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속에 뜨거운 온천...일본식 이열치열(以熱治熱)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 2026-08-06 15:00:59

노천에서 후지산을 바라보며 즐기는 아코네 당일치기 관광
농사로 바닥난 체력을 씻어내는 '여름 탕치(夏湯治)'의 전통

[Cook&Chef = 이승우 기자] "이 푹푹 찌는 끈적한 여름에 무슨 온천이야?" 대학교 일본인 동기가 부모님께 받았다며 하코네(箱根) 당일치기(히가에리·日帰り) 온천 티켓 두 장을 내밀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쏟아지는 일본 특유의 습한 무더위, '무시아쓰이(蒸し暑い)' 속에서 펄펄 끓는 온천이라니. 친구의 제안이 영 미덥지 않았지만, 막상 도착한 아시노코 호숫가의 고풍스러운 온천장 '류구덴 본관(龍宮殿本館)'에 들어선 순간 그 섣부른 의심은 완벽한 감탄으로 바뀌었다.

 아시노코 호숫가의 고풍스러운 온천장 '류구덴 본관(龍宮殿本館)'  사진 = 이승우 기자

텅 빈 온천에서 후지산과 맑은 여름 하늘을 독점하는 호사

하코네의 여름 온천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역설적이게도 '여름'이라는 계절 그 자체였다. 흔히 온천은 겨울에 가야 제맛이라는 대중적 인식 덕분에, 한여름의 류구덴은 평소라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인파가 적었다. 붐비지 않는 넓고 쾌적한 남탕 대욕장에 들어서자,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통유리 너머로 웅장한 후지산과 잔잔한 호수가 한 폭의 그림처럼 꽉 차게 펼쳐졌다. 호사스러웠다.

뜨거운 온천수에 끈적한 땀을 흘려보내며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면,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소박한 테두리를 두른 야외 노천탕(로텐부로)이 나타난다. 탕에 몸을 담그고 서늘한 산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들자, 티 없이 맑고 청량한 여름 하늘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여름날의 쾌청함을 온전히 독점하며 느끼는 이 카타르시스. 우리나라의 '이열치열(以熱治熱)'은 틀린 이야기가 아니였음을 몸소 깨닫는 순간이였다.

뜨거운 온천수에 끈적한 땀을 흘려보내며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면,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소박한 테두리를 두른 야외 노천탕(로텐부로)이 나타난다.   사진 = 이승우 기자

고단함을 열기로 씻어내는 지혜, '여름 탕치(夏湯治)'의 역사

사실 여름에 뜨거운 온천을 찾는 것은 일본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지혜로운 전통이다. 일본에는 예로부터 '여름 탕치(夏湯治·나츠 토지)'라는 문화가 있다. 과거 농민들이 고된 여름 농사와 더위로 바닥난 체력, 즉 '나쓰바테(여름 타기)'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러 한여름에 온천을 찾았던 풍습이다.

덥고 습한 날씨에 끈적해진 몸을 뜨거운 온천수에 담가 모공을 활짝 열어 노폐물을 배출하고, 탕에서 나와 서늘한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체온을 식히는 과정. 이는 우리나라의 '이열치열(以熱治熱)'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는 과학적이고도 본능적인 치유법이다. 통유리 너머로 후지산을 바라보며 땀을 흘리는 류구덴의 노천탕은,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이 지혜로운 피서법이 얼마나 훌륭한지 온몸으로 증명해 주고 있었다.

일본에는 예로부터 '여름 탕치(夏湯治·나츠 토지)'라는 문화가 있다. 과거 농민들이 고된 여름 농사와 더위로 바닥난 체력, 즉 '나쓰바테(여름 타기)'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러 한여름에 온천을 찾았던 풍습이다.  사진 = 류구덴 본관

차가운 '병 우유' 한 모금, 그리고 상쾌해진 귀갓길

숙박 부담 없이 가볍게 나선 당일치기 온천 여행의 완벽한 마무리는 탕을 나선 직후에 완성된다. 땀을 쏙 빼고 가벼워진 몸으로 탈의실을 나서면, 일본 온천의 절대적인 '국룰'인 자판기 속 차가운 병 우유(ビン牛乳)가 기다리고 있다. 허리에 손을 얹고 갓 뽑아낸 메이지(Meiji) 유리병 우유를 단숨에 들이켜는 순간, 뜨겁게 달아올랐던 속으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달콤함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찌릿한 미식의 쾌감을 선사한다.

해 질 녘, 끈적했던 여름의 불쾌지수를 하코네의 맑은 물에 모두 씻어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몸에는 온천 후 특유의 기분 좋은 나른함이 감돌지만, 발걸음만큼은 깃털처럼 가볍고 상쾌하다. 전철 밖으로 붉게 물드는 하코네의 숲을 바라보며, 동기에게 "내년 여름 티켓도 부모님께 잘 부탁드린다고 전해달라"며 기분 좋은 너스레를 떨었다.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날아갈 듯 가볍게 리셋하고 싶다면, 이열치열의 마음가짐으로 일본의 숲속 노천탕으로 향해보자.

Cook&Chef /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땀을 쏙 빼고 가벼워진 몸으로 탈의실을 나서면, 일본 온천의 절대적인 '국룰'인 자판기 속 차가운 병 우유(ビン牛乳)가 기다리고 있다.  사진 = 이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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