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과 미인의 일본 소도시 아키타(秋田)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 2026-08-19 15:04:15

〈롯데〉껌 광고모델 사사키 노조미의 고향
풍요로운 ‘가을 밭’이 빚어낸 완벽한 미감(美感)

[Cook&Chef = 이승우 기자]

대학생 시절, 주로 잡지 모델들을 촬영하던 사진학과 친구와 교양수업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수많은 피사체를 렌즈에 담아온 그에게 나는 20대 남성으로서 사뭇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너는 미인을 많이 촬영해서 참 좋겠다. 네가 생각하는 일본 최고의 미인은 대체 누구야?”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사사키 노조미. ‘아키타 비진(秋田美人)’. 몰라?”

그때 처음 알게 된 아키타라는 낯선 지명과 사사키 노조미(배우)의 이름은,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릿속에 ‘미인’과 ‘미인의 도시’를 뜻하는 대명사로 남아있다.

‘가을 밭’의 풍요로움과 ‘아키타 비진’의 탄생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이름부터 가을을 품고 있는 도시인 일본 동북부의 아키타(秋田)현이 떠오른다. 직역하면 ‘가을 밭’이라는 뜻을 가진 이 지역은 일본 굴지의 곡창 지대이자 맑은 물의 고장이다.

매서운 겨울 추위와 함께 내리는 엄청난 양의 눈은 봄이 되면 깨끗한 해빙수가 되어 비옥한 대지를 적신다. 이 천혜의 자연환경은 명품 쌀로 불리는 ‘아키타코마치’를 길러내고, 그 쌀과 맑은 물로 빚어낸 훌륭한 명주(銘酒)들을 탄생시켰다. 긴 겨울을 버티기 위해 갓 지은 밥을 짓이겨 꼬치에 구운 뒤 진한 육수에 끓여내는 향토 요리 ‘키리탄포’ 역시 아키타를 상징하는 훌륭한 미식이다.

이처럼 풍요로운 자연은 훌륭한 식재료뿐만 아니라 미인도 함께 빚어냈다. 예로부터 일본에서는 교토, 후쿠오카와 함께 아키타를 ‘일본 3대 미인의 도시’로 꼽아왔으며, 이곳의 여성들을 ‘아키타 비진’이라 부른다. 이는 단순한 속설이 아니라 기후적 특성에 기인한다. 일조 시간이 짧고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리며 습도가 높은 환경 덕분에, 자외선 노출이 적어 유독 피부가 희고 결이 고운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침체된 껌 시장을 뒤흔든 〈롯데〉의 승부수 그리고 아키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F&B 업계에서 ‘껌’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다채로운 디저트 문화의 발달로 사람들은 입가심을 위해 껌을 씹는 일에 점차 흥미를 잃었다. 이 정체기를 타개하기 위해 〈롯데〉는 씹기 편한 부드러운 식감을 내세운 신제품 〈핏츠(Fit's)〉를 출시하며 사활을 건 마케팅을 전개했다.

이때 〈롯데〉가 전면에 내세운 모델이 바로 아키타현 출신의 사사키 노조미였다. 당시 신인이었던 그녀를 기용한 것은, 지역이 품고 있는 맑고 아름다운 이미지와 모델의 정체성을 영리하게 결합한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된 광고 영상 속에서 사사키 노조미는 고향인 아키타의 명소들을 누비며, 무서운 탈을 쓰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액운을 쫓는 전통 풍습인 ‘나마하게’ 복장의 주민들과 어우러져 춤을 춘다. 이때 흘러나오는 쾌활한 노래 속에서 “아키~ 아키~ 아키타”라고 지역명을 반복하는 대목은 묘한 향수를 자극하며 대중의 귓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텔레비전을 넘어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캠페인 덕분에, 〈핏츠〉는 출시 5개월 만에 4,000만 개 이상이 팔려나가는 이례적인 흥행 기록을 세웠다. 단순히 제품의 기능적 장점만 내세웠다면 결코 닿을 수 없는 성과였다. 지역이 가진 고유한 정서와 풍요로운 향토 문화를 F&B 상품에 녹여낸 완벽한 사례였다.

미식과 미인은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훌륭한 맛을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많은 시간과 공력을 쏟아붓는다. 이는 곧 혀끝의 감각을 넘어, 정성스럽게 빚어진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을 좇고 탐구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좋은 식재료를 찾아내고 미식을 음미하는 과정은 결국 훌륭한 미감(美感)을 발견해 내는 일과 일맥상통한다. 미식(美食)과 미인(美人), 이 두 단어가 같은 한자를 공유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올가을, 남들과는 조금 다른 매력적인 소도시 여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풍요로운 대자연과 고유한 향토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아키타로 향해보자. 혀끝을 맴도는 풍성한 미식은 물론이고, ‘아키타 비진’이라는 지역 고유의 아름다운 서사까지 품고 있으니 가히 일석이조의 여행지라 할 수 있다.

Cook&Chef /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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