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멍게, 바다를 떠오르게 하는 봄의 맛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5-26 18:40:22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멍게는 맛보다 먼저 바다를 떠오르게 한다. 껍질을 가르면 붉은 주황빛 속살이 드러나고, 입에 넣는 순간 짭조름한 바닷물의 감각이 먼저 닿는다. 곧이어 쌉싸래한 향이 코끝으로 올라오고, 씹을수록 은근한 단맛이 퍼진다. 삼킨 뒤에도 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멍게는 단순히 씹어 먹는 해산물이라기보다 지금 이 시기의 바다 냄새와 맛을 한꺼번에 품은 식재료일 것이다.
멍게는 우렁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한반도 주변 바다에 서식해 온 해산물로, 해안 지역에서는 자연산을 채취해 먹어 왔다. 외래 작물처럼 특정 시기에 들어온 식재료라기보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온 해안 식문화 안에서 익숙해진 수산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산지에서는 껍질을 벗겨 바로 먹거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방식이 먼저 자리 잡았다. 오래 손대지 않은 채 바다에서 올라온 맛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오늘날 멍게가 전국의 제철 식탁에 오르게 된 데에는 양식 기술과 유통의 확대가 컸다. 국내 멍게 양식은 1973년 경남 통영시 영운리에서 자연채묘한 종자를 이용해 시험 양식한 것이 시작으로 설명되며, 1974년에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인공종자생산기술이 개발됐다. 자연산을 산지에서 먹던 멍게가 도시의 시장과 식탁으로 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생산 방식의 변화가 있었다.
통영과 거제는 지금도 국내 멍게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대표 산지다. 남해안의 양식 기반과 산지 유통망이 결합하면서 멍게는 봄철이면 전국 시장으로 올라오는 제철 수산물이 됐다. 최근 멍게 생산 관련 자료와 보도에서도 경남 통영·거제 등 남해안이 주요 생산지로 언급된다. 이 지역의 멍게는 단순한 수산물이 아니라 남해안의 어장 환경, 양식 기술, 지역 음식문화가 함께 만든 제철 식재료다.
멍게의 맛은 한 방향으로만 오지 않는다. 첫맛은 바닷물에 가깝다. 짭조름하고 차가운 감각이 혀에 닿은 뒤, 곧바로 쌉싸래한 향이 올라온다. 이 향은 단순한 비린내와 다르다. 신선한 멍게에서는 젖은 해조류, 바위에 부딪힌 파도, 갯바람 같은 향이 함께 난다. 사람에 따라서는 금속성에 가까운 쌉쌀함으로 느끼기도 한다. 이 때문에 멍게는 호불호가 분명하다. 부드럽고 무난한 식재료가 아니라, 처음부터 자기 색을 강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멍게의 맛을 향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씹을수록 느껴지는 단맛이 중요하다. 멍게에는 글리코겐이 들어 있어 특유의 은근한 단맛을 만든다. 또 멍게의 독특한 향은 불포화알코올 성분인 신티올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짠맛과 향이 먼저 닿지만, 뒤에 남는 단맛과 감칠맛은 식재료 자체가 가진 성분에서 나온다. 멍게의 맛을 설명할 때 성분을 빼 놓으면 안 된다.
영양 측면에서도 멍게는 봄철 식탁에 올리기 좋은 수산물이다. 멍게는 수분 함량이 높고 지방 부담이 크지 않아 비교적 가볍게 먹을 수 있는 해산물로 꼽힌다. 여기에 단백질, 글리코겐, 타우린, 칼륨, 철분 등 바다 식재료 특유의 성분을 함께 지닌다. 글리코겐은 멍게의 은근한 단맛과 연결되고, 타우린은 어패류에 많이 들어 있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칼륨과 철분 같은 무기질은 제철 수산물로서 멍게의 영양적 가치를 더한다.
멍게를 이야기할 때 돌멍게도 함께 보면 좋다. 돌멍게는 끈멍게로도 불리며, 일반적으로 식탁에서 자주 만나는 양식 멍게와 생김새부터 다르다. 일반 멍게가 붉은빛 속살과 우둘투둘한 껍질로 익숙하다면, 돌멍게는 짙은 갈색이나 황갈색을 띠고 표면이 더 단단하고 거칠다. 이름처럼 돌에 가까운 외형을 지녔고, 주로 암반에 붙어 자란다. 양식 멍게가 제철 식재료의 대중성을 보여준다면, 돌멍게는 자연산 채취와 산지성이 강한 멍게다.
