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꽁치가 나오면 안마사가 짐을 싼다"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 2026-09-17 15:02:51

가을 바다의 보약 ‘산마(秋刀魚)’ ... 쌉싸름한 내장까지 음미

[Cook&Chef = 이승우 기자]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더위에 입맛과 기력을 모조리 빼앗기는 일본의 여름병, ‘나츠바테(夏バテ)’.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일본인들은 이 지독한 무기력증을 털어내기 위해 식탁 위의 오랜 구원투수를 찾는다. 바로 가을 바다의 보약이라 불리는 꽁치, ‘산마(秋刀魚)’다.

일본에는 예로부터 “꽁치가 나오면 안마사가 쏙 들어간다(秋刀魚が出ると按摩が引っ込む)”는 흥미로운 속담이 전해진다. 가을을 맞아 오호츠크해의 찬 바다를 타고 내려오며 기름기를 두둑하게 채운 꽁치는 영양분이 풍부해, 이것만 잘 챙겨 먹어도 피로가 씻은 듯 가시고 잔병치레가 없어져 동네 안마사들의 일거리가 끊긴다는 뜻이다. 나츠바테로 축 처졌던 몸을 깨우는 데 이만한 계절 보양식이 없는 셈이다.

최동단 항구부터 도쿄 도심까지… 열도를 덮은 은빛 축제

이 꽁치가 가장 먼저 당도하는 곳은 일본 최동단, 홋카이도의 항구도시 네무로(根室)다. 전국 꽁치 어획량의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는 네무로는 가을이 시작되면 도시 전체가 꽁치 굽는 연기로 자욱해진다. 매년 9월 열리는 ‘네무로 꽁치 축제’에서는 갓 잡아 올린 은빛 꽁치를 부둣가 숯불 위에서 끝없이 구워내며 가을의 도래를 자축한다. 네무로를 지나 남하한 꽁치는 이와테현의 오후나토(大船渡)와 미야기현의 게센누마(気仙沼) 같은 도호쿠 산리쿠(三陸) 연안의 유서 깊은 어항에 닿으며 맛의 정점을 찍는다.

바닷가가 아닌 도쿄 한복판에서도 꽁치는 가을의 상징이다. 고전 만담(라쿠고)인 ‘메구로의 꽁치(目黒のさんま)’에서 유래한 ‘메구로 꽁치 축제’는 매년 수많은 인파로 장관을 이룬다. 산지에서 직송된 수천 마리의 꽁치를 와카야마산 비장탄에 구워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는데, 빌딩 숲 사이에 피어오르는 생선 굽는 연기는 도쿄인들에게 가을이 완연해졌음을 알리는 가장 감각적인 풍경이다.

쌉싸름한 내장까지 통째로… ‘어른의 미각’을 완성하는 굽기 비법

꽁치를 즐기는 방식은 소박하지만 확고하다. 굵은소금을 뿌려 직화로 구워내는 ‘시오야키(소금구이)’가 정석이다. 한국과 달리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머리부터 통째로 굽는데, 일본인들은 이 꽁치 내장(와타) 특유의 쌉싸름한 맛을 가을의 묘미이자 성숙한 미각의 증표로 여긴다.

기름이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은빛 껍질 위에 갈아낸 무즙(다이콘오로시)을 얹고 초록빛 영귤(스다치) 즙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묵직한 지방의 고소함과 상큼함, 쌉싸름한 내장의 풍미가 어우러져 완벽한 미식의 균형을 이룬다.

100엔의 밥도둑에서 ‘고급어(高級魚)’로… 그럼에도 젓가락을 드는 이유

과거 꽁치는 마리당 100엔 남짓이면 동네 슈퍼마켓에서 가볍게 장바구니에 담던 서민들의 든든한 밥도둑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해수온 상승과 어장 변화로 연안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마리당 가격이 수백 엔에서 천 엔 가까이 치솟았다. 연일 치솟는 물가에 일본 현지 언론들조차 “서민의 생선이 하루아침에 고급어(高級魚)가 되어버렸다”며 한탄할 정도다.

만만한 반찬에서 이제는 지갑을 열 때 한 번쯤 망설이게 되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일본인들은 여전히 골목길 이자카야를 채우는 꽁치 굽는 냄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뼛속까지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은빛 껍질을 젓가락으로 가르는 순간, 100년 전 안마사를 짐 싸게 만들었던 가을 바다의 든든한 보약 한 첩이 온몸 깊숙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Cook&Chef / 이승우 기자 dhfcoddl07@na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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