 여러 반찬이 함께 차려진 반상 체계가 놓여 있었다. 이러한 구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12첩 반상이다.

밥과 국을 중심으로 열두 가지 반찬이 함께 차려지는 이 상차림은 조선 시대 상차림 체계 가운데 가장 높은 격식을 갖춘 형태로 알려져 있으며 궁중 식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이해된다. 결국 수라상은 단순히 왕의 식탁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조선 왕실의 식사 문화와 상차림 질서를 함께 담고 있는 상징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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