돌멍게의 맛은 일반 멍게와 결이 다르다. 껍질이 두껍고 손질이 번거롭지만, 속살에서는 더 맑고 시원한 맛이 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일반 멍게의 향이 직선적으로 치고 올라온다면, 돌멍게는 단단한 껍질 안에 갇혀 있던 바다 향이 열리듯 퍼진다. 일부 산지에서는 돌멍게 껍데기를 술잔처럼 쓰기도 한다. 속살을 먹고 난 껍질에 술을 부으면 멍게의 향이 술에 배어든다. 이는 단순한 먹는 방식이 아니라, 바다 식재료를 끝까지 활용해 온 해안 음식문화의 한 장면이다.
생멍게는 껍질을 벗겨 그대로 먹으면 짠맛, 쌉싸래한 향, 은근한 단맛이 차례로 올라온다.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식초의 산미와 고추장의 매운맛이 더해져 향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초고추장은 멍게의 향을 감추는 양념이라기보다, 강한 맛을 한 번 더 세우는 장치에 가깝다. 그래서 생멍게와 초고추장은 한국 식탁에서 가장 익숙한 조합이 됐다.
멍게비빔밥은 멍게를 한식의 한 그릇 음식으로 풀어낸 방식이다. 밥과 김가루, 참기름, 깨가 들어가면 생멍게의 향은 한층 부드러워진다. 멍게의 짭조름함은 밥알 사이에 스며들고, 참기름의 고소함은 쌉싸래한 향을 둥글게 감싼다. 채소가 더해지면 씹는 맛과 신선함이 살아난다. 통영을 비롯한 남해안 지역에서 멍게비빔밥이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멍게는 강한 해산물에서 한 끼 식사의 중심 재료로 바뀐다.
멍게젓은 또 다른 방식이다. 생멍게가 순간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향을 지녔다면, 젓갈은 그 향을 시간 속에서 농축한다. 소금과 숙성을 거치며 짭조름한 맛은 깊어지고 감칠맛은 또렷해진다. 밥 위에 조금만 올려도 입맛을 끌어올린다. 멍게젓은 멍게의 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진한 형태의 멍게 맛으로 다가온다. 생멍게가 봄 바다의 선명함이라면, 멍게젓은 그 향을 저장해 두는 한식의 방식이다.
열을 가하는 조리에서는 다른 면이 나온다. 멍게를 전으로 부치거나 살짝 구우면 날것의 날카로운 향은 누그
러지고, 단맛과 고소한 맛이 앞으로 나온다. 국이나 찌개에 넣으면 국물에 바다 향이 배어든다. 맑은 국물에는 시원한 바다 향을 더하고, 된장 베이스의 국물에서는 장의 구수함과 만나 향이 한층 부드러워진다. 한식에서 멍게의 활용은 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날것으로 먹으면 선명하고, 밥과 섞으면 부드러우며, 숙성하면 깊어지고, 익히면 둥글어진다.
이처럼 멍게는 하나의 맛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산지와 종류, 채취 방식, 조리법에 따라 맛의 결이 달라진다. 양식 멍게는 봄철 식탁의 대중성을 보여주고, 돌멍게는 자연산 해산물의 거친 생명력을 전한다. 생멍게와 초고추장, 멍게비빔밥, 멍게젓, 멍게전과 국물 요리는 모두 멍게의 향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한식의 방식이다.
지금, 이 시기 멍게가 떠오르는 것은 단순히 제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멍게 한 점에는 남해안 해안 식문화와 양식 기술, 산지 유통, 맛을 성분으로 이해하는 식재료의 가치, 그리고 한식 조리법의 변화가 함께 들어 있다. 다만 앞으로 멍게의 계절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생산 환경의 변화도 살펴야 한다. 멍게 양식에는 조류 소통이 좋고 담수 유입이 적으며 수온 관리가 안정적인 환경이 중요하다. 고수온은 멍게 양식장에서 이미 중요한 관리 변수다.
실제로 최근 남해안 멍게 양식장은 고수온 피해를 겪고 있다. 주산지인 경남 통영·거제 지역에서 여름철 고수온으로 양식 멍게 폐사가 발생하면서 생산량 감소 우려도 제기됐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라 제철 수산물의 생산량과 가격, 식탁의 풍경을 바꾸는 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멍게는 바다의 온도에 민감한 식재료다. 수온이 바뀌면 산지의 생산량과 품질, 제철 식탁의 풍경도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이 시기의 바다 향을 품은 멍게를 지키는 일은 결국 멍게가 자라는 바다의 온도를 지켜가는 일과 함께 간다. 멍게가 입안에 남기는 짭조름한 향은, 그렇게 한 계절의 맛이 된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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