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균의 ‘역사 속 음식이야기’] (4) 가수저라를 아시나요?
염상균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08-19 15:05:14
300년전 동서양의 음식 문화가 만나는 맛의 신세계
[Cook&Chef = 염상균 칼럼니스트] “입에 넣자마자 녹아 없어졌는데, 맛은 부드럽고 달콤하여 참으로 기이하였다.”
1720년 중국연행에 참여한 이기지(李器之, 1690~1722)는 북경 천주당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의 접대를 받으며 포도주와 함께 가수저라(加須底羅)를 맛보았다. 그는 처음 경험한 이 과자의 맛과 제조법을 생생하게 기록해 조선에 새로운 음식의 존재를 알렸다. 그로부터 약 70년 뒤,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청령국지(蜻蛉國志)』 「물산」 편에 가수저라 만드는 법을 자세히 적었다.
“깨끗한 밀가루 한 되에 백설탕 두 근을 넣고 달걀 여덟 개로 반죽한다. 구리 냄비에 담아 숯불로 노랗게 익힌 뒤 대나무 꼬치로 구멍을 내어 불기운이 속까지 스며들게 한다. 꺼내어 잘라 먹는데 이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이쯤 되면 가수저라가 무엇인지 짐작할 것이다. 바로 오늘날의 카스텔라를 음차하여 표기한 말이다. 처음 이 과자를 맛본 조선 사람들에게는 떡과 한과에 익숙했던 미각을 단숨에 뒤흔드는 새로운 음식이었겠다. 밀가루와 설탕, 달걀을 사용하는 점에서는 오늘날의 카스텔라와 닮았으며, 구리 냄비에 숯불을 사용하고 대나무 꼬치로 구멍을 내 속까지 고르게 익히는 조리법은 당시 제과 기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오븐 대신 구리 냄비와 숯불을 이용했다는 점만 다를 뿐, 폭신하고 달콤한 카스텔라를 만들기 위한 원리는 3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맛은 지금에 견주면 미지수이다.
일본을 읽은 조선의 지식인, 이덕무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정조시대를 대표하는 실학자이자 조선 후기 백과전서적 학풍을 이끈 인물이다.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넘어 박제가·유득공과 함께 규장각 검서관으로 활동했으며, 스스로 ‘책에 미친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看書痴)라 부를 만큼 학문과 독서에 몰두했다.
그의 방대한 저술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는 역사·문학뿐 아니라 생활문화와 풍속까지 아우른 대표적인 백과전서이며, 이러한 학문 전통은 손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로 이어졌다. 또한 『사소절(士小節)』과 『청령국지』 등을 통해 음식과 생활문화를 기록하며, 책 속의 지식을 삶의 현장과 연결한 조선 후기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이덕무는 일본에 간 사실이 없다. 문헌 연구와 인물 교류를 통해 당대 조선에서 일본학, 곧 남학의 최고 권위자로 꼽혔다.
그 스스로가 말하기를, “내 진실로 유사시를 당하여 섬나라에 사신으로 간다면 그들의 기밀을 살핌이 남만 못하지 않으리라. 내 일찍이 표류했다 돌아온 사람에게 그 지역의 사실을 묻되 역력히 그 땅을 밟아 본 것처럼 하니, 그 사람이 깜짝 놀라면서 공(公)이 언제 바다를 건너갔었느냐고 하였다.” 이덕무는 마치 일본에 다녀온 사람처럼, 아니 다녀온 사람보다 더 일본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지녔다.
한편, 32세에 요절한 이기지는 1720년 연행에 자제군관으로 따라가 가수저라의 제조법을 물었다. 선교사들은 밀가루·설탕·달걀로 만든다고 알려주었고, 그는 처음 맛본 감동과 제조법을 『일암연기(一菴燕記)』에 남겼다. 이기지가 직접 맛본 감동과 선교사와의 만남을 기록했다면, 이덕무는 증언과 문헌을 바탕으로 그 제조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덕무는 『청령국지』 「물산」 편에 일본의 음식과 음식 용기 등도 자세히 전했다. 백주(白酒, 시로사케)는 찹쌀로 술밥을 지어 발효시킨 흰빛의 술로,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난다고 하였다. 모란병(牡丹餠)은 멥쌀과 찹쌀을 찧어 둥글게 빚은 뒤 콩가루나 팥고물을 묻힌 떡이며, 삭병(索餠)은 밀가루를 가늘게 늘여 만든 오늘날의 소면과 같은 음식이라고 하였다. 승기악이(勝其岳伊)는 도미·전복·달걀·미나리·파를 넣어 끓인 잡탕으로, 마을 사람들이 각자 재료를 마련해 함께 만들어 먹었다고 하였다.
또한, 삼중·회중·백절·화절 같은 음식 용기도 소개하여 당시 일본의 식생활과 음식 문화를 보여주었다. 이와 함께 고구마·담배·고추·목화 등 전래 작물의 특징과 활용법, 토복령과 같은 약재의 쓰임까지 정리해 조선 사람들이 일본인의 생활문화를 폭넓게 살펴보도록 하였다.
300여 년 전 카스텔라가 전한 새로운 맛
카스텔라는 300여 년 전 동서의 음식 문화가 만나는 접점이자, 조선과 서양, 일본을 오갔던 음식과 지식 교류의 한 방편이었다. 카스텔라는 그렇게 시대를 건너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 음식이기도 하다. 내게도 그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기다리던 밤의 맛이었다. 아버지는 월급날이면 꼭 카스텔라를 사 오셨다. 밤늦도록 아버지를 기다린 이유 역시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 때문이었다. 그 맛과 느낌은 지금도 선명해서 제과점에 갈 때마다 눈길이 가장 먼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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